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29
'오, 덕성의 여인이여, 그대를 통해서만/인류의 가장 작은 하늘 아래의/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그대의 명령은 저를 기쁘게 하니/이미 복종했어도 늦은 것 같습니다/그대 마음을 더 열어 보일 필요 없습니다//하지만 그대가 돌아가고자 열망하는/그 넓은 곳에서 왜 이곳 중심부로/내려왔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여인은 대답했다 '그대가 그토록 깊이/알고 싶다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내가/왜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간단히 말하리라//두려움이란 단지 남에게 나쁜 일을/할 수 있는 것들에서 나오는 것이며,/그렇지 않은 것들은 두렵지 않아요//나는 하느님의 자비로 태어났으니,/그대들의 불행은 나를 건드리지 못하고/이 불타는 불꽃도 나를 휩싸지 못합니다//저 위 하늘의 친절하신 여인께서는/그대가 넘어야 할 장애물에 대해/동정하여 엄격한 율법을 깨뜨리셨답니다// ―『신곡(神曲)』20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스산한 가을날―//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서리 내리는 저녁―/어린 영(靈)은 쪽나래의 향수(鄕愁)를 타고/남(南)쪽 하늘에 떠돌 뿐―// _ (1935년 10월 추정, 평양에서, 윤동주 18세)/ 7. 남(南)쪽 하늘(시) _ 1집, 2집, 중판, 삼판// ―『윤동주』7
취우라는 말이 참 재미있다 취우(翠雨) : 푸른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 취우(醉友) : 술에 잔뜩 취한 친구, 취우(驟雨) : 소나기와 같은 말, 취우라는 말은 세 가지의 뜻을 품고 있다 한자로 쓰면 다르지만 우리말로는 그냥 '취우'라고 쓴다 취우(翠雨)와 취우(醉友)와 취우(驟雨)는 다른 말 같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면 같은 말 같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취우(翠雨)는 이슬과 닮았다 이슬과 취우는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이슬과 취우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이슬은 그 자리에서 태어난 것이고 취우는 먼 곳에서 온 것이다 나는 이슬도 좋고 취우도 좋다
나는 연꽃도 좋아하고 연잎으로 물방울 놀이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토란잎으로 물방울 놀이를 하였는데 요즘에는 연잎으로 물방울 놀이를 자주 한다 연잎은 물에서도 물에 젖지 않는다 연잎은 아무리 오래 물방울과 함께 놀아도 물방울에 젖지 않는다 나는 그런 연잎이 좋다 연잎에서 함께 놀 수 있는 물방울도 참 좋다 그 연잎의 물방울 속에서 물방울과 함께 살고 있는 나의 모습도 참 좋다
취우의 고향이라 말할 수 있는 하늘에서 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빗방울의 크기는 지름 0.5∼5㎜로서 보통 1∼2㎜ 정도이고, 소나기의 경우에는 2∼7㎜ 정도가 된다 빗방울이 매우 큰 경우에는 낙하 도중에 작게 갈라져 버리고, 0.5㎜ 이하인 경우에는 낙하속도가 매우 느려져 마치 안개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안개비를 형성한다 구름을 형성하는 물방울의 크기는 지름이 0.004∼0.02㎜ 정도의 대단히 작은 것이며, 부력 때문에 작은 구름물방울이 그대로 떨어져 비가 되는 것이 아니고 구름물방울들이 서로 뭉쳐서 큰 덩어리가 되어야 하므로 10만∼100만 개 정도의 구름물방울이 합쳐져 비로소 1개의 빗방울이 형성되는 셈이다
살아있는 식물들은 대부분 비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동물들은 대부분 비를 피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비를 좋아하는 동물들도 많지만 비에 젖지 않기 위하여 피하는 동물들이 많다 그중에는 사람들도 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는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의 양식이지만 직접 몸에 맞고 몸으로 젖는 것을 싫어하는 동물들이 많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잠시 피했다가 더 많은 물방울들이 뭉쳐져 있는 샘물이나 강물을 맛있게 마시는 동물들도 많다
태반처럼 둥근 연잎에서 물방울 놀이를 하며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이란 어쩌면 연잎 위에서 뒹구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어쩌면 신들이 좋아하는 물방울 놀이인지도 모른다 물방울이 물방울을 만나고 물방울이 물방울과 헤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쪼개지기도 하고 다시 합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물방울은 결코 물방울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태반과 탯줄을 보면 꼭 연을 닮았다 연잎에는 숨구멍이 또렸하다 그 숨구멍을 따라가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 이제 막 자궁벽에 착상된 배아가 보인다 작은 씨앗 모양의 나는 이제 콩깍지 모양이 될 것이고 등 굽은 태아로 성장할 것이다 연잎 아래서 연근이 자라나 듯 나도 그렇게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비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양수 때문일지도 모른다 양수의 커다란 물방울 속에서 작은 물방울로 태어나서 시작한 내 삶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아가 양수를 마시듯 물방울이 물방울을 마시며 자란 따뜻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이어도공화국 