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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20. 2021

고도를 기다리는 나무

- 강산 시인의 꿈삶글 20






고도를 기다리는 나무

- 강산 시인의 꿈삶글 20





# 아들과 아버지


나는 평생 좋은 아들이 되지 못했다

나는 평생 좋은 아버지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는 집을 떠나 길이 된다


# 마음 1


너는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서

감옥 속에서 영원히 사는구나 


이 세상은 그저 춤추는 바람

이 세상은 그저 구름의 허공 


바람은 바람처럼 살아라 하고

허공은 허공처럼 살아라 하네


# 마음 2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그렇다

어제는 아들 때문에 지옥이더니

오늘은 아들 때문에 천국이구나


# 고도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나를 왕따 나무라고 합니다

나는 오늘도 나의 고도를 기다립니다

나의 소망은 발자국 소리가 아닙니다


* 홀로 서 있는 저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든든한 배경으로 앉아 있는 이달오름과 새별오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이달오름과 새별오름이 흉물들로 가려질 것만 같다. 지금 한창 이달오름과 새별오름 앞으로 대규모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오지 않고 .....,


* 이달오름은 두 개의 산(이=2, 달=높다, 산의 고어)이라는 뜻이다. 이달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를 아우르는 오름이다. 두 개의 봉우리 중 남쪽에 있는 봉우리를 이달봉, 북쪽에 있는 봉우리를 이달이촛대봉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홀로 서 있는 나무에서 보면 하나로 보인다.


# 다시 고도를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바람 속에서

한결 같은 마음으로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시를 쓰는 나무


시를 쓰는 나무를 알고 있다

전생에 방랑시인이었다는 그는

이번 생에는

딱 한 편만 쓰겠다고

어느 깊은 밤 나에게 말했다

봄부터 부지런히 시를 썼다가

깊은 가슴 속에

해마다 딱 한 줄씩만 남기고 

아낌없이 모두 

낙엽으로 날려서 보낸다고 하였다




새별오름은 참 앞과 뒤가 다르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참 많이 다르다. 그리고 나는 솔직하게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잘 모른다. 검게 탄 부분이 앞인지, 불길이 아직 닿지 않은 잡목 숲이 앞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한라산이 보면 검은 얼굴이 앞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푸른 바람이 보면 검은 얼굴이 뒤가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살아서 나란히 눕는 것보다 죽어서 나란히 눕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어서 한 번 나란히 누우면 쉽게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자꾸만 묘지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좋은 집 보다 좋은 명당 자리가 더  눈에 잘 들어온다. 그리고 며칠 전에 보았던 불길이 내 몸을 덮친다. 화면 가득 타올랐던 들불이 내 마음속까지 옮겨붙는다. 나도 한 번 쯤 그렇게 뜨겁게 타오를 수 있을까?


우리들은 잘 눕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꼭 뜨겁게 잘 타올라야만 하리라. 죽어서 더욱 오래도록 나란히 눕기 위하여 더욱 뜨겁게 사랑해야만 하리라. 살아서 사랑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나란히 누울 수 없으리라. 우리들의 가장 긴 잠을 외롭게 홀로 잠들게 할 수는 없으리라.


새별오름에는 앞과 뒤의 경계에 소화전들이 설치되어 있다. 정상 부근의 소화전함은 바람 때문에 아예 누워 있지만 그래도 뜨거우면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으리라. 축제 초기에는 등에 지고 사용하는 수동 분무기를 사용하더니 축제가 정착되면서 정상까지 아예 소화전을 설치하였다. 오름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떨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화재 예방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까?


나는 새별오름에 자주 온다. 평화로 중간 쯤에 있어서 오며 가며 자주 들르는 나의 휴게소 역할을 한다. 올 때마다 참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꾸만 곁에 있는 이달오름과 나홀로나무에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새별오름은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데 이달오름은 뾰족한 직선이 위태롭게 아름답다. 더구나 푸른 초원에 홀로 서 있는 고도를 기다리는 나무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 두 오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달오름과 새별오름은 어쩌면 우리들의 두 가슴일 것이다. 어쩌면 죽어서도 나란히 눕고 싶은 쌍봉일 것이다. 나란히 누워서 가끔 손이라도 잡아보는 그런 사이일 것이다. 그 마주 잡은 손에서 태어난 나무라니! 어찌 이 외로운 나무와 오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 목장 주인의 마음은 어떨까? 출입금지 표지가 자꾸만 떨어지고 푸른 초원에 알 수 없는 발자국들이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며 지켜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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