브런치북 1. 출발 12화

10. 꿈삶글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by 강산

나는 꿈을 많이 꾼다

내가 꾸는 꿈은

나의 삶이다

그리하여 나는

꿈과 삶을 함께 쓴다


그레고르 잠자야, 이제 잠에서 깨어나라.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는 갑충이 아닙니다. 저는 바퀴가 없는 바퀴벌레입니다. 너는 바퀴가 없는데 어찌하여 바퀴벌레라고 하느냐? 요즘 사람들은 바퀴를 굴리지 않고 바퀴를 타고 다니며 삽니다. 저는 바퀴가 아니라 나비입니다. 저는 카프카를 모르는 나비입니다. 카프카는 몰라도 까마귀는 알지 않느냐? 아닙니다. 까마귀 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 까치들은 많은데 까마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라산 윗세오름까지 올라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나비야, 이제 그만 일어나라. 아닙니다. 저는 나비가 아니고 고양이입니다. 성진아, 이제 그만 꿈속에서 나와 인간의 삶을 살아라. 아닙니다. 석가모니부처님, 저는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만 꿈속에서 걸어 나와 눈을 뜰 시간이다. 알 수 없는 따뜻한 손길에 눈을 떠보니 석가모니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서 이제 막 떠나시려고 준비를 하고 계신다. 나는 부랴부랴 옷자락을 붙들고 큰 절을 올리며 간청한다. 저는 하늘을 찌르는 히말라야산맥입니다. 저의 하늘이 되어주십시오. 저는 폐쇄공포증 환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버스를 타도 의자에 앉지 못하고 버스 지붕 위에 엎드려 불안하게 가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하늘이 되어 저의 지붕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달리는 버스 지붕 위에서도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허허허 웃으시며 떠나는 부처님의 뒷모습에 아들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나는 요즘 잠을 많이 잔다. 잠을 많이 자면 꿈을 많이 꾼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꿈속에서 많이 일어난다. 나는 내가 꾸는 꿈도 나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꾸는 꿈들이 오히려 내가 쓰는 시보다 더 좋은 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쓰는 소설보다 오히려 더 좋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꾸는 꿈들이 오히려 나의 삶보다 더욱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가 꾼 꿈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그 많은 꿈들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가끔이라도 기록해보려고 한다. 특히, 꿈을 깬 다음에 오래도록 생각나는 꿈들을 위주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가 꾼 꿈들과 내가 사는 모습을 함께 기록하면서 진짜 나의 참 모습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하여 나는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보고 싶다. 요즘 세상에는 글들이 너무 많다. 너무 비슷한 글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오직 나만 아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모내기 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다. 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논이 있어도 모내기를 하지 않고 직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접 씨를 뿌려서 벼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물이 부족한 경우에 주로 하는 농사법이다. 모내기를 하지 않고 직접 파종하여 농사를 지으면 모내기를 하는 농법에 비하여 좀 더 쉽지만 그만큼 소출이 적은 단점이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모내기 할 논이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밭에 볍씨를 뿌려서 벼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우리 가족은 시골에 살면서도 논이 없었다. 밭도 없었다. 먼 거리에 있는 산밭을 일구어 밭농사를 조금 지었을 뿐이다. 심씨 문중의 심산을 개간하여 ‘띠야굴’이라는 곳에서 밭농사를 지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그 심산 주인에게 ‘밭수’라는 이름으로 일정량의 곡물을 주어야만 했다. 그 밭수가 아까워서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밭수를 대신 받아주는 일을 하여 우리네 밭수는 면제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반월산 아래 할아버지 산소가 생기면서 작은 밭이 만들어졌는데 그곳을 ‘댓등밭’ 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나는 논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다못해 집안에 감나무라도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논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는 감나무 하나 심을 수 있는 마당도 없었다. 참으로 가난한 시절이었다. 지금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그나마 감나무도 심고 살구나무도 심을 수 있는 밭이 있어서 참 좋다.