연못에 비가 내린다 연잎에 비가 내려앉는다 연잎 끝에 취우가 맺히고 나는 그 취우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물방울 속의 나는 물방울 밖의 나를 보고 웃는다 물방울 밖의 나는 물방울 안의 나를 보고 살짝 윙크를 한다 태반 밖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연잎 밖에서 물방울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태반의 뿌리에서 꽃으로 피어날 것이고 나는 연근의 뿌리에서 연꽃을 피워 올릴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들의 숨소리가 취우 속에서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이슬처럼 시작될 것이다 취우처럼 시작될 것이다 푸른 나뭇잎에 빗방울이 맺히듯 시작될 것이다 가끔은 소낙비처럼 만날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사랑에 완전히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늘 어딘가에 취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이다 비에 취하고 하늘에 취하고 너에게 취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에게 취하면서 취우가 되고 사랑이 되고 하늘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우리들은 푸른 나뭇잎에서 함께 뛰어내려도 좋을 것이다 우리들이 함께 껴안고 떨어지는 그곳이 바로 어쩌면 우리들 사랑의 옹달샘이 될 것이다
https://youtu.be/bt0hIlc0vrk?si=dzBdgsTyMJUByvX4
1. 정지용의 동시
정지용 시인은 1924년에 일본 도쿄에 있는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학과에 유학을 갔는데 1926년 6월 창간된 유학생 동인지 『학조』에 아주 모던한 「카페ㆍ프란스」 등 시를 3편, 동시를 5편, 시조를 1편 발표한다. 그는 시 창작의 출발지점부터 동시를 썼던 것이다. ‘대학생이 동시를 쓰다니’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고 그는 동시를 발표하였다.
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까까머리.
삼월 삼질 날,
질나라비, 훨, 훨,
제비 새끼, 훨, 훨
쑥 뜯어다가
개피 떡 만들어.
호, 호, 잠들여 놓고
냥, 냥, 잘도 먹었다.
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상제로 사갑소.
—「딸레와 아주머니」 전문
이 동시는 시집에 실을 때는 「삼월 삼질날」이란 제목을 고쳤다, 마지막 행에 나오는 ‘상제’는 절의 상좌上佐로 동자승을 가리킨다. 머리카락이 아직 나지 않은 아기 동생을 향한 손위 형제의 동생에 대한 질투심이 느껴진다. 삼월 삼짓날 쑥을 뜯어다가 개피떡을 만들어 동생이 잘 때 먹었다는 것도 그렇고, 내 동생이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으니 절간으로 보냈으면 좋겠다는 것도 부모님의 내게 대한 관심과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긴 데서 오는 질투심을 표현한 것이다. 이 질투심이야말로 솔직한 동심이리라.
우리 옵바 가신 곳은
해님 지는 서해 건너
멀리 멀리 가셨다네.
웬일인가 저 하늘이
피ㅅ빛보담 무섭구나!
날리 났나. 불이 났나.
—「서쪽하늘」 전문
하늘 우에 사는 사람
머리에다 띄를 띄고,
이땅우에 사는 사람
허리에다 띄를 띄고,
땅속나라 사는 사람
발목에다 띄를 띄네.
—「띄」 전문
두 편 동시 모두 동시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지점이 있다. 오빠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도 그렇고, 저녁노을이 핏빛보다 무섭다고 하는 것도 그렇다. 하늘 위에 사는 사람이 머리에다 띠를 띤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는 시편이다.
오리 목아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목아지는
자꼬 간지러워.
—「湖水 2」 전문
손바닥을 올리는 소리
곱드럏게 건너간다.
그뒤로 힌 게우가 미끄러진다.
—「湖面」 전문
비ㅅ방울 나리다 누뤼알로 구을러
한밤중 잉크빛 바다를 건늬다.
—「겨울」 전문
‘게우’는 거위다. ‘누뤼알’은 우박 알이다. 바다 위로 밤이 걸어온다고 하니 동시라고 볼 수 없지만 오리가 호수에 동그란 파문을 일으킨 것을 오리의 목이 호수를 감는다고 한 「호수 2」 같은 시는 동시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한 백년 진흙 속에
숨었다 나온 듯이,
게처럼 옆으로
기여가 보노니,
머언 푸른 하늘 알로
가이 없는 모래밭.
—「바다 2」 전문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 온다.
—「바다 3」 전문
시인 특유의 감각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이런 짧은 시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지양하고 정지용 식의 ‘우리 것 찾기’에 나섰기에 쓴 것이라 여겨진다. 『정지용시집』에는 『신소년』이나 『어린이』에 발표한, 출전이 확실한 동시도 여러 편 싣는다.
산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꾹이 영 우에서
한나잘 울음 운다.
산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 맞아 쩌 르 렁!
산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 봄 들며 아니 뵈네.
—「산넘어 저쪽」 전문
이 동시는 『신소년』 1927년 5월호에 발표된 것으로서 김동환의 「산 넘어 남촌에는」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동시는 아니지만 어린이 잡지에 실렸고, 시어 선택과 표현이 단순한 것으로 미루어 동시로 간주할 수 있다. 같은 지면에 실린, 더욱 ‘확실한’ 동시가 있다.
