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還甲), 늦게 쓰는 일기 / 배진성

―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42

by 강산





환갑(還甲), 늦게 쓰는 일기 / 배진성





제4곡//단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옥의 첫째 원 림보에 와 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죄를 짓지 않았고 덕성 있는 삶을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거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다 그들은 육체적 형벌을 받고 있지 않지만 천국으로 올라갈 수 없기에 괴로워한다 여기에서 단테는 위대한 옛 시인들과 철학자들을 본다//커다란 천둥소리가 내 머릿속의 깊은/잠을 깨웠고,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사람처럼 나는 깜짝 놀라 정신이 들었다//벌떡 일어선 나는 눈을 들어 사방을/둘러보며,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알아보려고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사실 나는 끝없는 고통의 아우성이/가득한 고통스러운 심연의 골짜기,/그 기슭 위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그곳은 깊고 어두웠으며, 안개가 얼마나/자욱한지 아무리 바닥을 보려고 해도/나는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 단테의『신곡(神曲)』32


「황혼(黃昏)//햇살은 미닫이 틈으로/길쭉한 일 자(一字)를 쓰고……지우고……//까마귀 떼 지붕 위로/

둘, 둘, 셋, 넷, 자꾸 날아 지난다/쑥쑥, 꿈틀꿈틀 북쪽 하늘로,//내사……/북쪽 하늘에 나래를 펴고 싶다//

_ (1936.3.25. 평양에서, 윤동주 19세)/19. 황혼(黃昏)(시) _1936.3.25.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 2로 개작// ―『윤동주』19


제15장//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미묘 현통(微妙玄通)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드러난 모습을 가지고 억지로 형용을 하라 한다면/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사방의 이웃 대하듯 주춤거리고,/손님처럼 어려워하고,/녹으려는 얼음처럼 맺힘이 없고,/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고,/계곡처럼 트이고,/흙탕물처럼 탁합니다//탁한 것을 고요히 하여 점점 맑아지게 할 수 있는 이/누구겠습니까?/가만히 있던 것을 움직여 점점 생동하게 할 수 있는 이/누구겠습니까?//도를 체득한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채워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새로워집니다// _ (제15장 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 - 도인의 외적 특색 ―『도덕경(道德經)』15


「돌의 잠」//돌은 불의 기억이었다/타오름이 식으며/세상은 처음으로 형태를 얻었다//불이 잠든 자리에서/돌은 고요히 숨을 쉬었다/그 단단함은 멈춤이 아니라/시간의 응결이었다//돌은 움직이지 않았지만/세상의 진동을 다 품고 있었다//그 표면엔 별빛이 스며 있었고/그 속엔 바람이 잠들어 있었다/돌은 기억의 집이었다//그 기억은 침묵의 언어로 남았다// _ (『숨의 연대기』제2부 - 돌과 바람의 언어(형태의 창조) 1 「돌의 잠」) ―『청람 김왕식』12


늦게 쓰는 일기//1966년 참꽃 불타는 2월 28일 새벽 두 시/그믐달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눈썹이/떨어지고 닭도 울지 않았다 개 한 마리가/어둠 속에서 컴컴한 어둠을 향해/컹컹 짖었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았다/울음 없는 아이로 태어나 누워만 있었다/송아지 울음소리가 걸어 나오는 물소리/가느다랗게 들리고 핑경 같은 별들이/말똥말똥 눈을 뜨고 잠들지 못하는 그 사이로/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별무덤을 파헤치고 다시 태어났다/그 자리에 나의 탯줄과 함께 누워있는 어머니/무덤가 어린 쑥 잎에도 향기가 오르고/

나는 어머니가 누운 만큼 겨우 일어설 수/있었다 별똥별이 떨어지고 숲이 있는/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지상에/

세상은 있었고 내가 태어나면서 같이 태어난/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러한 아침으로/때 아닌 비가 내리고 담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_ (1989년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늦게 쓰는 일기」) ―『배진성』8






윤동주 시인의 일생은, 몸은 아래로 내려가고, 정신은 하늘로 향했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났다 명동촌의 명동소학교를 나와 용정의 은진중학교로 진학했다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거쳐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그리고 1938년 4월 9일 드디어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또한 1942년 4월 2일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경도의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편입학하였다 다음 해 1943년 7월 14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특별한 곳에서 태어나 평생 길을 찾다가 떠났다 평생 공부를 하다가 길을 찾아 떠났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 나는 전남 곡성군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고 밤새 나를 찾아 헤매었다 인터넷으로 주민등록표 초본을 열람하였다 옛날에 내가 보았던 초본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간편하게 변했다 초본에는 나의 출생지가 나와 있지 않았다 나의 주소지 변동사항이 29번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1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957번지, 1975년 9월 23일 전입……, 나는 그 이전의 나의 행적을 찾고 싶었다 1번의 주소지는 지금 내 고향집이 있는 주소지였다 내 기억 속에는 그 고향집 징검다리 건너에 유년시절이 있었다


나는 다시 제적초본을 열람하였다 출생장소가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1099번지로 되어 있었다 나의 기억과 달랐다 나는 지금껏 징검다리 건너 월경리 외딴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살았던 월경리 2구, 행정리(행경리)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내 무의식적인 기억 속에는 방의 벽이 기울어져 있고 방바닥도 수평이 아니고, 천정에서 빗물이 떨어져서 방에 세숫대야를 놓고 밤새 빗물을 받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원등리 1099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신고일은 1968년 10월 15일로 기록되어 있었다 신고인은 아버지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왜 2년도 더 지나서 출생신고를 하셨을까 그리고 왜 2월 28일로 출생신고를 하셨을까? 어머니께서는 늘 내가 2월 24일 아침 6시에 태어났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태어나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제적초본에 기록된 나의 출생지와 나의 기억 속의 출생지를 비교하며 밤새 고향의 길들을 둘러보았다(얼마 전 추석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누워계신 반월산에서 큰 형님께 여쭈어보니 행경리 물가에 있었던 기울어진 집에서 태어났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첫 시집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나의 첫 시집에는 나의 출발과 나의 고향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나는 홀로 정리한 시집 원고를 가방에 넣고 문학사상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때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한국문단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문학사상 사무실에 가서 인사를 하고 차를 한 잔 마시고 나는 그냥 나왔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시집 이야기는 한 마디 꺼내보지도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때 시집 이야기를 꺼냈다면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나 웃음이 나올 일인가 신인상 당선되고 1년도 안된 놈이 불쑥 찾아와서 시집을 내달라고 떼를 쓴다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당돌한 놈이 아닌가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걸으며 어깨가 축 처지고 있었다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타자를 쳐서 나름대로 시집을 만들었는데 시집 이야기를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오는 내 모습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컴퓨터가 없는 시절이어서 타자기로 원고 정리를 하였다) 여수에서 서울까지 그 먼 길을 일부러 찾아갔으면서도 정작 다른 일로 왔다가 잠시 들렀다고 둘러대는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기운이 빠져서 털레털레 길을 걷고 있는데 길가 가판대의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신문에 신춘문예 응모 광고가 실려 있었다 나는 그 신문을 1부 사서 여수로 돌아왔다 어차피 버려질 원고였는데 차라리 신춘문예에 응모라도 해보자 그래서 나는 시집 원고 표지만 바꾸어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되었다 물론, 기존에 발표한 몇 편의 시들은 당연히 빼고 보냈다


