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삶글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 0022

― 유튜버 어머니와 변기 청소 하는 하느님

by 강산





유튜버 어머니




꿈을 꾸었다


나는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어머니는 춤을 추고 계셨다

고향집 바로 앞 징검다리 건너

갱번에서 춤을 추고 계셨다

이동식 포장 영화관이 설치되던

가설 서커스단이 포장을 치던

몰래 숨어들다 걸려 혼나던

해 좋은 날 소를 말뚝에 묶어두던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자갈을 깨던

장마로 떠내려간 징검돌 울력을 하던

내가 기르던 오리들이 몰래 알을 낳던

모래방천에서 멱감고 따뜻한 돌 귀에 대던

귓속의 물을 빼내려고 맨발로 제자리 뛰던

그런 갱번에서 어머니 방송촬영을 하신다

유튜버 할머니로 소개하며 촬영을 한다

어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뛰신다

현란한 발놀림으로 노래하며 뛰신다

그런데 왜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방송 출연을 하신 것일까 나는 열심히

쓰레기를 줍다가 우연히 보았다

쓰레기들 속에는 보석이 없었다

열심히 운동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자랑스러운 어머니를 휴대폰으로 찍는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촬영을 하는데

나는 자꾸만 장비 탓을 하면서 못 찍는다

다른 사람들이 저 할머니 참 잘한다

라고 환호를 하고 있는데 나는

할머니가 아니고 어머니라고 우기며

뚝방길에서 갱번으로 내려간다

엄마, 라고 부르니 무대가 사라지고 없다


꿈속을 빠져나와 다시 생각하니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만 같다




변기 청소 하는 하느님




꿈을 꾸었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세 번째 심장수술받으려고 입원을 하였다

잠을 따라가니 자정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복도 화장실에서 변기를 청소하는 하느님

낯이 익어서 자세히 보니 의사 선생님이다

나를 두 번 살려주시고 퇴임하셨던 하느님


백 살 드신 의사 선생님께서 성자가 되셨다

더 이상 칼을 잡을 수 없어서 청소하신다는

흉부외과 의사 선생님, 나의 하느님을 뵙고

변기에 앉아서 오래도록 상념에 잠겨 있다


늙으면 돈이 많아야 한다며 풀꽃을 노래하는 시인도 좋지만 마지막 남은 인생 화장실을 청소하는 성자의 삶도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깊이 따뜻해지는 밤이다


꿈 밖의 어둠도 변기처럼 빛난다




바보와 똘똘이




처음부터 빽빽하게

나무를 심는 바보와


생각하며 하나하나

천천히 심는 똘똘이


나는 참 바보였구나

생각 없이 심어버린


고달픈 몸 이끌고서

나무 솎아내는 나날


바보는 몸만 고달프고

성과는 너무 미미하고


똘똘이는 놀며 즐기며

성과는 참으로 좋구나


바보는 몸과 마음고생

똘똘이는 오늘도 태평


서두르는 사랑 망하고

느긋한 사랑은 흥한다


서두르는 예술 시들고

지극한 예술은 꽃핀다




제자리 걷기에서 제자리 뛰기까지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던 내가 벌써 환갑이 코 앞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수술비 마련을 위해 3년만 일을 하러 들어온 발전소에서 나는 벌써 40년 가까이 빈둥거리고 있다 느닷없이 뚝 떨어진 아들을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게 하려다가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제는 그 아들이 다 자랐으니 이제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가야만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기운이 없는가 왜 이렇게 침대가 내 등을 사랑하는가 왜 이렇게 내 등을 놓아주지 않는가 잠은 죽어서 원 없이 허리가 아프도록 잘 수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서둘러서 잠만 잔단 말인가


갈 곳이 없으면 제자리 걷기라도 하자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뛰고 싶을 것이다 제자리 걷기에서 제자리 뛰기라도 시작하자


제자리 걷기를 하며 생각한다 3년만 놀다가 시를 쓰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3년이 벌써 40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다른 핑곗거리가 남아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저승에 가게 된다면 또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내가 앞으로 얼마나 걸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겠는다 얼마나 더 뛸 수 있겠는가 자, 이제 제자리 걷기부터 시작하자 제자리 뛰기를 다시 시작하자 자, 침대는 죽음 이후로 미뤄두기로 하고 열심히 걸어보자 열심히 제자리 뛰기를 하여보자




냉전의 시작




제주 4.3은 냉전의 시작이다

트루만 대결 정치의 시작이다

6.25를 거쳐 베트남전쟁까지

나쁜 거짓말 정치의 시대였다


이제는 정말 거짓말 없는 정치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정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우리 함께 진짜 사람의 시대

진짜 사랑의 시대를 만들어보자




콜라비 꽃




집을 잃어버렸다

거리를 헤매다가

버스를 가져왔다

버스가 글쎄

접혀서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는 주머니에

버스를 접어서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보니

버스가 나의 집이었다

콜라비 꽃이 그렇게 피었다




밤의 뿌리와 새싹과 밤송이




밤송이에서 밤이 툭, 떨어진다

알밤에서 더듬이가 쑥, 나온다

더듬이에서 뿌리가 슥, 내린다

뿌리에서 새싹을 살짝, 내민다

알밤은 뿌리에 젖을 꽉, 물리고

뿌리는 새싹에 젖을 꼭, 물린다

새싹은 자라나 잎을 쏙, 내밀고

잎은 자라나 줄기를 쭉, 뻗는다


알밤 하나에서 나온 더듬이가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밤나무로 성장을 한다 그렇게 태어난 밤나무에서 밤꽃이 피고 밤송이가 열리고 벌어진 밤송이에서 문득 알밤이 톡, 떨어질 것이다


때죽나무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알밤 하나 열심히 뿌리에 젖을 물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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