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34
어느 문의 꼭대기에 검은 빛깔로/이런 말이 쓰인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스승님, 저 말뜻이 저에게는 무섭군요」//그러자 그분은 눈치를 채고 말하셨다/「여기서는 모든 의혹을 버려야 하고,/모든 소심함을 버려야 마땅하리라/우리는 내가 말했던 곳으로 왔으니,/너는 지성의 진리를 상실한/고통스러운 사람들을 보게 되리라」//그리고 그분은 평온한 표정으로/내 손을 잡으셨고, 위안을 얻은/나는 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갔다//그곳에선 탄식과 울음과 고통의 비명이/별빛 없는 대기 속으로 울려 퍼졌고,/그래서 처음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 단테의『신곡(神曲)』25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살랑 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_ (1936년 초 추정, 윤동주 19세)/12. 창구멍(동요) _ 1집/* 미발표작// ―『윤동주』12
하늘과 땅은 편애(仁) 하지 않습니다/모든 것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성인도 편애하지 않습니다/백성을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의 바람통/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고,/움직일수록 더욱더 내놓는 것//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법/중심(中)을 지키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_ (제5장 짚으로 만든 개처럼 - 도의 무편 무당성 ―『도덕경(道德經)』5
먼지의 꿈이 불을 품었다/불은 자신을 태우며/빛을 낳았다//별은 그렇게 태어났다/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밝히며/우주의 첫 울음을 터뜨렸다//탄생은 언제나/자신을 잃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_ (『숨의 연대기』제1부 - 빛이 오기 전(창조의 어둠) 4 「별의 태동」) ―『청람 김왕식』5
고향집 바로 앞에/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나는 연어가 되어/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나도 이제는/붉은 알을 낳아야만 한다// ―『배진성』1
나는 오래전부터 달의 뒷면을 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뒷면이 늘 궁금했다 그리하여 나는 산문(山門)을 드나들 듯 달문을 드나들고 싶었다 내가 그런 달문 이야기를 하니 존경하는 김종순 박사님께서 나에게 달문moon을 열어주셨다 직접 작명을 하셨다는 <달문moon>이란 이름을 나에게 주셨다 명상카페 이름으로 쓰라며 하사 하셨다 내가 늘 사용하던 ‘달문’ 옆에 ‘moon’이 나란히 앉으니 의미가 더 깊어지고 확장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달문moon>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달문moon은 ‘달’ 하나를 의미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달은 달이고 문은 moon을 한글로 표현한 말이고 moon 또한 우리말로는 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달문moon’은 그냥 ‘달’이라고만 써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달문을 한자로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
‘달’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여러 얼굴이 있다 ‘달’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달마대사와 ‘도달하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달(達)’이라는 글자의 뜻은 통달하다, 통하다, 이르다, 달하다, 전하다, 통용되다, 현달하다, 이루다, 갖추다, 대범하다, 정하다, 능숙하다, 드러나다, 드러내다, 마땅하다, 방자하다, 촐싹거리는 모양, 어린양, 등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문’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더 여러 얼굴이 있다 ‘문’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門, 文, 問, 聞, 紋, 蚊, 吻, 등이 먼저 떠오른다 문과 글과 입과 귀와 문양과 모기와 입술이 먼저 떠오른다 사람마다 그 의미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많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moon’이라는 글자는 나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상형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어쩐지 문과 달을 형상해 놓은 듯,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문자는 직선과 곡선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좋아하지 않고 영어도 좋아하지 않지만, ‘moon’이라는 글자만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달문’은 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도 있고 달이 드나드는 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날마다 월라봉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본다 사람들은 날마다 다른 모양의 달을 보지만 달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날마다 보고 있는 달의 모습은 어쩌면 달의 문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이 조금씩 더 많이 열었다가 날마다 다시 조금씩 닫고 있는 달의 문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떠오르는 달을 보고 월문(月門)으로 읽지 않고 달문(達門)으로 읽거나 달문(達文)으로 읽는다 그리고 나는 보름달보다 반달을 더 특별하게 생각한다 내 고향 뒷산 이름이 반월산이다 그 반월산 아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란히 누워계신다 나도 어쩌면 언젠가는 그 곁에 누워 긴 잠을 잘 것이다 나도 그렇게 반달 아래서 반월산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지금 글 앞에 앉아 있다 내 몸 안에서 반달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들의 심장 속에도 반달이 있다 대동맥판막은 반달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신께서 조직으로 만든 반달 세 개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달 두 개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완전히 열릴 수 없는 반달문에서는 피가 엉긴다 째깍째깍째깍 반달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아무리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잘 먹어도 피가 자꾸만 엉겨 핏줄을 막는다 아직은 확실히 신이 인간보다 한 수 위다