아마도 신춘문예 사상 이런 응모자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심사평도 이례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같은 해 동아일보에 응모했던 다른 분들께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이렇듯 생뚱맞게 응모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좋은 시인이 탄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최종심에 올랐던 다른 분들의 심사평 한 줄 없었으니 내가 많이 야속했을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두 심사위원은 별다른 이견 없이 배진성 씨를 당선 시인으로 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그는 두 권 정도의 시집이 될 만한 작품을 투고하였다. 오히려 어려움은 이 많은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하느냐 하는 데 있었다. 결국 ‘길이 있는 풍경’과 ‘밤하늘은 반란이다’ 두 편을 골랐지만, 이 선정은 필연성이 있는 것이라고 자부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는 것은 배진성 씨의 작품이, 많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의 시는 오늘의 범람하고 몽롱하고 막연한 서정시나 비분강개의 시의 언어에 비하여 괄목할 만한 탄탄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의 시가 오늘의 현실 ―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기에 서정이나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느낌과 판단에도 흐릿함이 있고 탄탄함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수가 많은 만큼 또 고른 수준의 것인 만큼 그의 시가 믿을 만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수준의 한계가 이미 다 드러나 버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수준이 가장 바람직한 폭과 깊이, 무엇보다도 오늘의 수다스러운 시세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상과 표현의 압축에 도달하였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심사위원 / 김우창, 신경림


나는 이렇게 우연히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그 덕분에 첫 시집을 빨리 낼 수 있게 되었다 신춘문예 심사를 맡으셨던 김우창 교수님께서 내가 응모했던 원고를 민음사로 넘기셨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김우창 교수님께서 민음사와 많은 관련이 있었던 탓에 그렇게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민음사와의 인연이 닿게 되었다 글이나 시집은 따로 타고난 운명이 있는 듯했다 나에게는 그렇게 우연히 좋은 인연이 많이 찾아왔지만 나는 그 좋은 인연들을 나의 것으로 완전히 붙잡지는 못했다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자서(自序)


한 아이를 알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아픈 몸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한 아이의 비밀을 알고 있다 한 아이의 아픔을 알고 있다 그는 나밖에 몰랐다 나 또한 그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어쩌면 나인지도 모른다 그는 서럽도록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오직 그와 나밖에 몰랐다 그의 삶은 우리나라 현대사와도 같았다 그는 죽도록 사랑하는 일과 그리하여 매일 밤 유서를 쓰는 일 외에는 아무런 일도 할 줄 몰랐다 다른 일을 해보려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바람에 쓰러질 때마다 유서를 쓰는 일이 생활의 전부였다 살아 있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그는 편지와 유서를 썼다 하지만 그는 또한 가야 할 길이라면 어디든지 가보고 싶었다 뛰어가고 싶었다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는 또다시 아무도 모르게 쓰러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곁에 있었다 그가 쓴 유서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병을 가족들에게 들킬까 두려워 어느 날 문득 가출을 결심했다 그와 나는 함께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꿈길까지라도, 저승길까지라도 ……, 최대한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그리고 수 없이 많이 달아났다 우리들은 오늘도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우리는 또다시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헤매고 있다 우리들은 그렇게 살벌한 평화 속에서 40년도 넘게 함께 살아왔다 아직도 그의 투병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잠든 사이에 나는 그의 투병일지 혹은 유서들을 훔쳐내는 데 성공했다 참으로 숨죽이는 순간이다 조심스럽게, 이 비밀들을, 속삭이고 싶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오늘도 유언처럼 발설하고 있다 이제 막 새로 태어난 길이, 빈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늦게 쓰는 일기


1966년 참꽃 불타는 2월 28일 새벽 두 시

그믐달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눈썹이

떨어지고 닭도 울지 않았다 개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컴컴한 어둠을 향해

컹컹 짖었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 없는 아이로 태어나 누워만 있었다

송아지 울음소리가 걸어 나오는 물소리

가느다랗게 들리고 핑경 같은 별들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잠들지 못하는 그 사이로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별무덤을 파헤치고 다시 태어났다

그 자리에 나의 탯줄과 함께 누워있는 어머니

무덤가 어린 쑥 잎에도 향기가 오르고

나는 어머니가 누운 만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별똥별이 떨어지고 숲이 있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지상에

세상은 있었고 내가 태어나면서 같이 태어난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러한 아침으로

때 아닌 비가 내리고 담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향에 대한 두 가지 시선 / 이 경 호 (문학평론가)



1


배진성은 끊임없이 그의 고향에 시선을 던지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고향에서 유년시절에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체험은 안락하지 않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질병과 가난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질병과 가난은 그를 외롭게 만들고 이 외로움은 그의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심장병을 안고 태어난 그는

혼자서 혼자서 혼자서 그리고 또 홀로

허약한 하늘 한 귀퉁이 아래서 울었습니다

가난은 그의 입을 틀어막았고

말 못 할 아픔으로 쓰러져 자랐습니다

― 「고향을 찾아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외로움으로 말미암아 그는 과묵해지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여건과 분위기 속에서 그는 남달리 고향의 자연세계에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성인이 된 지금도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점인 것 같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고향에서 가꾸어 온 자연에 대한 친밀감은 때로 현재의 삶을 쉽게 비판하거나 판단케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벗는다 사람들이 서둘러 벗는다