할아버지가
담배ㅅ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믄 날도
비가 오시네.
—「할아버지」 전문
일기를 알아보고 도롱이를 쓰고 나간 것인데 아이가 보건대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쓰고 나가자 비가 온다. 그날의 일기를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할아버지의 선견지명에 감탄한 아이의 시선으로 쓴 전형적인 동시다. 이런 동시를 여러 편 자신의 시집 중간중간에 넣음으로써 정지용은 한국시문학사상 아주 희유한 예를 보여준 것이다.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실이 나려와 가치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해ㅅ빛이 입마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해바라기 씨」 전문
정지용의 이 동시는 『신소년』 1927년 6월호에 발표된 것으로서 화자가 소년이다. 해바라기 씨를 담모롱이 밑에 심어놓고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방해하는 것들이 많아서인지 도무지 피어나지를 않는다. 장난꾸러기인 화자의 성격을 잘 살려 썼고 내용이 무척 해학적이다. 정지용 시인을 현대 동시의 시발점에 있는 이로 간주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어린이』 제4권 10호(1926. 11)에 발표했다 시집에 넣은 동시를 보자.
새삼나무 싹이 튼 담 우에
산에서 온 새가 울음 운다.
산엣 새는 파랑치마 입고.
산엣 새는 빨강모자 쓰고.
눈에 아름 아름 보고 지고.
발 벗고 간 누의 보고 지고.
따순 봄날 이른 이침부터
산에서 온 새가 울음 운다.
—「산에서 온 새」 전문
도회지에 온 새가 우는 것이 산에 두고 온 형제와 친구들 생각이 나서라고 한다. 어른이 어린이의 시각으로 쓰는 것, 어린이를 독자로 상정하고 쓰는 것이 동시라고 한다면 이 시는 동시에 정확히 부합한다. 애초의 발표지면은 모르지만 첫 시집에 실린 아래의 작품도 영락없이 동시다.
바람.
바람.
바람.
늬는 내 귀가 좋으냐?
늬는 내 코가 좋으냐?
늬는 내 손이 좋으냐?
내사 왼통 빩애젔네.
내사 아므치도 않다.
호 호 칩어라 구보로!
—「바람」 전문
바람이 불어 귀가 빨개진 아이가 바람에게 묻는다. 네가 내게 오는 바람에 귀도 코도 손도 빨갛게 되었으니 너는 내가 그렇게 좋으냐고. 그런데 아이는 이 정도 추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큰소리친다. 호호 웃기까지 한다. 왜? 구보를 하면 추위를 떨쳐버릴 수 있으므로. 최소 10편의 동시가 실려 있는 시집이 바로 『정지용시집』이다.
2. 윤동주의 동시
윤동주가 정지용의 시집을 들고 다니며 탐독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윤동주 소장본 『정지용시집』이 증명하고 있다. 윤동주 평전을 쓴 송우혜는 “도처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고, 곳에 따라서는 적절한 촌평도 가해져 있는 등, 그가 얼마나 정독한 책인지를 알 수 있다.”고 썼다. 정지용의 시집을 들고 다니며 애독해 마지않은 것은 연희전문 친구들이 증언한 바도 있다.
윤동주가 발표한 최초의 동시로 알려져 있는 「조개껍질」을 쓴 것이 1935년 12월이었다. 공교롭게도 그해 10월에 『정지용시집』이 나왔다.
아롱아롱 조개껍대기
울언니 바다가에서
주어온 조개껍대기
여긴여긴 북쪽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대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잃은 조개껍대기
한짝을 그리워하네
아롱아롱 조개껍대기
나처럼 그리워하네
물소리 바다물소리
—「조개껍질」 전문
조개껍질은 두 개가 있어야 짝을 이루는데 하나가 사라진 다른 하나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하나만 있는 조개껍질처럼 물소리, 특히 바닷물소리를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왜 여기는 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북쪽 나라이기 때문이다. 화자 아이의 고향마을이 바닷가에 있었나 보다. 그리고 조개의 고향인 남쪽은 3면이 바다인 조선이고 화자는 북간도에 있다. 즉, 이산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동시를 시발점으로 하여 윤동주는 1936년부터 『가톨릭소년』이나 『아이생활』 『어린이』 등에 동시를 간간이 발표하는데, 정지용의 시집이 그랬듯이 시집 준비를 하면서 동시를 중간중간에 싣는다. 동시라는 구분이 없다. 윤동주는 시 끝에 쓴 일자를 써 놓는데, 아래 두 편은 1936년 1월 2일에 쓴 것이다.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눈」 전문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로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 걸.
