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자화상 또는 테오의 초상화(1887년)

―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53

by 강산





고흐의 자화상 또는 테오의 초상화 / 배진성





나는 그 괴로운 영혼들의 말을 듣고/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있었으니,/시인이 말하셨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나는 대답하여 말했다「오, 세상에,/얼마나 달콤한 생각, 얼마나 큰 욕망이/그들을 이런 고통으로 이끌었습니까!」//그리고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프란체스카여, 그대의 괴로움은 나에게/슬픔과 연민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구려//하지만 말해 주오, 달콤한 한숨의 순간에/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랑이 허용하여/그대들의 의심스러운 열망을 알게 되었소?」//그녀는 말했다 「비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으니,/그것은 당신의 스승도 잘 알지요//그렇지만 우리 사랑의 최초 뿌리를/당신이 그토록 알고 싶다면/이 사람처럼 울면서 말해 주리다//어느 날 우리는 재미 삼아 란칠로토가/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우리 둘뿐이었고 아무 의혹도 없었답니다//그 책은 자주 우리 눈길을 마주치게/이끌었고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는데,/오직 한 대목이 우리를 사로잡았소//그 연인이 열망하던 입술에다/입 맞추는 장면을 읽었을 때, 내게서/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이 사람은//온통 떨면서 나에게 입을 맞추었지요/그 책을 쓴 사람은 갈레오토였고, 우리는 그날 더 이상 읽지 못했지요」//그렇게 한 영혼이 말하는 동안/다른 영혼은 울고 있었으며, 연민에/이끌린 나는 죽어 가듯 정신을 잃었고//죽은 시체가 넘어지듯이 쓰러졌다// ― 단테의『신곡(神曲)』42


「가슴 3」//불 꺼진 화(火) 독을/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재(灰)만 남은 가슴이/문풍지 소리에 떤다// _ (1936.7.24. 윤동주 19세)/29. 가슴3 (시)/제1집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제2집 (창) * 1에서 2로 개작/최현배 선생님의 정음사 출판사/중판 1955년, 삼판 1976년// ―『윤동주』29


「가슴 1」 //소리 없는 큰북(대고大鼓)/답답하면 주먹으로/두드려 보오//그래 봐도/후―/가―는 한숨보다 못하오// _ (1936.3.25. 평양에서, 윤동주 19세)//


「가슴 2」 //늦은 가을 쓰르라미/숲에 싸여 공포(恐佈)에 떨고//웃음 웃는 흰 달 생각이 도망가오// _ (1936.3.25. 평양에서, 윤동주 19세)//


「가슴 3」 //불 꺼진 화(火) 독을/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재(灰)만 남은 가슴이/문풍지 소리에 떤다// _ (1936.7.24. 윤동주 19세)//


제25장//분화되지 않은 완전한 무엇,/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습니다/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고,//무엇에 의존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두루 편만하여 계속 움직이나 [없어질] 위험이 없습니다/가히 세상의 어머니라 하겠습니다//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그저 '도'라 불러 봅니다/구태여 형용하라 한다면 '크다(大)'고 하겠습니다/크다고 하는 것은 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끝없이 뻗어 간다는 것은 멀리 멀리 나가는 것/멀리 멀리 나간다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도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임금도 큽니다/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사람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습니다// _ (제25장 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 근원으로서의 도 ―『도덕경(道德經)』25


「새싹의 맥박」//땅속 어둠이 갈라졌다/그 틈에서 초록빛 손끝이 나왔다/숨을 들이마시는 듯/세상이 처음으로 움직였다//새싹은 말하지 않았다/그 존재 자체가 언어였다//생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스스로 깨어나는 것이었다// _ (『숨의 연대기』제3부 - 풀잎의 눈동자(생명의 각성) 1「새싹의 맥박」) ―『청람 김왕식』22


「늦게 쓰는 일기」//1966년 참꽃 불타는 2월 28일 새벽 두 시/그믐달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눈썹이/떨어지고 닭도 울지 않았다 개 한 마리가/어둠 속에서 컴컴한 어둠을 향해/컹컹 짖었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았다/울음 없는 아이로 태어나 누워만 있었다/송아지 울음소리가 걸어 나오는 물소리/가느다랗게 들리고 핑경 같은 별들이/말똥말똥 눈을 뜨고 잠들지 못하는 그 사이로/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별무덤을 파헤치고 다시 태어났다/그 자리에 나의 탯줄과 함께 누워있는 어머니/무덤가 어린 쑥 잎에도 향기가 오르고/나는 어머니가 누운 만큼 겨우 일어설 수/있었다 별똥별이 떨어지고 숲이 있는/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지상에/