하늘을 벗고 산을 벗고 바다를 벗고

(중략)

목숨까지도 쉽게 벗어던진다


벗어야 할 것은 벗지 못하고

자꾸만 입으면서, 욕심을 입으면서

자꾸만 자꾸만 죄를 껴입으면서

이데올로기 전쟁 종교전쟁 폭력

시위와 거짓 그리고 빚더미와 어둠


쉽게 벗고 쉽게 다시 입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벗어던져 버린다 떠나버린다

사람이 사람됨을 벗어던져 버리는 시대에

나는 고향 여울물 소리를 추억처럼 입는다

―「사람이 사람을 벗는 시대에」


이 시는 <벗는다>와 <입는다>라는 동사를 현대인들의 삶의 자세와 접합시키면서 그들의 타락한 삶의 자세를 비판하고 있다. 시인 자신의 주장이 비교적 단순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독자들은 시에 쉽사리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두 동사와 그에 부속된 항목들이 너무 쉽게 구분되어 나열되고 있어서 비판의 설득력이 약화되고 있다. 또한 나열된 항목들이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화된 것들이라 생생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비판보다도 비판하게 된 동기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비판의 동기는 2연의 첫째행과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에 나타나 있다. 현대인들이 <하늘을 벗고 산을 벗고 바다를 벗고>, 즉 자연세계에 대한 친화력을 상실하는 데에서 타락한 삶의 자세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시인은 그런 자세를 극복하기 위하여 고향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추억처럼> 간직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인의 남다른 고향의 자연에 대한 친밀감이 현대의 복잡한 도시생활의 진면목을 차분하고 깊이 있게 파악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결국 현대인들의 타락한 삶의 자세에 대한 비판은 현재의 차분한 검토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유년시절부터 간직해 온 고향의 자연세계에 대한 체험과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의 삶에 대한 비판이 과거의 삶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될 때 그러한 비판은 적극적이거나 진취적인 현실적 자세로 인정되기 어렵지만 배진성의 경우에는 과거의 삶이 고통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는 점에서 별다른 관찰과 평가를 필요로 한다. 과거의 삶에 대한 향수가 고향의 자연세계를 향한 것일 때 그런 자세는 도피적인 혐의점을 지닐 수 있지만 과거의 어렵고 가난한 삶에 대한 추억은 현실의 삶에 대한 판단의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배진성의 경우에는 과거의 고향에서의 가난한 삶에 대한 추억이 오늘날 고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배진성의 고향에 대한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고향의 자연세계에 대한 시선이며 둘째는 고향에서의 생활에 대한 시선이다. 이 두 가지 시선은 각각 독립되어 한 편의 시를 이루기도 하고 서로 혼합되어 한 편의 시를 이루기도 한다.


2


그의 고향에 대한 첫 번째 시선, 즉 자연세계에 대한 시선은 어린 시절부터 질병 속에서 외롭게 자란 영혼이 오랜동안 익숙하게 가꾸어 온 것으로 자연스럽고도 세련되어 있다. 가령 <먼 산길을 내려와/ 지난겨울/ 밀린 생각을 풀 듯/머리를 푸는 개나리>(「엇비슷하게 내리는 4월」)같은 구절에서도 그러한 흔적을 부분적으로 볼 수 있듯이 시인과 자연의 교감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늦은 밤이었습니다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다가가서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별들이 제 몸을 비벼대며

따뜻해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중략)

떠벌이처럼 설치고 다녀도

혼자가 되어

밤길을 걸어보면 떠들 수 없습니다

그렇게 슬픔은 깊이 고입니다

참으로 혼자가 되어본 사람이면

밤길을 걷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저수지가 됩니다 거기에 또한

저수지가 있습니다 그 부근에는

하늘까지 젖어 있습니다

―「동백원 가는 길」


이 부분은 이 시집 전체의 내용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가 가장 복합적으로 정직하게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나타난 시인의 자세를 몇 가지로 나누어 적어보면 외로움, 슬픔, 깊은, 젖어 있음 등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인의 마음이 외로움에서 슬픔으로 그리고 깊음에서 젖어 있음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시인은 먼저 자연세계의 하나인 별을 통해서 외로움을 찾아내고 그 외로움을 밤길을 홀로 걷는 자신의 마음과 동일시하면서 슬픔으로 발전시킨다. 그런데 슬픔은 외로움으로 인하여 저수지처럼 깊어진다. 여기까지는 자연을 주관적으로 내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작 이 시의 깊은 맛은 <거기에 또한/ 저수지가 있습니다/ 그 부근에는/ 하늘까지 젖어 있습니다>에서 발견된다. 시인은 주관적으로 내면화했던 자연을 실제로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실제의 자연은 주관적인 느낌보다 훨씬 깊은 깨달음을 던져준다. 시인의 내면적인 슬픔의 깊이는 별다른 객관적 감동을 전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시인의 마음과 같은 실제 자연의 모습, 즉 부근의 하늘까지 젖게 만드는 저수지의 힘은 얼마나 은근하면서도 위력적인가. 안개 서린 저수지의 모습에서 하늘까지 슬픔에 젖게 만드는 삼투능력을 찾아내는 표현능력은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결국 이 시에서 슬픔의 깊고도 적극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시인이 고향의 자연세계에서 일차적으로 찾아내려고 하는 의미는 이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시인의 고통스럽고 외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세계는 주관적이고 현실의 삶에 대해서 소극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시인 스스로도 이러한 한계를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자신의 개인적인 처지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인 삶의 의미와 연관될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시도도 해본다. 「돌고 돌고 또 도는」, 「꽃이 지고 잎이」, 「봄단풍」, 「밤 가운데 개구리가」 등이 바로 그런 뜻으로 쓰인 시들이다.