—「참새」 전문
1936년에 『카톨릭소년』에 발표한 두 편의 동시다.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심리상태를 잘 파악하여 이와 같이 재치 있는 동시를 쓰던 윤동주는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현실로 눈을 돌린다.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오줌싸개 지도」 전문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해바라기 얼굴」 전문
앞의 동시는 고아 신세가 된 형제 이야기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만주로 돈 벌러 가서 영 오질 않는다. 오줌싸게 동생을 돌보아야 하는 형은 철이 들었지만 언제까지 고아처럼 살아가는 이 상태가 이어질까. 뒤의 동시는 누나를 불쌍히 여기는 동생이 화자다. 누나는 공장에 나가는 것일까 밭에 나가는 것일까. 무척 힘든 노동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방직공장과 군수공장에 가서 일하는 이 땅의 여성 인력이 적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 이 동시는 현실 고발의 메시지까지 담보하고 있는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전체를 통틀어 어린이들의 굶주림에 대해 들려준 동시가 있었으니, 바로 윤동주의 동시다. 궁핍했던 당시 현실을 아래와 같이 다루고 있다.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째로 송치까지
다― 나눠먹었소.
—「사과」 전문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무얼 먹구 사나」 전문
모처럼 사과 한 개가 생긴 집의 식구는 넷.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지라 그 사과 속 송치(고갱이)까지 다 먹는다. 얼마나 가난했으면 사과를 하나 먹게 되었을 때 제일 가운데 것까지 다 먹었을까. 동시는 짧지만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현실을 은근히 반영하고 또 이를 비판하고 있다. 뒤의 동시는 별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별나라는 저승이고 별나라 사람은 죽은 자이다. 산 자는 먹을 것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해야 한다. 사자는 무얼 먹고 사는지 알 수 없지만 물고기와 감자조차도 없는 현실에서는 도대체 무얼 먹고 살아가야 하는가? 동시임이 분명한데,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비참한 현실을 교묘하게 암시하고 있는 아래의 작품을 보자.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읍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가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편지」 전문
눈이 오지 않는 나라는 식민지 조선도 아니고 만주도 아니고 연해주도 아니다. 저승이 아니면 남쪽의 나라이다. 저승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 동시로 쓴 작품에서 이런 고도의 상상력과 지적 능력을 동원해서 생각하라고 아이들에게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누나는 눈이 오지 않는 나라에 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연구자는 일제에 의한 ‘야전주보규정野戰酒保規程’의 개정(1937.9.29.)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중일전쟁 이후 대량의 일본군이 중국에 투입되자 일본군은 군의 시설로 위안소 설치를 중요한 일로 삼았다. 일본군은 일본 내무성ㆍ외무성 등 중앙정부와 조선총독부ㆍ대만총독부 등 식민지 권력기관을 통해 위안부 동원을 요구하였고 이후 관련 기관의 협조로 군 위안부 동원 시스템이 작동되었다.
일본군 위안부는 1938년부터 강제모집이 시작되므로 윤동주가 이 동시를 쓴 1936년과는 시차가 있다. 하지만 꼭 일본군 위안부를 염두에 두고 쓴 동시가 아니라 하더라도 1937년에 나온 『재상해일본총영사관경찰서연혁지』라는 책을 보면 1936년에 상해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 여성의 수는 900명, 남성의 수는 897명인데 여성 중 290명이 사창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 자료를 백 프로 못 믿는다고 하더라도 조선에서 타국으로 먹고살 길을 찾아서 이주해 간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상해는 매년 눈이 오지 않는데, 올 때도 좀 내리다 만다고 한다.
윤동주의 증조부 윤재옥이 42세 때인 1886년에 아내 진씨와 4남 1녀의 어린 자녀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 자동에 자리를 잡았다. 1990년쯤에 북간도 명동촌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이 모여 ‘촌’을 이루고 있었다. 북간도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북경이나 상해 같은 대도시로 이주해 갔을 것이다. 마카오나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지로 내려간 ‘누나’가 있다면 편지를 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의 현실이 아주 교묘하게 그려져 있는 동시가 바로 「편지」다.
이와 같이 윤동주의 동시에 나오는 어린이는 해맑고 천진하기보다는 쓸쓸해 하고 아파한다. 세상 풍파에 갖은 고난을 겪는다는 점에서 시적 자아는 차라리 어른 쪽에 가깝다. 그런 윤동주 동시의 가장 큰 두 가지 주제는 이향離鄕의 쓸쓸함과 경제적 빈곤이다.