세상은 있었고 내가 태어나면서 같이 태어난/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러한 아침으로/때 아닌 비가 내리고 담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_ (1989년 『이어도공화국 1 -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늦게 쓰는 일기」) ―『배진성』18


「1875~1881」//1876년 11월 25일, 아일워스/82/지난 일요일 저녁 나는 템스 강가에 자리한 피터 솀라는 마을에 있었지 아침에 턴햄그린에서 열리는 주일학교에 참여한 뒤 해질녘에 리치몬드를 거쳐 피터솀로 왔단다 곧 해가 저물었지만 길을 잘 알 수 없었어 언덕 혹은 둑 같은 곳에 나 있는 흙탕길이었는데 비탈이 옹이가 많은 느릅나무와 덤불로 뒤덮여 있었지 마침내 둑길 아래 작은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발견하고는 진창길을 걸어 간신히 거기까지 갔단다 그 집 사람들이 길을 일러주었지 그렇게 해서 이 어두운 길 끝에 이르자 기분 좋게 밝혀진 작은 목조 교회가 보이더군 나는 사도행전 5장 14절~16절과 사도행전 12장 5절~17절을 낭독했고 사람들에게 요한과 테아게네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려주었어 한 기숙사 학생들 전원이 그곳에 모여 있었는데 여학생 한 명이 교회의 풍금을 연주했지//아침에 턴햄그린으로 가는 길은 몹시 아름다웠어 밤나무와 맑고 파란 하늘, 템스 강물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 그리고 풀들이 놀랄 만큼 푸르렀단다 사방에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졌지//1877년 4월 16일, [에턴]//92/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어/오후엔 산책을 나갔다 왔는데 정말 그러고 싶었단다 우선 '큰 교회'를 한 바퀴 돈 다음 '새 교회'를 돌아 풍차들이 가득한 둑 위로 올라갔어 철로 변을 걸으면 멀리서도 이 풍차들을 볼 수 있지 이 묘한 풍경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들어 있단다 주변의 모든 것이 "용기 내,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아//1878년 7월 22일, 에턴/123/오늘 아침엔 휴가차 이곳에 와 있는 코르와 함께 히드가 무성한 땅과 소나무 숲에 다시 갔었지 풍차가 있는 곳을 조금 지나면 나오는 장소야 토끼들이 아주 좋아하는 히드를 비롯해 꽃바구니를 장식할 만한 것들을 모아 왔단다 우리는 잠시 소나무 숲 속에 앉아 에턴을 중심으로 브렘버르호, 스프륀덜, 트 헤이커, 더 후버 같은 주변 지역이 포함된 작은 지도를 함께 그렸지//네 생각을 자주 한단다 아주 잘 지내고 있다니 반갑다 네 기분을 돋워주고 진정한 삶을 위한 건전한 양식이 될 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다니 기쁘구나 그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예술이며 자신의 마음과 영혼, 생각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의 작품일거야 어쩌면 넌 그런 사람들을 적잖이 알 뿐 아니라 직접 만나기도 했을 거야 말과 일이 생명이자 영혼인 그런 사람들을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7






동생을 향한 ‘모방 욕망’이 만든 반 고흐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노

한국경제신문 입력2024.02.22 14:59 수정2024.02.22 16:09


[arte] 고흐로 읽는 심리수업


파리를 방문한 다음 해부터 고흐는 유화로 여러 장의 자화상을 그렸다. 풍경화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점이 보인다. 총 서른여섯 점의 자화상 중 오늘 보게 되는 이 작품은 '밀짚모자를 쓴 고흐의 자화상'으로 알려져 왔다. 파리에서 그려졌으며 밀짚모자와 불그스름한 머리, 파란 배경에 파란 정장 상의, 하늘색의 빳빳한 나비넥타이를 한 신사가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 그림이 테오의 초상화인지 아니면 고흐의 자화상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공식적으로 2011년 이후부터는 ‘고흐의 자화상 또는 테오의 초상화(Self-Portrait or Portrait of Theo van Gogh)’라는 두 개의 제목을 갖게 되었다. 고흐 형제는 성격은 달랐지만 외모는 매우 닮았다. 더욱이 두 형제 모두 삶에 서려 있는 슬픈 녹색 눈을 지니고 있어, 이 점이 그림 속 인물이 고흐인지 테오인지 그 정체성을 더욱 모호하게 했다.