나뭇잎에서 벌레 한 마리가 재주를 넘듯 뒹굴고

꽃이 나무가 땅이

몸을 바꾸어가는 계절처럼

…… 돈다 돈다 돈다 ……

과실들의 몸속으로

향기가 가득 돌고

―「돌고 돌고 또 도는」


개구리울음소리가

밤나무 키보다 크고

나무들이 개구리 숨소리에

자란다 밤 밖으로

―「밤 가운데 개구리가」


「돌고 돌고 또 도는」은 자연의 생동하는 모습을 재치 있게 관찰하고 그것을 삶의 역동적인 의미와 연관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역동적인 호흡에 맞는 시행의 변화를 구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밤 가운데 개구리가」는 청각의 효과를 시각과 연관시키면서 역시 삶의 역동성을 재치 있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이런 역동적인 모습의 의미를 표현함으로써 자연세계의 적극적인 모습을 구현하려는 취지가 주관적인 서정을 극복하려는 데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의욕이 앞선 나머지 자연의 대상물에 어색한 의미가 부여되거나 의미의 과포화가 이루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 자연의 대상에 부여한 의미가 어색하거나 지나칠 때 그 의미는 삶의 구체성을 상실하고 시인의 주관이 노출된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시인이 삶의 구체적인 모습과 삶의 개관적인 의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의 두 번째 시선 즉, 어린 시절부터 그와 그의 가족, 혹은 이웃사람들이 생활해 온 모습을 노래한 시들에 이르러서이다. 그런 시들은 「양계장」처럼 시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가능한 한 배제한 객관적 시점을 채택함으로써 생활의 구체적인 질감을 나타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자연의 사물조차 생활의 모습과 연관된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대가족이었다 봄에 쪼개 심은 몸 하나에

줄줄이 매달려 살다, 알몸으로 끌려 나왔다

―「감자를 캐며」


가난한 사람들이 주식으로 이용했던 감자의 모습과 가난한 식구의 헐벗은 모습을 대등하게 표현한 수법은 얼마나 자연스러워 보이는가. 시인은 또한 「겨울밤」이라는 시에서는 꿩을 잡기 위해 콩에 구멍을 뚫고 독약을 넣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자연스러운 연상의 기법으로 콩의 구멍과 사람의 입을 동일하게 취급하면서 세상의 험한 상황을 슬쩍 헐뜯기도 한다.


구멍에 싸이나를 넣고 막았다

어둠을 몰아넣고 죽음을 한 방울

쑤셔 박아 막아버렸다 모든 입을

틀어막아 버려라, 말 많은 놈은

문제가 있으니까 눈이 내렸다

죽음의 뒷모습으로 눈발이 날렸다

―「겨울밤」


연상의 기법을 통해 유년시절에 고향에서 겪은 어려운 삶의 추억을 현재의 농촌생활에 대한 건강한 의식과 입체적으로 연관시킨 「경운기」는 그의 고향에 대한 두 번째 시선이 가장 성공적으로 결실을 거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들판에서는 늘 보리타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미소 주인이셨던 아버지가

벨트에 물려 끌려가던 날부터

축이 헛도는 천정에서 다시 떨어지듯 우리 식구들은

빈 들판으로 내쫓겼다 발동기 같은 큰 형은

발동기를 뜯어 짊어지고 논둑길을 넘어 다녔다

타맥기도, 부서진 아버지 갈비뼈처럼 풀어

옮겨 맞추곤 했다 경운기들이

손쉽게 해치우고 들어가 쉬는 동안에도 우리는

들판에서 밤늦도록 이슬에 젖어야 했다

카바이드 불빛 아래서, 카바이드를 녹이는 물처럼

우리 식구들의 가슴은 애타게 들끓었다

(중략)