이와 같이 윤동주의 동시는 비록 동시이기는 하지만 1930~40년대에 나온 어떤 시작품에 못지않은 현실비판의식을 지니고 있다. 「아우의 인상화」나 「트루게네프의 언덕」 「기왓장 내외」 「애기의 새벽」 「햇빛ㆍ바람」도 그렇고, 아이들의 밝은 꿈을 그리기에는 그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암담했기에 이런 슬픈 동시를 계속해서 썼던 것이리라. 평범한 일상에서 가져온 소재를 아이다운 엉뚱한 생각에 담은 전형적 동시도 있기는 했지만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동시만 보더라도 윤동주는 현실을 몰각하거나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든 동시대인들의 아픔을 보듬고 증언하려는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의 편린이 내보이는 동시를 썼다. 게다가 어린이도 읽고 어른도 읽을 동시를 통해서 실현했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3. 두 사람 시비가 서다
교토의 도시샤대학 교정에는 두 시인의 시비가 앞뒤로 서 있다. 윤동주 시비가 앞에 있고 뒤에 정지용의 시비가 있다. 윤동주의 시비에는 시 「서시(序詩)」가, 정지용의 시비에는 「압천(鴨川)」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압천은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 근처에 있는 가모가와 강의 한자 표기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어느 대학 교정에도 유학생 2명의 시비를 나란히 세워놓은 예는 없다. 1942년 3월에 일본에 가서 4월 2일에 도쿄의 릿쿄[立敎]대학에 입학, 잘 다니던 윤동주였다. 1924년에 입학해 1929년에 졸업한 정지용을 흠모하여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그해 10월 1일부터 도시샤대학에 다닌 윤동주는 전학을 갔기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나이 차는 15년이고 정지용이 18년 선배다. 지금도 교정에는 두 사람의 시비가 교정을 거니는 학생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있다.
취우 하늘
7. 남(南)쪽 하늘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
시산한 가을날―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
서리 내리는 저녁―
어린 영(灵)은 쪽나래의 향수(鄕愁)를 타고
남(南)쪽 하늘에 떠돌 뿐―
_ (1935.10. 추정, 평양에서, 윤동주 19세)
https://youtu.be/bzi4sb4vF_g?si=YKe_revGL8fwX8xJ
* 어떤 사람들은 남쪽 하늘을 3연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고에는 분명히 2연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나는 2연으로 읽는다.
1935년 10월 평양에서 쓴 작품으로 시의 제목인 '남쪽 하늘'은 윤동주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한반도가 아닌 만주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시인은 본국인 조선을 그리워하는 조선인으로서 향수를 머금고 남쪽 하늘을 향하여 날개를 펴는 제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 시인은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조국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1936년에 쓰인 작품인 <고향집>에서도 잘 확인된다.
윤동주 시인은 저렇게 남쪽 하늘을 그리워하는데 나는 윤동주 시인의 고향 북간도를 그리워한다. 우리들의 고향인 백두산 천지를 그리워한다. 요즘 <건국전쟁>이란 다큐멘터리 영화가 화제인 모양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조명을 다시 시도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있을 것이다. 공산화를 막은 것은 공이 될 것이지만 민간인 학살에 대한 과 또한 있을 것이다. 다만 이를 계기로 좌우 분열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인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윤동주 시인이 방학 때 고향으로 돌아갈 때 타고 갔던 기차를 타고 백두산으로 가고 싶다. 압록강을 걸어서 건너가고 싶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징검다리 건너서 걸어가고 싶다. 윤동주 시인의 고향 명동에도 걸어서 가보고 싶다.
'시산한'은 '스산한'의 방언이다.
'쪽-나래'는 '작은 날개'를 뜻한다.
* 원문표기
- '가지었다.' -> '가지엿다.'
- '서리 내리는 저녁' -> '서리나리는 져녁'
https://youtu.be/5HqUzEOjkbY?si=R-eePDvvOxFBrgRX
