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1.8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해마다 광복절 지나면
어둠도 식어가기 시작한다
밤에는 이제 이불이 필요하다
풀벌레들도 울기 시작한다
이제는 누구라도
따뜻한 곁이 필요한 가을밤
나는
풀벌레 울음소리를 덮고
풀벌레보다 낮게 울기 시작한다
금강산 신계사의
상좌스님이 산을 오를 때
여스님이 앞서가고 있었다
산길이 제 아무리 좁아도
빗겨 갈 수는 있었을 텐데
어쩌다 옷깃이 스쳤나 보았다
옷깃 만 스친 줄 알았더니
마음도 스쳤나 보았다
여승은 아이를 갖게 되었다
지아비의 이름은 홍범도였다
홍경래를 타고난 홍범도였다
범도는 어렵게 자란 머슴이었다
불우한 머슴생활을 때려 치우려고
15세 나이를 17세라고 속인 범도는
평양의 군영에 입대하여 군졸이 되었다
군관들의 부정부패와 학대를 참다 못한
범도는 학대하던 군관을 때려 눕히고
황해도 수안으로 가서 제지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아홉달의 임금이 체불되자
주인과 다투고 금강산으로 입산했다가
아내 이옥구를 만났던 것이다
범도와 옥구는 산을 내려와
옥구의 친정이 있는 북청으로 갔다
북청에서 갑산으로 넘어가는 후치령
고개밑에 오두막을 짓고 첫아들 양순과
둘째 아들 용환을 낳았다
화전과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범도는
포수들의 총을 수거하려는 일제와 맞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시작하였다
의병활동을 중단하라는
순종의 굴종적인 칙령에도 불구하고
호랑이 잡는 포수들이 모인 홍범도부대의
기세를 일본군은 꺽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범도의 아내와 아들을 인질로 끌어와 범도를 회유하려
하였고 협조를 거부하던 옥구는 끝내 옥사하고 말았다
아들 양순은 회유작전에 동원되었다가 아버지와
합류하여 1908년 정평배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군의 주축이 된 범도는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고 이듬해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대첩을 이루었다 그러자 일본군은
1920년 간도에서 양민과 군인의 구별없이
수만명을 학살하는 간도 참변을 일으켰다
한인 공산주의자 사이에서 분란이 일게 되었고
범도는 소련공산주의자 편에 서서 중국 상해파를
무장해제하려던 포위진압하는 사건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1937년 스탈린은 국경지역
한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일본인 첩자와 한인들은 구별이 어렵기도
하였고 벼농사 기술을 카자흐스탄에
이식시키려는 뜻도 있었다
카자흐스탄 집단농장을 운영하던 범도는
고려극장 관리인으로 여생을 보내다가
해방되기 2년전 7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한복 저고리를 늘리러 간 길
젖이 불어서 안 잠긴다는 말에
점원이 웃는다
요즘 사람들 젖이란 말 안 써요
뽀얀 젖비린내를 빠는
아기의 조그만 입술과
한 세상이 잠든
고요한 한낮과
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이
그 말랑말랑한 말 속에 담겨 있는데
촌스럽다며
줄자로 재어준 가슴이라는 말
브래지어 안에 꽁꽁 숨은 그 말
한바탕 빨리고 나서 쭉 쭈그러진 젖통을
주워 담은 적이 없는 그 말
그 말로 바꿔 달란다
저고리를 늘리러 갔다
젖 대신 가슴으로 바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