그리고 많은 날들 다음으로 오는 오늘,

털털털 탈탈탈 털털털털털 탈탈탈탈탈

들판을 온통 뒤집어엎어버리던 경운기가

골목마다 들쑤신다

추곡수매 공판날 줄서가는 아침,

하곡수매처럼 저 멀리 노인들이 손수레 밀고

끌고 오신다 빈 들판에 바람이 껍질을 벗고

지나간다 그 길가로 바람의 껍질이 차갑게 쌓여 있다

월경리 사람들의 깊은 사랑을 실어 나르는

경운기는 힘센 들짐승이다

그러한 아침 나는 다른 계절 속으로 떠나

눈길에 경운기 발자국을 만들며 고향으로 가는 길을 걸어간다


시의 화자는 <보리타작하는 소리>를 들으며 과거에 아버지가 경영하시던 정미소에서 나는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를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정미소의 발동기 소리는 바로 아버지의 사고로 인한 죽음과 그로 인해 비참해진 가족들의 생활로 이어진다. 아버지가 <축이 헛도는 천정에서 다시 떨어지듯 우리 식구들은/ 빈 들판으로 내쫓겼다>는 표현 속에서 연상의 자연스러운 이어짐을 엿볼 수 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 애태우던 식구들의 마음을 <카바이드를 녹이는 물처럼/ 우리 식구들의 가슴을 애타게 들끓었다>는 표현으로 비유해 본 것도 생생한 느낌을 환기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과거의 어렵던 상황으로 이어지던 연상은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다. 이 되돌아옴이 빛나 보인다. 가족이라는 좁은 테두리에 대한 회상에서 이웃이라는 넓은 테두리로 연상이 확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암담한 처지를 줄기찬 생활력과 사랑으로 극복한 현재의 활력 있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소리의 연상을 통해 이어지는 과정은 처음에 현재의 <보리타작하는> 탈곡기의 소리를 무심히 듣는 상황에서 과거의 정미소 발동기의 소리와 연관된 어려운 삶에 대한 추억을 거쳐 다시 현재의 경운기 소리와 연관된 활력 있는 삶의 자세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활력 있는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는 <월경리 사람들의 깊은 사랑을 실어 나르는/ 경운기는 힘센 들짐승이다>라는 표현이 이 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삶의 구체적인 모습이 삶의 의미 있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표현은 이 시인의 다른 시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다른 시에서 기계의 모습이 긍정적인 삶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를 찾기는 어려운 것이다. 시의 화자는 결국 이웃사람들의 활력 있는 생활자세에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깨달음을 얻어낸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다른 계절 속으로 떠나>라는 표현이 예사롭지 않은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다른 계절>이란 다음 행의 <눈길>로 겨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의 화자는 왜 겨울 속으로 떠나려는 것일까? 물론 그 떠남은 다시 돌아옴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화자는 아마 어려운 현실을 택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그런 현실이 익숙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현 실 속에서 사랑이 담긴 힘찬 발자국을 만들며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태도는 고향의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그의 고향에 대한 두 번째 시선은 이와 같은 경로로 가족의 어려웠던 과거의 삶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현재 고향에 사는 이웃사람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사랑으로 확산된다. 「이웃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은 연작시들은 이러한 시인의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이 연작시들은 마치 서사적인 내용을 술회하듯 생활의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묘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인 묘사 속에 따스한 인정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조리 있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런 연작시들이 성공한 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들은 무엇보다도 평범한 내용과 평이한 시의 서술방법만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바꾸어 말해서 그의 그런 시들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농촌의 어려운 생활모습, 혹은 많은 다른 시인들이 노래한 바 있는 농촌의 서정을 담아내고 있을 뿐 독자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어낼만한 새로운 체험과 의미를 엮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패는 어쩌면 시인의 한정된 체험 공간과 관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고향에 대한 체험은 자연세계와 가족들의 어려운 삶을 섬세하고도 깊은 정서와 의미로 걸러내는 데는 넉넉하지만 고향에 사는 이웃 사람들의 어려운 생활을 구체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데는 부족해 보인다. 혹은 그의 체험 공간에서 어려운 생활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의지와 현실에 대한 고민과 분노 등을 담은 부분이 제외되고 현실의 어려운 삶을 수동적으로 인내하며 살아온 전통적인 생활자세를 담은 부분이 지나치게 포장된 사실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시인의 고향에 대한 첫 번째 시선, 즉 고향의 자연세계를 향한 그의 마음가짐이 슬픔의 정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러한 자세는 현실에 대하여 소극적인 한계를 갖는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한계를 그가 의식하고 고향의 구체적인 생활을 어느 정도 객관적인 정황으로 묘사함으로써 고향의 모습이 삶의 현실적인 의미와 맺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려 했던 사실도 주목한 바 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그의 시들 또한 고향의 현실을 이끌어가는 냉엄한 원리들을 직시하기보다는 그런 현실 속에서 슬픔을 안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끌어안는데 급급한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력을 제시한다는 견지에서 이러한 자세는 약점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자세는 넓은 의미에서의 삶을 대하는 하나의 비극적 판단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런 자세를 지닐 때 현실에 대한 섣부른 개선책의 제시나 비판적 태도는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오히려 어려운 현실을 인내하며 조용한 변화를 모색하는 태도가 더욱 신뢰할만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그의 자세가 반드시 이런 속성을 정확하게 지니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시가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며 어렵게 살아가는 태도에 적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의 시는 슬픔의 정서가 덧씌워진 삶의 정황을 묘사할 때 고른 수준에 이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고향에 대한 첫 번째 시선과 두 번째 시선이 혼합되어 담긴 시들, 즉 고향의 자연과 구체적인 생활에 대한 묘사가 혼합되어 있는 시들 또한 슬픔의 정서가 덧씌워질 때 안정된 구도를 보여 준다.


밤새도록 들쑤신다 바다에

고기 잡으러 나간 아버지들과

형들은 다음날도 돌아오지 못하고

기다리던 어머니들은 파도처럼 누워

몸 뒤채이며 앓았다

(중략)

폐선은 기울 대로 기울어 헤어나지 못하고

형님들 어머니들 그리고 아버지들이

사정없이 떨고 있었다 이 밤

바람 찬 난장에서 지새워야 하는

비릿하게 물씬 거덜 난 바닷가 사람들

겨울에 기댄 채 쌓여 있었다 콤바인으로

온 밤을

바닥까지 끌어올려도 꿈같은 꿈은 끌려

올라오지 않고 겨울 포구의 얼어붙은 꿈들만

하염없이 깊어, 하염없이 깊어지고 있었다

―「겨울포구」


이 시가 안정된 구도를 지니고 있는 이유는 구체적인 생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로 치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도는 슬픔의 정서가 개입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에서 시인이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슬픔의 정서는 자연스럽게 시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 시가 안정된 구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안정된 구도 속에 독자에게 이미 낯익은 서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피폐해 가는 어촌의 생활을 기울어가는 <폐선>의 모습에 비유한 것이라던지 암담한 현실의 배경을 <겨울포구>로 설정해 놓은 점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고향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혼합된 시가 각각의 시선이 분리되어 있는 시에 비해 안정된 구도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그 안정된 구도 속에 낯익은 서정이 포함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런 시들은 고향의 자연세계에 시선을 주는 시에 비해 삶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과 고향의 생활레 시선을 주는 시에 비해 섬세한 서정을 담아낸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삼굿이 있는 고향」이라는 시에 이르면 그에게 익숙한 슬픔의 정서마저 자취를 감추고 보다 적극적인 삶의 원리와 자연스러운 생활의 활력이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삼굿이 있는 고향에서 나는

베 짜는 소리에 자랐다 하늘소가

숨어 사는 삼밭에서는 물레질 소리를 내며

바람이 산다 숲처럼 무성히 자라 출렁이는

삼밭에는 사랑의 비밀도 자란다

(중략)

삼굿의

아궁이에선 베 짜는 소리로 타들어가고

불꽃은 북처럼 재빨랐다 식구대로 모여 앉아

익은 삼을 벗긴다 하얗게 드러나는 살결

동네 아이들은 그 벗은 저릅대를

가지고 논다


이 시에서 적극적인 삶의 원리는 <삼밭에서는 물레질 소리를 내며/ 바람이 산다>에서 암시되기 시작한다. 삼나무의 잎과 줄기를 흔드는 <바람>과 <물레질>이라는 노동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소리>의 연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결합시킴으로써 삼나무가 보여주는 <사랑의 비밀>을 암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의 비밀>은 <식구대로 모여 앉아/ 익은 삼을> 벗기는 가족적인 화기애애한 노동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동네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놀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사랑의 비밀>은 사람들의 생활을 활력 있게 만드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삼나무의 순결하게 <드러나는> <사랑의 비밀>이며 삶의 적극적인 원리인 것이다.


이 시는 활력 있는 생활자세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향에 대한 두 번째 시선이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경운기」라는 작품에 비견될 수 있다. 「경운기」에 비하면 생활의 모습이나 의미의 폭이 좁은 편이지만 서정의 밀도는 한층 압축된 짜임새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압축된 밀도 속에 시인 자신이 익숙하게 부려낼 수 있는 슬픔의 정서를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에서 우러나는 삶의 의미가 한층 신선하게 전달된다.