종점이 시점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아침, 저녁으로 이 자국을 밟게 되는 데 이 자국을 밟게 된 연유가 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살았을 듯한 우거진 송림 속, 게다가 덩그러니 살림집은 외따로 한 채뿐이었으나 식구로는 굉장한 것이어서 한 지붕 밑에서 팔도 사투리를 죄다 들을 만큼 모아놓은 미끈한 장정들만이 욱실욱실하였다. 이곳에 법령은 없었으나 여인금납구였다. 만일 강심장의 여인이 있어 불의의 침입이 있다면 우리들의 호기심을 저윽이 자아내었고, 방마다 새로운 화제가 생기곤 하였다. 이렇듯 수도생활에 나는 소라 속처럼 안도하였던 것이다. 사건이란 언제나 큰 데서 동기가 되는 것보다 오히려 적은 데서 더 많이 발작하는 것이다. 눈 온 날이었다. 동숙하는 친구의 친구가 한 시간 남짓한 문안 들어가는 차시간까지를 낭비하기 위하여, 나의 친구를 찾아 들어와서 하는 대화였다. 「자네 여보게 이 집 귀신이 되려나?」 「조용한 게 공부하기 작히나 좋잖은가」 「그래 책장이나 뒤적뒤적하면 공분 줄 아나. 전차 간에서 내다볼 수 있는 광경, 정거장에서 맛볼 수 있는 광경, 다시 기차 속에서 대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생활 아닌 것이 없거든. 생활 때문에 싸우는 이 분위기에 잠겨서, 보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이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아니겠는가. 여보게! 자네 책장만 뒤지고 인생이 어드렇니 사회가 어드렇니 하는 것은 16세기에서나 찾아볼 일일세. 단연 문안으로 나오도록 마음을 돌리게」 나한테 하는 권고는 아니었으나 이 말에 귀틈 뚫려 상푸둥 그러리라고 생각하였다. 비단 여기만이 아니라 인간을 떠나서 도를 닦는다는 것이 한낱 오락이요, 오락이매 생활이 될 수 없고, 생활이 없으매 이 또한 죽은 공부가 아니랴. 하야 공부도 생활화하여야 되리라 생각하고 불일내에 문안으로 들어가기를 내심으로 단정해 버렸다. 그 뒤 매일같이 이 자국을 밟게 된 것이다. 나만 일찍이 아침거리의 새로운 감촉을 맛볼 줄만 알았더니 벌써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 포도는 어수선할 대로 어수선했고, 정류장에 머물 때마다 이 많은 무리를 죄다 어디 갖다 터뜨릴 심산인지 꾸역꾸역 자꾸 박아 싣는데, 늙은이, 젊은이, 아이 할 것 없이 손에 꾸러미를 안 든 사람은 없다. 이것이 그들 생활의 꾸러미요, 동시에 권태의 꾸러미인지도 모르겠다. 이 꾸러미를 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뜯어보기로 한다. 늙은이 얼굴이란 너무 오래 세파에 짜들어서 문제도 안 되겠거니와 그 젊은이들 낯짝이란 도무지 말씀이 아니다. 열이면 열이 다 우수 그것이요, 백이면 백이 다 비참 그것이다. 이들에게 웃음이란 가물에 콩싹이다. 필경 귀여우리라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의 얼굴이란 너무나 창백하다. 혹시 숙제를 못해서 선생한테 꾸지람들을 것이 걱정인지 풀이 죽어 쭈그러뜨린 것이 활기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내 상도 필연코 그 꼴일 텐데 내 눈으로 그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다. 만일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듯 그렇게 자주 내 얼굴을 대한다고 할 것 같으면 벌서 요사하였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기로 하고 단념하자! 차라리 성벽 위에 펼친 하늘을 쳐다보는 편이 더 통쾌하다. 눈은 하늘과 성벽 경계선을 따라 자꾸 달리는 것인데 이 성벽이란 현대로써 캄플라지한 옛 금성이다. 이 안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졌으며 어떤 일이 행하여지고 있는지 성 밖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알 바가 없다. 이제 다만 한 가닥 희망은 이 성벽이 끊어지는 곳이다. 기대는 언제나 크게 가질 것이 못되어서 성벽이 끊어지는 곳에 총독부, 도청 무슨 참고관, 체신국, 신문사, 소방조, 무슨 주식회사, 부청, 양복점, 고물상 등 나란히 하고 연달아 오다가 아이스케이크 간판에 눈이 잠깐 머무는데 이 놈을 눈 나린 겨울에 빈집을 지키는 꼴이라든가, 제 신분에 맞지 않는 가게를 지키는 꼴을 살짝 필름에 올리어 본달 것 같으면 한 폭의 고등 풍자만화가 될 터인데 하고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하기로 한다. 사실 요즈음 아이스케이크 간판 신세를 면치 아니 치 못할 자 얼마나 되랴. 아이스케이크 간판은 정열에 불타는 염서가 진정 아수롭다.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느라면 한 가지 꺼리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도덕률이란 거추장스러운 의무감이다. 젊은 녀석이 눈을 딱 감고 버티고 앉아 있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번쩍 눈을 떠본다. 하나 가차이 자선할 대상이 없음에 자리를 잃지 않겠다는 심정보다 오히려 아니꼽게 본 사람이 없었으리란 데 안심이 된다. 이것은 과단성 있는 동무의 주장이지만 전차에서 만난 사람은 원수요, 기차에서 만난 사람은 지기라는 것이다. 딴은 그러리라고 얼마큼 수긍하였댔다. 한자리에서 몸을 비비적거리면서도 「오늘은 좋은 날씨올시다.」「어디서내리시나요」 쯤의 인사는 주고받을 법한데, 일언반구 없이 뚱한 꼴들이 작히나 큰 원수를 맺고 지내는 사이들 같다. 만일 상냥한 사람이 있어 요만쯤의 예의를 밟는다고 할 것 같으면, 전차 속의 사람들은 이를 정신이상자로 대접할 게다. 그러나 기차에서는 그렇지 않다. 명함을 서로 바꾸고 고향 이야기, 행방이야기를 꺼리낌없이 주고받고 심지어 남의 여로를 자기의 여로인 것처럼 걱정하고, 이 얼마나 다정한 인생행로냐. 이러는 사이에 남대문을 지나쳤다. 누가 있어 「자네 매일같이 남대문을 두 번씩 지날 터인데 그래 늘 보곤 하는가」라는 어리석은 듯한 멘탈 테스트를 낸다면은 나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본달 것 같으면 늘이 아니라 이 자국을 밟은 이래 그 모습을 한번이라도 쳐다본 적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하기는 그것이 나의 생활에 긴한 일이 아니매 당연한 일일 게다. 