나는 이제 문이 가장 무섭다 어느 날 갑자기 닫혀버릴 문이 무섭다 길의 문이 무섭다 핏줄의 문이 무섭다 달의 문이 무섭다 달이 열고 닫아주는 달문이 무섭다 나는 아마 뇌졸중으로 나의 문을 닫을 것만 같다 어머니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함께 간직했던, 선천성 비후성 심근증 때문에, 돌연사를 염려했던 나는 이제 뇌졸중을 더 걱정하게 되었다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월판막이 나의 목숨을 겨우 살렸지만, 덕분에 나는 앞으로 평생 묽게 살아야만 한다 성형수술을 한 승모판막까지 염려하면서 더욱 묽게 살아야만 한다
나는 이 지상에서 떠나기 전에 발자국 몇 개 남기려고 한다 내가 명명한 <꿈삶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이 지상의 세상을 읽고 내가 늘 생각했던, 작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 하나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은, 달문moon처럼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youtu.be/QmNwX0hjJgU?si=jN4itupWAija-zvV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 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_ (1936년 초 추정, 윤동주 20세)
12. 창구멍(동요) _ 1집
* 미발표작
https://youtu.be/qZ-u4EryuIU?si=FOSMZ80Zyj_nywgo
이 시는 1936년에 쓰인 작품으로 화자인 아이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일하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난한 삶 때문에 그리움을 견뎌야 하는 아이가 뚫어놓은 창구멍을 통해서 식민 치하의 갑갑한 현실에서 미약하게나마 희망을 엿보는 시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부모와 헤어져 있는 아이들의 그리움은 <오줌싸개 지도>와 <햇빛, 바람>이라는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창구멍'이라는 표현은 <초 한 대>에서도 나온다.
윤동주 시인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 '비치웁니다'와 같은 피동형 어미를 많이 접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시>에서 등장하는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가 있다.
* 원문표기
- '우리 아빠' -> '우리압바'
- '침을 발라' -> '춤을발려'
- '뚫어논' -> '뚤려논'
- '작은 창구멍' -> '적은창구멍'
- '아침해' -> '아츰해'
- '비치웁니다.' -> '빛이움니다'
- '저녁에' -> '져녁에'
- '나무 팔러간' -> '나무팔려간'
- '혀 끝으로' -> '헤끝으로'
- '날아듭니다.' -> '날아듬니다.'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
나도 이제는
붉은 알을 낳아야만 한다
시집 한 권이 왔다. 검은 관 하나가 도착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서 나에게 왔다. 생전에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왔다.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음이 분명하다. 아직은 따뜻한 어느 시인이 왔다. 비석 같은 시집이 왔다. 나를 갑자기 찾아온 사람, 처음으로 나를 만나려고 온 사람,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온 사람, 죽어서 겨우 인연이 된 사람, 죽음의 길을 가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시인을 만난다. 운명처럼 만난 그 시인의 따뜻한 숨결을 통하여 그와 나를 함께 읽기 시작한다.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는 그는 나에게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며 쿠바도 보여주고 애인도 보여준다. ‘뭇별이 총총’한 밤하늘까지 모두 보여준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것들을 차례대로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깊이 뒤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시인의 길을 찾아서 새롭게 출발한다. 그의 종착역은 이제 나의 출발역이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달의 뒷면을 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뒷면이 늘 궁금했다. 그리하여 나는 산문(山門)을 드나들 듯 달문을 드나들고 싶었다. 내가 그런 달문 이야기를 하니 존경하는 김종순 박사님께서 나에게 달문moon을 열어주셨다. 직접 작명을 하셨다는 <달문moon>이란 이름을 나에게 주셨다. 명상카페 이름으로 쓰라며 하사 하셨다. 내가 늘 사용하던 ‘달문’ 옆에 ‘moon’이 나란히 앉으니 의미가 더 깊어지고 확장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달문moon>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달문moon은 ‘달’ 하나를 의미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달은 달이고 문은 moon을 한글로 표현한 말이고 moon 또한 우리말로는 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달문moon’은 그냥 ‘달’이라고만 써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달문을 한자로 바꾸어서 생각해본다.