이처럼 고향에 대한 첫 번째 시선과 두 번째 시선이 혼합된 시들 중에는 신선한 정서와 의미를 제시하는 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 시가 슬픔의 정서를 배제하고 생활의 활력 있는 모습을 애정 깊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향에 대한 그의 시선이 현실에 대한 소극적 자세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은 기우가 될 가능성도 있다.


3


배진성이 앞으로 그의 고향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볼지, 혹은 어떤 자세로 삶과 현실을 마주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당분간 현실을 성급하게 판단하고 개선하려는 태도와 거리를 두리라는 점을 예측해 볼 수는 있다. 그러한 예측은 그의 고향에 대한 시선이 아직 완전하게 과거를 벗어나지는 않았으며 그의 과거에 대한 집착이 고향의 자연세계에 대한 추억과 뒤얽혀 있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한 추억이 마련되어 있는 한 현실 속의 어려운 삶은 견딜만한 것이며 슬픔의 정서는 계속 그에게 익숙한 통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로가 마련되는 한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고향 사람들도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보다는 어려운 현실을 묵묵히 견디어내며 슬픔을 새기는 데 익숙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고향과의 그러한 소통 속에 그의 시가 계속 머무른다면 고향에 대한 그의 추억과 고향의 현실에 대한 그의 자세가 슬픔의 정서에 국한되지 않기 위하여 또한 고향의 현실에 대한 그의 체험이 일정한 테두리에 구속됨이 없이 새롭게 확산되기 위하여 고향에 대한 그의 시선은 좀 더 입체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입체적 시선에 가까운 형태가 바로 그의 두 가지 시선을 혼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두 가지 시선이 적절하게 혼합될 때 대체로 그의 시는 구체적인 생활과 삶의 서정적 의미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수준을 보여 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시선이 계속 그의 고향 주변을 기웃거리는 한 그는 우리네 현실의 가장 치열한 핵심을 벗어나 있다는 자책감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열쇠와 자물쇠



먼 옛날, 위협을 느낀 신이

인간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열쇠와 자물쇠 되었습니다


둘은 늘 반쪽이 그립습니다


열쇠는 자꾸 맞추어봅니다

자물쇠 잘 열리지 않습니다


열쇠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물쇠 열어주지 않습니다


자물쇠는 스스로 진화해서

안에서 열어야만 열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산책길입니다

산책은 살아 있는 책입니다

산책은

시간을 주고 사는 책입니다

혹시 제주 오시면 여러분도

밑줄을 그으며 읽어보시길……,




공자님은 소인과 군자로 나누었고

부처님은 부처와 중생으로 보았고

예수님은 믿음과 불신으로 보았고

소로우는 시민과 권력자로 보았고

다윈은 사람과 원숭이로 나누었고

서양인은 주인과 노예로 나누었고

동양인은 양반과 상놈으로 보았고

왕국은 왕족과 신하와 하층민으로

자본주의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공산주의는 당원들과 노동자로

민주주의는 유권자와 권력자로……,

그런데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할까?



* 연령(年齡)을 나타내는 한자어(漢字語): 15세: 지학(志學), 성동(成童). 20세: 약관(弱冠), 약령(弱齡), 약년(弱年), 방년(芳年), 방령(芳齡), 묘령(妙齡), 묘년(妙年). 30세: 이립(而立). 32세: 이모지년(二毛之年), 이모(二毛). 40세: 불혹(不惑). 50세: 지명(知命). 51세: 망륙(望六). 60세: 이순(耳順). 61세: 화갑(華甲), 환갑(還甲), 주갑(�甲), 환력(還曆), 회갑(回甲). 62세: 진갑(進甲). 61~70세: 칠질(七秩). 70세: 고희(古稀), 종심(從心), 희수(稀壽). 77세: 희수(喜壽). 80세: 팔순(八旬), 산수(傘壽), 팔질(八耋). 88세: 미수(米壽). 90세: 졸수(卒壽). 99세: 백수(白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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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yURnyRe26E?si=6Kkkn3fNVJkLjF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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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12화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16화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28화 시인의 월급은 얼마나 된다냐

12화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황토방 만들기 예습

정읍 종석산

은자의 꿈

06화 우리들의 고향

05화 경운기 외 6편

04화 징검다리

평생학교 서천꽃밭 달문moon

이어도공화국

모래 한 알의 꿈

취우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 0006

0. 윤동주 시인의 <꿈삶글>

10. 병아리 (1~10)

사이버 예절서당(노자 도덕경 1강)

9. (동시) 고향집

책 소개 접기

7. 남(南)쪽 하늘

남(南)쪽 하늘

김왕식님의블로그 : 네이버 블로그

평론가 청람 김왕식의 브런치스토리

11. 오줌싸개 지도

13. 짝수갑

14. 기왓장 내외

16. 이별(離別)

17. 식권(食券)

18. 모란봉(牡丹峰)에서

19. 황혼(黃昏)




19. 황혼(黃昏) / 윤동주



햇살은 미닫이 틈으로

길쭉한 일 자(一字)를 쓰고...... 지우고......


까마귀 떼 지붕 위로

둘, 둘, 셋, 넷, 자꾸 날아 지난다.

쑥쑥, 꿈틀꿈틀 북쪽 하늘로,


내사......

북쪽 하늘에 나래를 펴고 싶다.


_ (1936.3.25. 평양에서, 윤동주 20세)


19. 황혼(昏)(시) _1936.03.25.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https://youtu.be/35_hwkTdrUs?si=Xy9bP9bqrTqq4Qfs



윤동주 시인의 전체 작품 목록

제작 시기와 작품 나열 순서는 윤일주 교수가 작성한 것을 토대로 하였다




1. 초한대(시) _1934.12.24. 나의습작기의시아닌시, 중판1955, 삼판1976

2. 삶과 죽음(시) _1934.12.24. 1집, 정음사출판 중판, 삼판

3. 내일은 없다(시) _1934.12.24. 1집, 삼판

4. 거리에서(시) _1935.01.18. 1집, 중판, 삼판

5. 공상(空想)(시) _(?) 1집, 삼판, * <숭실활천> 1935년 10월 발표

6. 창공(蒼空)(시) _1935.10.20. 1집, 중팜, 삼판

7. 남(南)쪽 하늘(시) _1935.10.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옮겨 씀

8. 조개껍질(동요) _1935.12. 1집, 중판, 삼판,

9. 고향집(동시) _1936.01.06. 1집, 삼판, 본인이 작성한 목차에는 (동요)

10. 병아리(동요) _1936.01.06. 1집, 중판, 삼판, * <카톨릭소년> 1936.11.