하나 여기에 하나의 교훈이 있다. 회수가 너무 잦으면 모든 것이 피상적이 되어버리나니라. 이것과는 관련이 먼 이야기 같으나 무료한 시간을 까기 위하여 한 마디 하면서 지나가자. 시골서는 제로라고 하는 양반이었던 모양인데 처음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가서 며칠동안 배운 서울 말씨를 섣불리 써가며 서울 거리를 손으로 형용하고 말로서 떠벌여 옮겨 놓더란데, 정거장에 턱 내리니 앞에 고색이 창연한 남대문이 반기는 듯 가로 막혀 있고, 총독부집이 크고, 창경원에 백 가지 금수가 봄 직했고 덕수궁의 옛 궁전이 회포를 자아냈고, 화신 승강기는 머리가 힝―했고, 본정엔 전등이 낮처럼 밝은데 사람이 물 밀리듯 밀리고, 전차란 놈이 윙윙 소리를 지르며 지르며 연달아 달리고― 서울이 자기 하나를 위하여 이루어진 것처럼 우쭐했는데 이것쯤은 있을 듯한 일이다. 한데 게도 방정꾸러기가 있어 「남대문이란 현판이 참 명필이지요.」 하고 물으니 대답이 걸작이다. 「암 명필이구말구. 남자 대자 문자 하나 하나 살아서 막 꿈틀거리는 것 같데.」 어느 모로나 서울자랑 하려는 이 양반으로서는 가당한 대답일 게다. 이분에게 아현 고개 막바지기에, - 아니 치벽한 데 말고 - 가차이 종로 뒷골목에 무엇이 있던가를 물었더라면 얼마나 당황해 했으랴. 나는 종점을 시점으로 바꾼다. 내가 내린 곳이 나의 종점이요, 내가 타는 곳이 나의 시점이 되는 까닭이다. 이 짧은 순간 많은 사람 사이에 나를 묻는 것인데 나는 이네들에게 너무나 피상적이 된다. 나의 휴머니티를 이네들에게 발휘해낸다는 재주가 없다. 이네들의 기쁨과 슬픔과 아픈 데를 나로서는 측량한다는 수가 없는 까닭이다. 너무 막연하다. 사람이란 회수가 잦은 데와 양이 많은 데는 너무나 쉽게 피상적이 되나보다. 그럴수록 자기 하나 간수하기에 분망하나보다. 시그널을 밟고 기차는 왱―떠난다. 고향으로 향한 차도 아니건만 공연히 가슴은 설렌다. 우리 기차는 느릿느릿 가다 숨차면 가정거장에서도 선다. 매일같이 웬 여자들인지 주룽주룽 서 있다. 제마다 꾸러미를 안았는데 예의 그 꾸러미인 듯 싶다. 다들 방년된 아가씨들인데 몸매로 보아 하니 공장으로 가는 직공들은 아닌 모양이다. 얌전히들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판단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하나 경망스럽게 유리창을 통하여 미인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피상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될지 모른다. 투명한 듯하나 믿지 못할 것이 유리다. 얼굴을 찌깨놓은 듯이 한다든가 이마를 좁다랗게 한다든가 코를 말코로 만든다든가 턱을 조개턱으로 만든다든가 하는 악희를 유리창이 때때로 감행하는 까닭이다. 판단을 내리는 자에게는 별반 이해관계가 없다손 치더라도 판단을 받는 당자에게 오려던 행운이 도망갈는지를 누가 보장할소냐. 여하간 아무리 투명한 꺼풀일지라도 깨끗이 벗겨버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윽고 터널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데 거리 한가운데 지하철도도 아닌 터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이 터널이란 인류역사의 암흑시대요, 인생행로의 고민상이다. 공연히 바퀴소리만 요란하다. 구역날 악질의 연기가 스며든다. 하나 미구에 우리에게 광명의 천지가 있다. 터널을 벗어났을 때 요즈음 복선공사에 분주한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아침 첫차에 나갔을 때에도 일하고 저녁 늦차에 들어올 때에도 그네들은 그대로 일하는데 언제 시작하여 언제 그치는지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다. 이네들이야말로 건설의 사도들이다. 땀과 피를 아끼지 않는다. 그 육중한 도락구를 밀면서도 마음만은 요원한 데 있어 도락구 판장에다 서투른 글씨로 신경행이니 북경행이니 남경행이니 라고 써서,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밀고 다닌다. 그네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고력에 위안이 안 된다고 누가 주장하랴. 이제 나는 곧 종시를 바꿔야 한다. 하나 내 차에도 신경행, 북경행, 남경행을 달고 싶다. 세계일주행이라고 달고 싶다. 아니 그보다 진정한 내 고향이 있다면 고향행을 달겠다. 다음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https://youtu.be/KNVBfEoZJdg?si=EykkAcQAxeGlBGHm
https://youtu.be/A1SbYM8gYD8?si=Hwq7YOyjunY312ly
자연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드립니다 : 제주도 제주시 이호테우 해변에서
https://youtu.be/grx_dkxima4?si=uqg2GRgiCueQlmNV
* 지난 번에 쓴 글입니다
요즘 육지에는 폭설이 내리기도 하고 봄비가 내리기도 한다. 설악산 쪽에는 폭설이 내려 눈꽃을 피운다고 하고 남쪽 마을에는 매화꽃이 한창 피어난다고 한다. 백매와 홍매가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한다. 이 좁은 땅에서도 어느곳에서는 폭설이 내려 겨울꽃을 피우고 어느곳에서는 따듯한 봄비가 내려 봄꽃을 피운다고 한다. 나는 따뜻한 나라 제주도에서 오늘도 산책을 한다. 제주도는 요즘 고사리 장마처럼 계속되는 비의 나날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가끔은 빗물을 말리는 해가 가끔 나타난다.