01.35903926.1.jpg 고흐의 자화상 또는 테오의 초상화(1887년)


형제들의 ‘모방 욕망’


1886년 2월 말에 시작한 두 형제의 동거는 1888년 2월 고흐가 갑자기 파리를 떠남으로써 끝을 맺었다. 고흐가 파리를 떠난 이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아직은 없지만, 2년간 파리에서의 다양한 사건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중 하나는 전시회를 둘러싼 석연치 않은 형제 관계다.


이번 글에서는 형제 관계를 20세기 프랑스 문학평론가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짝패(double)’ 개념으로 살필 것이다. ‘짝패’란 서로를 모방하고 경쟁하는 두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서로를 부러워하고 모방하다가도 상대방을 제외시키고 희생시키는 이중적 감정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고흐 형제간에도 그런 갈등이 있었다.


지라르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욕망하는 대신 '짝패'라 여기는 상대가 가진 것에 대해 ‘모방 욕망(mimetic desire)’을 갖는다. 특히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분야의 능력을 부러워하면서 상대를 향한 시기와 질투, 분노, 모함을 동반한다. 고흐와 테오의 경우에도 테오는 고흐의 예술적 재능과 열정을 욕망하고, 고흐 또한 테오가 가진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인 직업을 욕망했다.


하지만 상대를 향한 부러움이 크면 클수록 자신이 그런 능력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열등감이 작동하면서 끝내 상대를 제거하고 자신이 그 능력을 차지하려고 한다. 동생 테오는 고흐의 재능을 통해 성공하는가 싶더니 형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다. 그래서 테오가 욕망했던 고흐의 예술적 재능이 무엇인지, 또한 고흐는 테오의 어떤 점을 부러워했는지를 살펴본다면 고흐가 갑작스럽게 파리를 떠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고흐가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 테오는 구필 화랑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회사는 새로운 화가를 발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마침 책임자 중 한 명이 은퇴하게 되면서 테오가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화랑을 만들고 싶었다. 전통적인 작품부터 현대적인 작품까지, 그러니까 고전주의, 사실주의 작가들부터 인상파와 젊은 후기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까지 전시하였다. 그런 중에도 상사들을 의식해 1층에는 전통적인 작품을, 2층에는 현대적인 작품을 전시했다.


하지만 테오는 미술과 화가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는 그들이 매우 다양하며 거의 매일 전시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오에게는 고흐의 예리한 시각과 방대한 지식, 그리고 작품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절실했다. 특히 고흐는 테오가 신진 작품들을 선별하는 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로 얻게 된 모네 그림에 대한 테오의 성공은 미술계에 현저한 영향을 미쳤으며 경제적 이익도 상당했다. 당시 테오는 여동생에게 “2년 전 형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우리 사이가 이렇게 가까워질 줄 몰랐어.”라는 말로 형 덕분에 얻은 성공은 감추고 친밀감만을 과시했다.


‘모방 욕망’에 따른 양가적 감정


고흐와 테오는 함께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그랑부이용 레스토랑 뒤 샬레’라는 곳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에밀 베르나르와 툴루즈 로트레크의 작품도 있었다. 조르주 쇠라와 폴 고갱도 이 전시회를 보러 왔고, 테오는 고갱의 작품 몇 개를 팔 기회도 얻었다. 그 후에도 고흐와 테오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계획했다. 전시회가 끝나면 몽마르트 근처 카페에서 다른 화가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때가 고흐의 전체 인생 중에 가장 활기찬 시기였다.


테오는 단박에 파리 미술계에서 큰 권력을 누리며 많은 화가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구필 화랑에 전시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겼고, 그 대가로 작품들을 테오에게 헐값으로 팔거나 선물로 주는 일도 많았다. 테오의 작업실을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그의 조언을 구하고, 서로들 예술적 영감을 나누었기에 늘 많은 사람들로 부쩍거렸다. 이런 테오의 사회적 지위를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고흐였다. 하지만 동생을 흉내 내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고흐는 테오와 같은 길을 걸으면서 한마음이 되었고 자신도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이 자화상(1887년)을 보면, 그림 속 고흐는 중절모자를 쓰고 실크 스카프를 두른 근사한 정장 차림이다. 고흐의 자화상들이 주로 낡은 작업복을 입고 치아가 상해서 두 뺨은 푹 꺼져 있으며 시선은 창백하고 멍하고 냉담한 모습이 대부분임에 반해, 이 그림은 마치 자신이 테오인 듯 말쑥한 사업가의 모습이기에 낯설기까지 하다.


