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하늘에서 살았다 천충(天蟲)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사람들의 안방이 좋았다 따뜻한 방에서 먹고 싸고 자고 놀기에 참 좋았다 먹이도 걱정 없고 똥도 바로바로 치워주었다 참으로 좋은 시절이었다
먹을 만큼 충분히 먹고 잠도 잘만큼 충분히 자고 나니 고향 생각이 났다 이제 좀 더 맑아지고 싶었다 투명해지고 싶었다 하늘이 되고 싶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내 몸 안으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빛이 실이 되어 내 몸 안에 가득 찼다
평생 가랑비 소리를 내며 갉아먹은 뽕잎을 마지막 똥으로 밀어내고 내 몸 안에는 오직 투명한 빛으로 가득했다 맑고 환한 그리움으로 충만했다 이제는 입도 지워버리고 견사샘을 열었다 섶에 올라가 빛의 궁전을 짓는다 꿈의 궁전을 짓는다
꿈의 궁전에서 꿈을 꾸고 있는데 누군가 꿈을 흔들어 깨운다 그리움의 날개를 펴고 고향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는데 밖에서 물레질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밖에서 나의 궁전을 허물고 있다 나의 궁전을 뜨거운 물로 녹이고 있다 팽형처럼 나를 삶아서 뜨거운 물에 담가서 나를 돌리고 있다 나의 빛의 궁전을 헐어서 실크옷을 만들겠다고 나의 간절한 꿈을 훔쳐가고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뽕나무 밭은 바다로 변하고 잠실(蠶室)은 이미 빌딩 숲이 되었구나
* 최근 양잠업은 동결건조 누에가루를 원료로 당뇨병 치료제, 숫번데기를 이용한 강장제, 익은누에를 이용한 간기능 개선 제품, 누에동충하초를 이용한 면역력 증강제품, 화장품 등 다양한 기능성 제품과 인공장기, 인공뼈, 인공고막 등 생명공학 소재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입는 양잠에서 먹는 양잠’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