11. 오줌싸개 지도(동시) _(?) 1집, 중판, 삼판, * <카톨릭소년> 1937.01.

12. 창구멍(동요) _(?) 1집, *미발표작

13. 짝수갑(동요) _(?) * 제목만 있음

14. 기와장 내외(동요) _(?) 1집, 중판, 삼판

15. 비둘기(시) _(?) 1집, 중판, 삼판

16. 이별(離別)(시) _1936.03.20. 1집, 삼판,

17. 식권(食券)(시) _1936.03.20. 1집, 삼판,

18. 모란봉(牡丹峰)에서(시) _1936.03.24. 1집, 삼판

19. 황혼(昏)(시) _1936.03.25.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20. 가슴1(시) _1936.03.25.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21. 가슴2(시) _1936.03.25. 1집, 2집, *1에서2로 옮겨 씀. 2에 삭제표시

22. 종달새(시) _1936.03. 1집, 삼판

23. 산상(山上)(시) _1936.05.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옮겨 씀.

24. 오후(午後)의 구장(場)(시) _1936.05. 1집, 삼판,

25. 이런 날(시) _1936.06.10. 1집, 중판, 삼판

26. 양지(陽地)쪽(시) _1936.06.26.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27. 산림(山林)(시) _1936.06.26.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5(습유작품)에도 있음

28. 닭(시) _1936.봄.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29. 가슴3(시) _1936.07.24.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30. 꿈은 깨어지고(시) _1936.07.27.(개작일) 1집, 중판, 삼판, * 19351027

31. 곡간(間)(시) _1936.여름. 1집, 2집, 삼판, * 1에서2로 개작

32. 빨래(시) _(?) 1집, 2집,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33. 빗자루(동시) _1936.09.09. 1집, 중판, 삼판, * <카톨릭소년> 1936.12.

34. 햇비(동시) _1936.09.09. 1집, 중판, 삼판,

35. 비행기(동시) _1936.10.초. 1집, 삼판,

36. 가을밤(시) _1936.10.23. 1집, 2집, 삼판, * 1에는 아인양, 2에는 가을밤, 삼판에는 <가을밤>으로 발표

37. 굴뚝(동시) _1936.가을. 1집, 중판, 삼판,

38. 무얼먹구 사나(동시) _1936.10. 1집, 중판, 삼판 * <카톨릭소년> 1937.03. 발표

39. 봄(동시) _1936.10. 1집, 중판, 삼판

40. 참새(동시) _1936.10. 1집, 중판, 삼판

41. 개(동시) _(?) 1집, 삼판

42. 편지(동시) _(?)

43. 버선본(시) _1936.12.초.

44. 눈(동시) _1936.12.

45. 사과(동시) _(?) 1집, 삼판

46. 눈(동시) _(?) 1집, 삼판

47. 닭(동시) _1936.겨울. 1집, 삼판

48. 아침(시) _1936.12. 또는 1937.1. 1집, 2집,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49. 겨울(동시) _(?) 1집, 2집,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50. 호주머니(동시)_1936. 1집, 삼판

51. 황혼(黃昏)이 바다가 되어(시) _1937.1. 1집, 2집, 습유작품,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52. 거짓부리(동시) _(?) 1집, 중판, 삼판

53. 둘다(동시) _(?) 1집, 중판, 삼판

54. 반디불(동시) _(?) 1집, 중판, 삼판

55. 밤(시) _1937.3. 1집, 2집, 초판,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56. 할아버지(동시) _1937.3.10 1집, 2집,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57. 만돌이(동시) _(?) 1집, 삼판

58. 개(동시) _(?) 1집,

59. 나무(동시) _(?) 1집, 삼판

60. 장(시) 2집, 중판, 삼판

61. 달밤(시) _1937.4.15 2집, 중판, 삼판

62. 풍경(風景)(시) _1937.5.29 2집, 중판, 삼판

63. 울적(鬱寂)(시) _1937.6. 2집,

64. 한란계(寒暖計)(시) _1937.7.1. 2집, 중판, 삼판

65. 그 여자(女子)(시) _1937.7.26. 2집, 삼판

66. 야행(夜行)(시) _1937.7.26. 2집,

67. 빗뒤(시) _1937.7.26. 2집,

68. 소낙비(시) _1937.8.9. 2집, 중판, 삼판

69. 비애(悲哀)(시) _1937.8.18. 2집, 삼판

70. 명상(瞑想)(시) _1937.8.20. 2집, 중판, 삼판

71. 바다(시) _1937.9. 2집, 중판, 삼판

72. 산협(山峽)의 오후(午後)(시) _1937.9. 2집, 중판, 삼판

73. 비로봉(毘盧峯)(시) _1937.9. 2집, 중판, 삼판

74. 창(窓)(시) _1937.10. 2집, 중판, 삼판

75. 유언(遺言)(시) _1937.10.24 2집, 초판, 중판, 삼판

76. 새로운 길(시) _1938.5.10 2집,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77. 어머니(시) _1938.5.28 2집,

78. 가로수(街路樹)(시) _1938.6.1 2집,

79. 비 오는 밤(시) _1938.6.11 2집, 중판, 삼판

80. 사랑의 전당(殿堂)(시) _1938.6.19 2집, 중판, 삼판

81. 이적(異蹟)(시) _1938.6.19 2집, 중판, 삼판

82. 아우의 인상화(印象畫)(시) _1938.9.15 2집, 초판, 중판, 삼판

83. 코스모스(시) _1938.9.20 2집, 삼판

84. 슬픈 족속(族屬)(시) _1938.9. 2집,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85. 고추밭(시) _1938.10.26 2집, 중판, 삼판