01.35903927.1.jpg 자화상(1887년)


만약 앞에서 언급한 자화상을 테오의 초상화라 친다면, 테오는 밀짚모자를, 고흐는 중절모를 쓴 것이다. 우연히도 고흐의 그림은 두 형제 관계의 ‘모방 욕망’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흐가 파리에서 겪은 변화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장을 입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의 심리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1887년 10월, 고흐는 자신의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 첫 번째 전시회를 기획했다. 새로운 화파를 대표하는 전시회로 준비하고자 했다. 우선 예술적으로, 다음은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이라 믿으며 자신의 예술성도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하지만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전시회를 구필 화랑에서 열 수 없게 되었다. 테오가 상사들을 핑계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시회는 작은 규모로 알려졌고 참여 작가가 없어서 50여 점의 고흐 작품만으로 채워졌다. 전시회는 며칠 만에 실패로 끝났다.


급기야 고흐의 ‘모방 욕망’은 걷잡을 수 없는 비난과 분노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고흐는 구필 화랑에 발길을 끊었고, 화랑과 미술 시장의 부패에 대해 비난하면서 테오와 자주 말다툼을 벌였다. 반면 테오는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격정적인 형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형에게 계속 지원하기가 싫어졌다.


그 후 테오는 예술성보다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그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색채가 풍부하고 힘이 넘치는 그림, 주제가 유쾌하고 눈을 만족시키는 그림을 좋은 작품이라 여겼다. 이런 기준은 고흐가 오랫동안 싫어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테오는 형에게 보란 듯이 그런 그림들로 돈을 벌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으며, 형의 예술적 가치관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01.35903920.1.jpg 1887년 파리에서 그린 다른 자화상들


한편 고흐는 동생처럼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었지만 동생의 소극적 태도와 상업성에 몹시 슬퍼했다. 또한 자신의 사업성과 예술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했다. 하필 그때 엄마와 동생들에게 두었던 자신의 작품들과 그림 도구들이 경매에 넘겨졌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이에 그는 자신의 불운과 불행의 원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압생트라는 술로 잊으려 했다.


이들 형제가 아직 엄마 품에 있던 때, 테오는 엄마에게 안겨 젖을 먹고 있었다. 그것을 본 네 살 많은 형은 젖을 먹듯 입을 삐죽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은 파랗게 질려 형이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하게 손을 내둘렀다. 젖을 두고 경쟁하는 유아들처럼 두 형제가 서로를 향해 갖고 있었던 ‘모방 욕망’은 서로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도 경쟁심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경쟁심은 때로는 상대를 희생시키기까지 한다.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는, 상대의 재능을 따라갈 수 없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제발 나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줘.” 테오가 고흐에게 반복했던 부탁이다. 1887년에서 188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고흐는 동생과의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했지만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테오는 형과 따로 살기를 간청했고, 고흐는 그동안 동생에게 퍼부었던 비난과 분노에 죄책감을 느끼고 급기야 파리를 떠났다.


돈에 집착하기는 싫지만 돈을 벌고 싶은 욕망, 상업적 그림이 싫지만 사교계에서 멋지게 활동하는 테오를 부러워하던 고흐는 어설프게 테오를 따라 했던 것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후 동생 테오의 성과를 남겨둔 채 자신만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파리를 떠났다. 고흐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또 하나의 ‘형제의 난’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2년 후 고흐는 사망하기 직전에,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자신이 파리를 떠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밝혔다.


테오는 형의 장례식을 치른 후 6개월 만에 죽었다. 형이 더 오래 살았다면 동생도 더 오래 살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형제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한구석에 또 부러움과 속상함이 같이 존재하는 이런 슬픈 형제애가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을까? 어찌 보면 사랑과 증오의 양가적 감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놓인 운명 같은 것이다.


01.35903921.1.jpg 1887년 파리에서 그린 다른 자화상


만약에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한 그 사람이 있다면, 짝패가 되어도 좋으니 그런 양가적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면 어떨까? 형제가 나를 떠나기 전에 터놓고 말해 볼 수 있는 용기가 더 큰 형제애로 나아갈 기회를 선사하니 말이다.




