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 시인의 꿈삶글 20
- 강산 시인의 꿈삶글 20
나는 평생 좋은 아들이 되지 못했다
나는 평생 좋은 아버지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는 집을 떠나 길이 된다
너는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서
감옥 속에서 영원히 사는구나
이 세상은 그저 춤추는 바람
이 세상은 그저 구름의 허공
바람은 바람처럼 살아라 하고
허공은 허공처럼 살아라 하네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그렇다
어제는 아들 때문에 지옥이더니
오늘은 아들 때문에 천국이구나
사람들은 나를 왕따 나무라고 합니다
나는 오늘도 나의 고도를 기다립니다
나의 소망은 발자국 소리가 아닙니다
* 홀로 서 있는 저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든든한 배경으로 앉아 있는 이달오름과 새별오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이달오름과 새별오름이 흉물들로 가려질 것만 같다. 지금 한창 이달오름과 새별오름 앞으로 대규모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오지 않고 .....,
* 이달오름은 두 개의 산(이=2, 달=높다, 산의 고어)이라는 뜻이다. 이달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를 아우르는 오름이다. 두 개의 봉우리 중 남쪽에 있는 봉우리를 이달봉, 북쪽에 있는 봉우리를 이달이촛대봉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홀로 서 있는 나무에서 보면 하나로 보인다.
오늘도 나는 바람 속에서
한결 같은 마음으로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를 쓰는 나무를 알고 있다
전생에 방랑시인이었다는 그는
이번 생에는
딱 한 편만 쓰겠다고
어느 깊은 밤 나에게 말했다
봄부터 부지런히 시를 썼다가
깊은 가슴 속에
해마다 딱 한 줄씩만 남기고
아낌없이 모두
낙엽으로 날려서 보낸다고 하였다
새별오름은 참 앞과 뒤가 다르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참 많이 다르다. 그리고 나는 솔직하게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잘 모른다. 검게 탄 부분이 앞인지, 불길이 아직 닿지 않은 잡목 숲이 앞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한라산이 보면 검은 얼굴이 앞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푸른 바람이 보면 검은 얼굴이 뒤가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살아서 나란히 눕는 것보다 죽어서 나란히 눕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어서 한 번 나란히 누우면 쉽게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자꾸만 묘지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좋은 집 보다 좋은 명당 자리가 더 눈에 잘 들어온다. 그리고 며칠 전에 보았던 불길이 내 몸을 덮친다. 화면 가득 타올랐던 들불이 내 마음속까지 옮겨붙는다. 나도 한 번 쯤 그렇게 뜨겁게 타오를 수 있을까?
우리들은 잘 눕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꼭 뜨겁게 잘 타올라야만 하리라. 죽어서 더욱 오래도록 나란히 눕기 위하여 더욱 뜨겁게 사랑해야만 하리라. 살아서 사랑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나란히 누울 수 없으리라. 우리들의 가장 긴 잠을 외롭게 홀로 잠들게 할 수는 없으리라.
새별오름에는 앞과 뒤의 경계에 소화전들이 설치되어 있다. 정상 부근의 소화전함은 바람 때문에 아예 누워 있지만 그래도 뜨거우면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으리라. 축제 초기에는 등에 지고 사용하는 수동 분무기를 사용하더니 축제가 정착되면서 정상까지 아예 소화전을 설치하였다. 오름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떨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화재 예방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까?
나는 새별오름에 자주 온다. 평화로 중간 쯤에 있어서 오며 가며 자주 들르는 나의 휴게소 역할을 한다. 올 때마다 참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꾸만 곁에 있는 이달오름과 나홀로나무에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새별오름은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데 이달오름은 뾰족한 직선이 위태롭게 아름답다. 더구나 푸른 초원에 홀로 서 있는 고도를 기다리는 나무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 두 오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달오름과 새별오름은 어쩌면 우리들의 두 가슴일 것이다. 어쩌면 죽어서도 나란히 눕고 싶은 쌍봉일 것이다. 나란히 누워서 가끔 손이라도 잡아보는 그런 사이일 것이다. 그 마주 잡은 손에서 태어난 나무라니! 어찌 이 외로운 나무와 오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 목장 주인의 마음은 어떨까? 출입금지 표지가 자꾸만 떨어지고 푸른 초원에 알 수 없는 발자국들이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며 지켜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