나는 가끔 모내기 하는 사진을 꺼내서 본다. 한쪽에서는 소로 써레질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모를 심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다랑이 논 하나 갖고 싶었던 내 어린 시절의 꿈을 꺼내서 본다.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 논에 모내기 하러 가시면 점심때쯤 꼭 나를 부르시곤 하셨다. 새참을 얻어서 먹이려는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우리 집 형편을 잘 아는 주인집 아주머니도 반갑게 맞이하며 아낌없이 밥을 퍼 주셨다. 그러면 나는 밥값을 한다고 못줄도 잡아주고 못단도 던져주고 때로는 모를 함께 심어주기도 하였다. 그럴 때 마다 다리에 거머리가 붙어서 내 피를 빨아먹곤 하였다. 나는 거머리가 붙은 지도 모르고 한참을 있다가 거머리를 발견하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시 내가 발견하지 못한 거머리가 핏줄 속으로 들어가 내 몸 속에서 평생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며 내 핏줄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내기 하는 풍경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대부분 기계를 이용하여 모내기를 할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모내기를 떠올리면 소와 어머니와 거머리가 함께 따라 나온다.


오늘 밤에도 일찍 잠이 들었다. 기이한 꿈을 꾸고 일찍 일어났다. 밤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중천에 떠 있는 달도 생각에 잠겨 있다. 다시 한 번 생각하니 아들이 부처님으로 보인다.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달을 보며 생각하니 부처님이 보인다. 아들이 보인다. 내가 보인다. 이렇게 문득 깨닫고 다시 보니 저 달도 나처럼 며칠을 굶었다는 생각이 든다. 배가 홀쭉하다. 배가 고프니 오히려 마음이 부르다. 달의 문도 환하게 보인다. 달의 뒷모습까지 환하게 보인다. 저 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의 길도 환하게 보일 것만 같다. 그렇게 오래도록 배고픈 달을 바라보니 나의 문도 서서히 열린다. 그 문 틈 사이로 나의 새로운 길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길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긴 편지를 쓴다. 아들과 나는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좀 더 깊이 알고 보면 사실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달을 보니 달이 보인다. 달을 보니 거울이 보인다. 달을 보니 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달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해도 보인다. 달을 보니 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네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네가 보인다. 달을 보니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나의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너의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것들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 달에 도착한다. 나는 이렇게 문에 도달한다. 나는 이렇게 나에게 도착한다. 나는 이렇게 너에게 도달한다. 나는 이렇게 달이 되고 거울이 되고 해가 된다. 나는 이렇게 내가 되고 네가 되고 또 하나의 길이 된다. 너는 아마도 나보다 더 배가 고플 것이다. 너는 아마도 저 달처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아직도 꿈도 없이 잠들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모내기 한 논을 잘 볼 수 없어도 보리밭은 가끔 볼 수 있다. 가파도 청보리밭과 내도 알작지 곁의 보리밭이 나는 참 좋다. 그리고 내가 사는 화순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보리밭을 볼 수 있다. 보리밭도 많고 밀밭도 많다. 그리고 특히 맥주보리밭이 많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유명하다. 가파도에서 제주도 본섬을 바라보는 감회도 새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가파도에는 자주 가지 못한다. 내도 알작지와 내도 보리밭은 나의 주요 산책코스여서 자주 가는 편이다. 보리밭을 보면 나는 마냥 기쁘거나 아름다운 추억만을 떠올리지 못한다. 보리밭에는 나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보리는 가지런한 벼와 달리 마구 뿌려져서 빽빽하게 자란다. 이모작을 하는 논에서는 벼를 수확하고 늦가을에 보리를 파종한다. 보리는 물이 없는 밭에서도 경작할 수 있다. 겨울에는 어린 보리들이 추위를 견디며 더디게 자란다. 자란다기 보다는 차라리 견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린 보리 싹들은 서로 몸을 비벼대며 추운 겨울밤을 뜬눈으로 견뎌야만 한다. 가난한 흥부의 자식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듯 그렇게 힘겨운 밤을 견디며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겨울을 넘겨야만 한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벌레들도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따로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병충해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좀 살아보니 사람도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도 가난을 알고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겪어본 사람들이 더욱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면 보리밭 밟는 일을 많이 했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잔디밭도 그렇고 다른 작물들을 밟으면 혼이 나는데 왜 보리밭은 일부러 밟아주는 것일까? 농촌봉사활동 한다고 전교생이 몰려가서 보리밭을 밟아주기도 하고 심지어 크고 무거운 쇠바퀴를 굴려 밟아주기도 하였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들뜬 뿌리를 다시 땅에 밀착시켜서 보리 뿌리의 활착을 돕기 위해서 밟아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도 이렇게 가끔 자신의 들뜬 마음을 밟아줄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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