가슴 3




불 꺼진 화(火) 독을

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


재(灰)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_ (1936.7.24. 윤동주 19세)


29. 가슴3 (시)

제1집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제2집 (창) * 1에서 2로 개작

최현배 선생님의 정음사 출판사

중판 1955년, 삼판 1976년




고흐의-자화상-또는-테오의-초상화-001.png
001.png






https://youtu.be/vxZ02OzGYn0?si=6bVlgzuEdBFtxSMR


가슴 1



소리 없는 큰북(대고大鼓)

답답하면 주먹으로

두드려 보오.


그래 봐도

후―

는 한숨보다 못하오.


_ (1936.3.25. 평양에서, 윤동주 19세)




가슴 2



늦은 가을 쓰르라미

숲에 싸여 공포(恐佈)에 떨고,


웃음 웃는 흰 달 생각이 도망가오.


_ (1936.3.25. 평양에서, 윤동주 19세)




가슴 3




불 꺼진 화(火) 독을

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


재(灰)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_ (1936.7.24. 윤동주 19세)





윤동주 시인의 전체 작품 목록

제작 시기와 작품 나열 순서는 윤일주 교수가 작성한 것을 토대로 하였다




1. 초한대(시) _1934.12.24. 1집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 정음사 출판사, 중판 1955년, 삼판 1976년

2. 삶과 죽음(시) _1934.12.24. 1집, 정음사출판 중판, 삼판

3. 내일은 없다(시) _1934.12.24. 1집, 삼판

4. 거리에서(시) _1935.01.18. 1집, 중판, 삼판

5. 공상(空想)(시) _(?) 1집, 삼판, * <숭실활천> 1935년 10월 발표

6. 창공(蒼空)(시) _1935.10.20. 1집, 중팜, 삼판

7. 남(南)쪽 하늘(시) _1935.10.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옮겨 씀

8. 조개껍질(동요) _1935.12. 1집, 중판, 삼판,

9. 고향집(동시) _1936.01.06. 1집, 삼판, 본인이 작성한 목차에는 (동요)

10. 병아리(동요) _1936.01.06. 1집, 중판, 삼판, * <카톨릭소년> 1936.11.

11. 오줌싸개 지도(동시) _(?) 1집, 중판, 삼판, * <카톨릭소년> 1937.01.

12. 창구멍(동요) _(?) 1집, *미발표작

13. 짝수갑(동요) _(?) * 제목만 있음

14. 기와장 내외(동요) _(?) 1집, 중판, 삼판

15. 비둘기(시) _(?) 1집, 중판, 삼판

16. 이별(離別)(시) _1936.03.20. 1집, 삼판,

17. 식권(食券)(시) _1936.03.20. 1집, 삼판,

18. 모란봉(牡丹峰)에서(시) _1936.03.24. 1집, 삼판

19. 황혼(昏)(시) _1936.03.25.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20. 가슴1(시) _1936.03.25.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21. 가슴2(시) _1936.03.25. 1집, 2집, *1에서2로 옮겨 씀. 2에 삭제표시

22. 종달새(시) _1936.03. 1집, 삼판

23. 산상(山上)(시) _1936.05.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옮겨 씀.

24. 오후(午後)의 구장(場)(시) _1936.05. 1집, 삼판,

25. 이런 날(시) _1936.06.10. 1집, 중판, 삼판

26. 양지(陽地)쪽(시) _1936.06.26.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27. 산림(山林)(시) _1936.06.26.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5(습유작품)에도 있음

28. 닭(시) _1936.봄.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29. 가슴3(시) _1936.07.24. 1집, 2집, 중판, 삼판, *1에서2로 개작

30. 꿈은 깨어지고(시) _1936.07.27.(개작일) 1집, 중판, 삼판, * 19351027

31. 곡간(間)(시) _1936.여름. 1집, 2집, 삼판, * 1에서2로 개작

32. 빨래(시) _(?) 1집, 2집,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33. 빗자루(동시) _1936.09.09. 1집, 중판, 삼판, * <카톨릭소년> 1936.12.