86. 햇빛·바람(동요) _(?) 2집, 중판, 삼판

87. 해바라기 얼굴(동시) _(?) 2집, 중판, 삼판

88. 애기의 새벽(동시) _(?) 2집, 중판, 삼판

89. 귀뚜라미와 나와(동시) _(?) 2집, 중판, 삼판

90. 산울림(동시) _(?) 2집, 중판, 삼판

91. 달을 쏘다(산문) _(?) 산문집, 중판, 삼판

92. 달같이(시) _1939.9. 2집, 중판, 삼판

93. 장미(薔薇) 병들어(시) _1939.9. 2집, 삼판

94. 투르게네프의 언덕(산문시) _1939.9. 2집, 중판, 삼판

95. 산골물(시) _(?) 2집, 초판, 중판, 삼판

96. 자화상(自畫像)(시) _1939.9. 2집,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97. 소년(少年)(시) _(?)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98. 팔복(八福)(시) _1940. 습유작품, 중판, 삼판

99. 위로(慰勞)(시) _1940.12.3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00. 병원(病院)(시) _(?) 육필자선시집,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01. 무서운 시간(時間)(시) _1941.2.7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2. 눈오는 지도(地圖)(시) _1941.3.12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3. 태초(太初)의 아침(시) _(?)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4. 또 태초(太初)의 아침(시) _1941.5.31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5. 새벽이 올 때까지(시) _1941.5.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6. 십자가(十字架)(시) _1941.5.31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7. 눈감고 간다(시) _1941.5.31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8. 못자는 밤(시) _(?)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09. 돌아와 보는 밤(시) _1941.6. 육필자선시집,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10. 간판(看板)없는 거리(시) _(?)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1. 바람이 불어(시) _1941.6.2.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2. 또 다른 고향(故鄕)(시) _1941.9.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3. 길(시) _1941.9.31.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4. 별 헤는 밤(시) _1941.11.05.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5. 서시(序詩)(시) _1941.11.20.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6. 간(肝)(시) _1941.11.29.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17. 종시(終始)(산문) _(?) 산문집, 중판, 삼판

118. 별똥 떨어진 데(산문) _(?) 산문집, 중판, 삼판

119. 화원(花園)에 꽃이 피다(산문) _(?) 산문집, 중판, 삼판

120. 참회록(懺悔錄)(시) _1942.1.24.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1. 흰 그림자(시) _1942.4.14.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2. 흐르는 거리(시) _1942.5.12.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3. 사랑스런 추억(시) _1942.5.13.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4. 쉽게 씌워진 시(詩)(시) _1942.6.3.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5. 봄(시) _(?)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서울 노원구에 백사마을이 있는 모양이다

특별시 중계동에 산 104번지가 있다 한다

금속판막 삽입 이후로 와파린을 먹는 나는

뇌졸중 예방 위해 각별히 주의하라고 한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이 전조 증상이라 한다

눈이 어두워지니 헛것들이 보이는 것일까

우리나라 서울에 아직도 그런 동네가 있다

백석과 나타샤가 숨어서 살 것만 같은 동네

천사들이 내려와 텃밭을 일굴 것 같은 마을

나는 어찌 백사마을을 백석마을로 읽었을까

나는 왜 104 번지를 1004 번지로 읽었을까


2월 16일에 윤동주 시인이 백석을 찾아갔다

눈이 푹푹 나리고 당나귀 응앙 응앙 우는 곳

세상을 버리고 떠난 마구리에 군불 지피려고

천사들이 연탄 한 장씩 들고 춤추며 찾아갔다

연탄은 하루에 두 장씩만 불태워야 적당하다

불구멍 너무 많이 열면 달라붙어 뗄 수 없다

성급하게 타오르면 삶과 죽음이 달라붙는다

연탄집게로 함부로 떼어내면 둘 다 깨어진다

윤동주 시인의 전도사 김응교 시인은 천사다

어린 천사들과 함께 제사상에 연탄을 올린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연탄을 지고 오른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윤동주 시인과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한 달동네가 환하다


그런데 이 소문은 또 어인 작태란 말이런가

선거철만 되면 불 꺼진 연탄재만 싣고 오는

얼굴에 검댕이로 화장하고 추는 망나니 춤

아, 아직도 저렇게 구태하게 정치를 하다니,


1936년 3월 25일 평양에서 쓴 작품으로 해가 질 무렵 북쪽 하늘로 날아가는 까마귀 떼를 보며 느낀 바를 쓴 작품이다. 해가 지는 황혼의 모습은 마치 일제 치하로 정체성을 잃어가는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 까마귀와 같이 북쪽 하늘로 도피하고 싶은 시인의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이 시를 쓴 날인 1936년 3월 25일 <가슴 1>과 <가슴 2>라는 두 편의 시를 더 남긴다.

'황혼'을 소재로 시인의 다른 작품으로는 <황혼이 바다가 되어>, <흰 그림자>가 있다.


'내사'의 '-사'자는 지정이나 강조를 나타내는 조사(토) '-야'의 방언이다. 즉 '내사'는 '나야'로 해석하여 '나야 북쪽 하늘에 나래(날개)를 펴고 싶다'로 이해하면 된다. '내사'라는 시어는 윤동주의 다른 시 <이적>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생명과 현실의 태반은 어둠이다. 나무에 잎새와 뿌리가 있듯이 사물의 인식에도 순수의식과 불확실한 감성이 작용하는 법이다. 때로는 잎새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뿌리가 돋보이기도 한다. 시인의 의식은 잎새보다 뿌리를 지향하는 게 바람직스럽다. 가변적인 현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근원에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황혼과 까마귀 떼의 대비는 거기 걸맞은 음영을 드리운다. 하루의 노동과 의욕이 정지되고 밤을 맞게 되는 시간, 황혼을 가슴에 안고 못다 이룬 꿈의 나래를 펴 보이는 안쓰러운 영혼의 파닥임이 느껴진다.


* 원문표기

- '햇살' -> '햇ㅅ살'

- '미닫이' -> '미다지'

- '지붕 위로' -> '집웅 우으로'


* 나는 윤동주 시인의 모든 작품과 윤동주 시인의 삶에 관한 책을 쓰려고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제주 4.3과 우리나라 해방정국에 관한 작품을 쓰기 위하여 고민하는 과정에서 융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시인으로 살지 못했다. 앞으로 남은 삶을 시인으로 살기 위하여 부활을 꿈꾸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 같다. 최승호 시인의 말씀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 문장이 나의 앞길을 밝히는 등대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서 새롭게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