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1.7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초의 생명은 심지에 있고
초의 진리는 촛농에 있다
초의 생명은 중심에 있고
초의 진리는 둘레에 있다
생명 태우며 눈물 흘리고
따뜻한 눈물 진리 말한다
송몽규 술가락이 깨웠고
김약연 가르침이 키웠다
생명은 중심에 심어지고
진리는 변두리에서 핀다
부처님도 공자님도 맹자님도 예수님도 수운님도 모두 변두리에서 진리를 찾았다
내 삶이 유언이다, 라고 말한 김약연 선생님도 변두리 명동촌에서 진리로 살았다
하늘은 중심과 변두리가 늘 하나여서 그물이 성긴 것 같아도 모든 것을 다 감싼다
초 하나가 있다. 백의민족처럼 흰옷을 입은 초 하나가 있다. 몸도 마음도 온통 하얀 초 하나가 있다. 영혼까지 하얀 초 하나가 있다. 초 하나 때문에 내 방 안은 향기로 가득하다. 방안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야만 한다.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으로 바쳐야만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초의 심지에 불을 붙인다. 초의 심지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먼저 결심이 필요하다. 심지(心志), 마음에 품은 의지가 필요하다. 세상을 밝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세상을 구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자신이 스스로 무너져 내려야만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스스로 무너짐으로써 무너지는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스스로 광명의 제단을 쌓고 깨끗한 제물이 되어야만 한다. 먼저 심지가 타올라야만 한다. 먼저 마음이 타올라야만 한다. 먼저 의지가 타올라야만 한다. 심지에 불이 붙으면 몸이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세상을 밝힌다. 어둠은 서서히 물러나고 암흑까지 녹아내린다. 환영처럼 그의 몸이 보인다. 환상처럼 염소의 갈비뼈 같은 예수의 몸이 보인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자신의 몸과 서서히 물러나는 어둠이 보인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도 보인다. 그림자들이 너울거린다. 백옥 같은 눈물도 보이고 붉은 피도 보인다. 어둠과 함께 집착과 욕망과 거짓과 시기심까지 모두 불태워버린다. 나는 그렇게 초 한 자루가 되어 스스로 소신공양을 한다. 위대한 헌신과 지극한 미덕은 그렇게 초 한 자루가 되겠다는 심지(心志)에서 출발한다. 아낌없는 열정으로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숯덩이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연소할 수 있는 영혼은 아름답다. 재가 없는 사람은 맑고 투명하다. 죄가 없는 영혼은 가볍다. 그렇게 스스로의 생명을 불사르는 촛불이 있다. 나와 촛불이 하나가 되어 춤을 춘다. 선녀처럼 춤을 춘다. 아니, 도깨비처럼 춤을 춘다. 나와 촛불은 한 몸이 되어 도깨비처럼 함께 춤을 춘다. 물아일체가 된다. 한 몸이 되어 춤을 추며 날아오른다. 나는 촛불이 되고 촛불은 내가 되어 불꽃으로 타올라 춤추는 하늘이 된다. 우리들은 그렇게 완전연소를 꿈꾸며, 춤을 추며 불타오른다. 그렇게 한 생을 살다 보면 어둠은 스스로 물러날 것이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은 창구멍으로 도망갈 것이다. 나의 방과 나의 세상은 드디어 환해질 것이고 우리들의 세상은 그런 제물들의 희생으로 더욱 향기로워질 것이다. 그런 위대한 제물이 되어 아름답게 사라지는 나는 행복할 것이다. 작은 초 한 자루는 우리들을 이렇게 아름다운 환상 속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