34. 햇비(동시) _1936.09.09. 1집, 중판, 삼판,

35. 비행기(동시) _1936.10.초. 1집, 삼판,

36. 가을밤(시) _1936.10.23. 1집, 2집, 삼판, * 1에는 아인양, 2에는 가을밤, 삼판에는 <가을밤>으로 발표

37. 굴뚝(동시) _1936.가을. 1집, 중판, 삼판,

38. 무얼먹구 사나(동시) _1936.10. 1집, 중판, 삼판 * <카톨릭소년> 1937.03. 발표

39. 봄(동시) _1936.10. 1집, 중판, 삼판

40. 참새(동시) _1936.10. 1집, 중판, 삼판

41. 개(동시) _(?) 1집, 삼판

42. 편지(동시) _(?)

43. 버선본(시) _1936.12.초.

44. 눈(동시) _1936.12.

45. 사과(동시) _(?) 1집, 삼판

46. 눈(동시) _(?) 1집, 삼판

47. 닭(동시) _1936.겨울. 1집, 삼판

48. 아침(시) _1936.12. 또는 1937.1. 1집, 2집,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49. 겨울(동시) _(?) 1집, 2집,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50. 호주머니(동시)_1936. 1집, 삼판

51. 황혼(黃昏)이 바다가 되어(시) _1937.1. 1집, 2집, 습유작품,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52. 거짓부리(동시) _(?) 1집, 중판, 삼판

53. 둘다(동시) _(?) 1집, 중판, 삼판

54. 반디불(동시) _(?) 1집, 중판, 삼판

55. 밤(시) _1937.3. 1집, 2집, 초판, 중판,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56. 할아버지(동시) _1937.3.10 1집, 2집, 삼판 * 1에서2로 옮겨 씀

57. 만돌이(동시) _(?) 1집, 삼판

58. 개(동시) _(?) 1집,

59. 나무(동시) _(?) 1집, 삼판

60. 장(시) 2집, 중판, 삼판

61. 달밤(시) _1937.4.15 2집, 중판, 삼판

62. 풍경(風景)(시) _1937.5.29 2집, 중판, 삼판

63. 울적(鬱寂)(시) _1937.6. 2집,

64. 한란계(寒暖計)(시) _1937.7.1. 2집, 중판, 삼판

65. 그 여자(女子)(시) _1937.7.26. 2집, 삼판

66. 야행(夜行)(시) _1937.7.26. 2집,

67. 빗뒤(시) _1937.7.26. 2집,

68. 소낙비(시) _1937.8.9. 2집, 중판, 삼판

69. 비애(悲哀)(시) _1937.8.18. 2집, 삼판

70. 명상(瞑想)(시) _1937.8.20. 2집, 중판, 삼판

71. 바다(시) _1937.9. 2집, 중판, 삼판

72. 산협(山峽)의 오후(午後)(시) _1937.9. 2집, 중판, 삼판

73. 비로봉(毘盧峯)(시) _1937.9. 2집, 중판, 삼판

74. 창(窓)(시) _1937.10. 2집, 중판, 삼판

75. 유언(遺言)(시) _1937.10.24 2집, 초판, 중판, 삼판

76. 새로운 길(시) _1938.5.10 2집,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77. 어머니(시) _1938.5.28 2집,

78. 가로수(街路樹)(시) _1938.6.1 2집,

79. 비 오는 밤(시) _1938.6.11 2집, 중판, 삼판

80. 사랑의 전당(殿堂)(시) _1938.6.19 2집, 중판, 삼판

81. 이적(異蹟)(시) _1938.6.19 2집, 중판, 삼판

82. 아우의 인상화(印象畫)(시) _1938.9.15 2집, 초판, 중판, 삼판

83. 코스모스(시) _1938.9.20 2집, 삼판

84. 슬픈 족속(族屬)(시) _1938.9. 2집,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85. 고추밭(시) _1938.10.26 2집, 중판, 삼판

86. 햇빛·바람(동요) _(?) 2집, 중판, 삼판

87. 해바라기 얼굴(동시) _(?) 2집, 중판, 삼판

88. 애기의 새벽(동시) _(?) 2집, 중판, 삼판

89. 귀뚜라미와 나와(동시) _(?) 2집, 중판, 삼판

90. 산울림(동시) _(?) 2집, 중판, 삼판

91. 달을 쏘다(산문) _(?) 산문집, 중판, 삼판

92. 달같이(시) _1939.9. 2집, 중판, 삼판

93. 장미(薔薇) 병들어(시) _1939.9. 2집, 삼판

94. 투르게네프의 언덕(산문시) _1939.9. 2집, 중판, 삼판

95. 산골물(시) _(?) 2집, 초판, 중판, 삼판

96. 자화상(自畫像)(시) _1939.9. 2집,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97. 소년(少年)(시) _(?)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98. 팔복(八福)(시) _1940. 습유작품, 중판, 삼판