나는 언제 다시 비가 내릴 지 몰라서 우산을 들고 산책을 한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있을 지 몰라서 우산을 준비해서 낮게 내려앉은 구름 아래를 걸어가고 있다. 천막처럼 낮게 내려앉은 구름 아래에서도 나는 안다. 저 구름 위에는 맑고 밝게 빛나는 햇빛이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구름을 밟고 건너가는 햇발의 발자국소리를 듣는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들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보인다고 꼭 그것이 진실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꼭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텃밭이 있다. 연대포구 곁에 있는 작은 집 앞마당을 좋아한다. 다른 집들처럼 잔디를 깔지 않고 무와 배추와 상추와 쪽파와 포도나무까지 심어놓고 마당이 온통 식탁인 집이 있다. 보리수나무를 보살피는 할아버지께 여쭈었더니 증조할아버지때부터 살았으니 180년이 넘었다고 말한다. 180년이 넘게 한 곳에서 살았다는 한 가족의 내력을 더듬어본다. 점점 도심에 가깝게 다가간 마을의 내력을 생각한다. 이제는 도심이 되어버린 마을을 생각한다. 연대마을에는 이제 빈 연대와 파도소리를 끌어안은 카페들과 모텔들이 솟아오른다.
그런 마을에서 집은 더욱 키를 낮추고 집보다 넓은 텃밭의 무와 배추들이 꽃대의 높이를 발돋움하고 있다.
산책을 하다가 느닷없이 빙하기를 생각한다. 제주도가 육지와 하나였던 시절을 생각한다. 이어도가 제주도와 한 몸이었던 시절을 생각한다. 이어도가 온전히 몸을 드러내고 살았던 시절을 생각한다. 제주도까지 걸어왔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매머드를 따라서 서귀포 사계해변까지 따라왔던 사람들의 발자국을 생각한다. 화석이 되어버린 발자국들을 생각한다. 새발자국도 사슴발자국도 사람발자국도 화석이 되어버린 사연을 생각한다. 암모나이트 화석을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를 생각한다.
윤동주 시인이 보았던 제비의 후손이 이제 곧 제주도에도 날아올 것이다. 내가 사는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에도 올 것이다. 퍼물논에서 흙을 물어와서 집을 지으리라. 흥부의 박넝쿨도 지붕으로 올라가 박꽃을 환하게 피우고 달덩이 같은 박도 둥그렇게 열리리라. 무는 무답게 자라고 배추는 배추답게 자라고 쪽파는 족파답게 푸르게 자란다. 바랭이는 바랭이답게 쇠비름은 쇠비름답게 명아주는 명아주답게 자라리라. 환삼덩굴은 환삼덩굴답게 자라리라. 물피·물달개비·쇠털골·밭뚝외풀·방동사니·알방동사니·바람하늘지기·마디꽃, 바랭이·뚝새풀·돌피·강아지풀·쇠비름·반하·갈퀴덩굴·명아주....,
사람들은 많은 들꽃들을 잡초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잡초가 따로 없다. 사람들이 그저 자신들이 사랑하지 않는 풀들을 잡초라고 뽑아버린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물만을 위하여 많은 다른 풀들을 뽑아버린다. 그런 사람들의 폭력성은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생명들을 대하는 면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세상은 인간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다른 모든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야할 우리들의 공유재산이라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우리 인간들은 먼저 욕심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콩밭짓거리를 아시나요? 건국전쟁을 아시나요? 이승만을 아시나요? 권력욕과 희생정신을 아시나요? 염천을 아시나요? 놀란흙을 아시냐요? 내가 좋아하는 텃밭을 아시나요? 잔디 마당보다 더 좋은 텃밭을 아시나요?
날마다 차려내는 자연의 식탁을 아시나요? 꽃대 올라오는 봄날을 아시나요? 환하게 배부른 아침을 아시나요?
파리·딱정벌레·매미·날도래·하루살이·벌·잠자리를 먹고 사는 제비를 아시나요? 이제 곧 제비가 올 것만 같습니다. 파리 닥정벌레 매미 날도래 하루살이 잠자리를 먹으려고 돌아오는 강남 제비를 아시나요?
https://youtu.be/YcntT4ZYrrQ?si=Wl5ZjZ4N_u4o4Vsd
https://brunch.co.kr/@yeardo/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