‘달’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여러 얼굴이 있다. ‘달’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달마대사와 ‘도달하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達’이라는 글자의 뜻은 통달하다, 통하다, 이르다, 달하다, 전하다, 통용되다, 현달하다, 이루다, 갖추다, 대범하다, 정하다, 능숙하다, 드러나다, 드러내다, 마땅하다, 방자하다, 촐싹거리는 모양, 어린 양, 등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문’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더 여러 얼굴이 있다. ‘문’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門, 文, 問, 聞, 紋, 蚊, 吻, 등이 먼저 떠오른다. 문과 글과 입과 귀와 문양과 모기와 입술이 먼저 떠오른다. 사람마다 그 의미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많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moon’이라는 글자는 나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상형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어쩐지 문과 달을 형상해 놓은 듯,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문자는 직선과 곡선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좋아하지 않고 영어도 좋아하지 않지만, ‘moon’이라는 글자만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달문’은 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도 있고 달이 드나드는 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날마다 월라봉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본다. 사람들은 날마다 다른 모양의 달을 보지만 달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날마다 보고 있는 달의 모습은 어쩌면 달의 문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이 조금씩 더 많이 열었다가 날마다 다시 조금씩 닫고 있는 달의 문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떠오르는 달을 보고 월문(月門)으로 읽지 않고 달문(達門)으로 읽거나 달문(達文)으로 읽는다. 그리고 나는 보름달보다 반달을 더 특별하게 생각한다. 내 고향 뒷산 이름이 반월산이다. 그 반월산 아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란히 누워계신다. 나도 어쩌면 언젠가는 그 곁에 누워 긴 잠을 잘 것이다. 나도 그렇게 반달 아래서 반월산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지금 글 앞에 앉아 있다. 내 몸 안에서 반달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들의 심장 속에도 반달이 있다. 대동맥판막은 반달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신께서 조직으로 만든 반달 세 개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달 두 개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완전히 열릴 수 없는 반달문에서는 피가 엉긴다. 째깍째깍째깍 반달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아무리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잘 먹어도 피가 자꾸만 엉겨 핏줄을 막는다. 아직은 확실히 신이 인간보다 한 수 위다.
나는 이제 문이 가장 무섭다. 어느 날 갑자기 닫혀버릴 문이 무섭다. 길의 문이 무섭다. 핏줄의 문이 무섭다. 달의 문이 무섭다. 달이 열고 닫아주는 달문이 무섭다. 나는 아마 뇌졸중으로 나의 문을 닫을 것만 같다. 어머니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함께 간직했던, 선천성 비후성 심근증 때문에, 돌연사를 염려했던 나는 이제 뇌졸중을 더 걱정하게 되었다.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월판막이 나의 목숨을 겨우 살렸지만, 덕분에 나는 앞으로 평생 묽게 살아야만 한다. 성형수술을 한 승모판막까지 염려하면서 더욱 묽게 살아야만 한다.
나는 이 지상에서 떠나기 전에 발자국 몇 개 남기려고 한다. 내가 명명한 <꿈삶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이 지상의 세상을 읽고 내가 늘 생각했던, 작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 하나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은, 달문moon처럼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