99. 위로(慰勞)(시) _1940.12.3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00. 병원(病院)(시) _(?) 육필자선시집,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01. 무서운 시간(時間)(시) _1941.2.7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2. 눈오는 지도(地圖)(시) _1941.3.12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3. 태초(太初)의 아침(시) _(?)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4. 또 태초(太初)의 아침(시) _1941.5.31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5. 새벽이 올 때까지(시) _1941.5.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6. 십자가(十字架)(시) _1941.5.31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7. 눈감고 간다(시) _1941.5.31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08. 못자는 밤(시) _(?)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09. 돌아와 보는 밤(시) _1941.6. 육필자선시집,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10. 간판(看板)없는 거리(시) _(?)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1. 바람이 불어(시) _1941.6.2.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2. 또 다른 고향(故鄕)(시) _1941.9.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3. 길(시) _1941.9.31.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4. 별 헤는 밤(시) _1941.11.05.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5. 서시(序詩)(시) _1941.11.20.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116. 간(肝)(시) _1941.11.29.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17. 종시(終始)(산문) _(?) 산문집, 중판, 삼판

118. 별똥 떨어진 데(산문) _(?) 산문집, 중판, 삼판

119. 화원(花園)에 꽃이 피다(산문) _(?) 산문집, 중판, 삼판

120. 참회록(懺悔錄)(시) _1942.1.24.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1. 흰 그림자(시) _1942.4.14.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2. 흐르는 거리(시) _1942.5.12.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3. 사랑스런 추억(시) _1942.5.13.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4. 쉽게 씌워진 시(詩)(시) _1942.6.3.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125. 봄(시) _(?) 습유작품, 초판, 중판, 삼판


제1집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제2집 (창) * 1에서 2로 개작

최현배 선생님의 정음사 출판사

중판 1955년, 삼판 1976년




윤동주 시인은 '가슴'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3편을 남겼다. <가슴 1>, <가슴 2>, <가슴 3>이 그것이다.


<가슴 1>은 1936년 3월 25일 작품으로 시인의 답답한 심정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현실에서 빚어지는 답답한 심정을 주먹으로 두드려보기도 한숨을 내쉬며 떨쳐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은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시인은 이 시를 쓴 날인 1936년 3월 25일에 <황혼>과 <가슴 2>라는 두 편의 시를 더 남겼다.


'소리 없는 북'은 답답한 가슴을 말한다

이 시는 소리 늘임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 원문표기

- '뚜드려' -> '뚜다려'

- '못하오' -> '몯하오'


<가슴 2>는 1936년 3월 25일 작품으로 가을 숲과 밤하늘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공포에 떠는 쓰르라미의 모습과 웃음 짓는 달이 도망가는 모습은 어두운 현실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창백해진 화자가 도피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시인은 이 시를 쓴 날인 1936년 3월 25일에 <가슴 1>과 <황혼>이라는 두 편의 시를 더 남겼다.


작품 창작일이 늦겨울인 점을 감안해 보았을 때, 이 시를 원고지에 기록하기 전부터 머릿속으로 생각해 둔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전에 다른 곳에 썼던 작품을 옮겨 적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원문의 '숲에쌔워'는 '싸이다'의 이북 방언이다.

'쓰르래미'는 '쓰르라미'의 방언이다.


* 원문표기

- '쓰르라미' -> '스르램이'

- '싸여' -> '쌔워'

- '흰 달' -> '힌달'


<가슴 3>은 1936년 7월 24일 쓰인 작품으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겨울에 꺼져가는 화독을 끌어안고 밤을 보내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탈 대로 다 타버려 싸늘한 재만 남았다고 묘사하는 화자의 심정은 독립이 요원해진 조국의 현실에 지친 탓인지 더 춥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작품을 쓴 날은 여름인데 겨울을 노래하고 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가슴 2>는 봄에 가을을 노래하고 <가슴 3>은 여름에 겨울을 노래하고 있다.


'화독'은 숯불을 피워 놓고 쓰게 만든 큰 화로로 '화덕'의 북한의 표준어(문화어)다.


* 원문표기

- '겨울밤은' -> '겨을밤은'

- '깊었다' -> '깊엇다'



27. 산림(山林)

29. 가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