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 시인의 꿈삶글 26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어도공화국 입구 양쪽에 후박나무 두 그루 수문장으로 서서 자라나고 있다. 30년 전에 제주도에 처음으로 왔을 때 나는 제주도의 아픔을 몰랐다. 길 양쪽의 은빛 억새꽃들이 서로 손이 닿을 듯 흔들어주는 환상적인 가을 오후의 눈부심이 좋았다. 그야말로 동화속 환상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곧 알았다. 그 무렵에 이미 제주도 시인들은 제주 4.3을 노래하고 있었다. 노래라기 보다는 차라리 울부짖음 이었다.
너무나도 미안한 고백이지만 제주도 오기 전에 현기영 선생님의 소설 제목만 들었을 때, 나는 사실 소설 제목을 듣고 <순이삼촌>의 주인공이 남자인 줄 알았다. 순이의 남자 삼촌 인 줄 알았다.
내가 제주도에 들어온 90년대, 제주도에서는 4.3의 진실을 밝히고 알리기 위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나는 <이제사 말햄수다> 라는 지역신문 연재물과 나중에 책으로 다시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알았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화순과 가까운 동광리에서 벌어졌다는 인육 사건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제주도 사람들의 가장 심한 욕이 "육지것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아직도 제주도의 시골 사람들은 "육지것들"이란 욕과 "몽골년"이라는 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홀로 제주도를 읽고 홀로 제주도 순례를 시작하였다. 제주도 신화부터 제주도 역사까지 홀로 읽기 시작하였다. 한 발짝 물러서서 가능한 객관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서부산업도로는 서부 관광도로가 되었고 서부관광도로는 다시 평화로로 이름이 바뀌었고 세상도 많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해군기지가 강정에 만들어졌지만 그 전에 화순에 만들려고 여러해동안 화순주민들을 설득하려고 시도했던 것들도 보았고 화순이 안 되어 위미로 갈려다가 위미에서도 반대하여 전격적으로 강정으로 결정되는 과정도 지켜 보았다. 그리고 요즘에는 제2공항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약 10년 전에 선흘리 불칸낭 가슴에 너무 많은 어린 후박나무들이 싹이 터서 아주 어린 후박나무 두 그루 모셔왔다. 화분에서 키우다가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 부지를 마련하여 대문 양쪽에 심었다. 그렇게 심은 불칸낭 후손이 이어도공화국 수문장이 되었다. 나도 한 30년 제주도를 읽어보니 이제는 아주 조금은 제주도의 슬픔을 알 것 같다. 나의 아들들이 청년이 되었듯이 이어도공화국 수문장들도 청년으로 잘 자라고 있다. 나도 이제는 절반쯤은 제주도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때, 불에 타버린 나무가 어찌
선흘리 후박나무 뿐이랴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한 나무가
어찌, 북촌리 팽나무 뿐이랴
불이야아~ 불이야아~ 불이야아~
아무리 소리쳐보아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아무리 빌어보아도 아무도 살려 주지 않는다
아무리 호소해보아도 누구 하나 살려주지 않는다
붉은 태양이 무섭다 푸른 하늘도 무섭다
밤하늘의 별들도 너무 뜨겁다
달은 지금도 그때 입은 상처가 선명하다
온 세상을 쉬지 않고 돌고 있는 달을 보아라
불이야, 를 뜨겁게 외치는 둥근 저 영혼을 보아라
잊을 수 없다 온 동네가 불타오르던 그날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뜨거운 몸이 먼저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병든 사람이 문지방을 기어 나오다 불타오르고, 갓 낳은 아이를 끌어안고 쓰러진 젊은 엄마가 불타오르고, 대나무밭에 숨어 숨죽이며 지켜보던 눈빛이 불타오르고, 우리 안의 돼지가 불타오르고, 외양간의 소가 불타오르고, 닭들이 불타오르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까지 쏘아 죽이며 온 동네에 불을 질러대던 사람들, 배고픈 개와 돼지들이 올레에 쓰러져 죽은 사람들을 뜯어 먹고, 그런 개와 돼지들을 또 다시 잡아먹는 사람들까지 모두 보아버렸으니, 어찌 멀쩡한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느냐
그러나 아, 온 동네가 불타오르는 밤하늘의 별들
이제 겨우 눈빛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밤새 불이야, 를 외치며 쉬지 않는 달빛의 목소리에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하는 어둠의 빛나는 눈빛들
밤이 깊을수록 더 깊은 어둠일수록, 더 밝은 별빛을 낳는다
※ 불칸낭(불타버린 나무)
선흘리가 초토화되면서 같이 탔지만 지금껏 살아있는 나무이다.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선흘리의 가옥은 단 몇 채만 놔두고 모두 전소됐다. 온 마을이 불타면서 마을 안 거리에 위치해 있던 팽나무에 불이 옮겨 붙어 오래된 지주목이 불탔다. 하지만 모두 타버려 생명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팽나무의 한쪽에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타버려 죽어버린 굽이에서는 어디선가 날아온 수종이 다른 나무의 씨가 새싹을 튀어 몇십년을 같이 살았다.
이 밖에 선흘리는 초토화과정을 겪으며 당목도 잃어버렸다. 선흘리민들은 매년 정초에 마을당인 일뤠당에 모여 굿도 하고 거리굿도 했었는데 초토화의 와중에 당목이 불타고 당도 훼손되었다. 알선흘은 하르방당, 본동은 할망당이라 했는데 마을이 불타면서 훼손된 것이다. 할망당의 당목은 와흘본향당의 당목인 폭낭보다 더 굵고 컸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증언하고 있다. 할망당은 학교 집 아래 밭 두 개 넘어 있었지만 지금은 과수원으로 개간해버려 흔적이 없고 다른 곳을 옮겨 굿을 하고 있다.
알선흘의 하르방당도 옯겨서 굿을 하고 있다.
지금도 마을 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선흘리 보건진료소 좌측을 끼고 길을 가다보면 길 한 가운데 고목을 만날 수 있다.
- 4.3 문학기행 '아픔을 넘어, 다시 기억하는 역사' (2009. 4. 25)
불칸낭 동영상 - 애초는 팽나무였다고 말씀하시는 강사님
https://blog.naver.com/jejulovetour/220713665201
사진정리 2009. 7. 17. 13:20
선흘 동백동산으로 가는 초입에 버려진 창고가 있다.
버려진 창고 사이로 꽤 오래 그자리를 지켜 서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팽나무 한그루가 있다.
이 사진을 찍은 계절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막 들어설 때 즘이다.
벛꽃이 피어있다. 팽나무에서는 돋아나는 새순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선흘 마을에 가면 독특한 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반은 불에타 죽어 있는 나무.
나머지 반쪽으로 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무.
이 나무를 불칸낭이라 부른다.
불에 타버린 나무라는 뜻이다.
이 나무는 제주도 4.3 사건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60여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다.
아픔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는 이 나무를
생명평화의 나무라 부르고 싶다.
아픔을 치유해 가며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가는 이 나무는
생명평화의 나무다.
※ 불칸낭(불타버린 나무)
선흘리가 초토화되면서 같이 탔지만 지금껏 살아있는 나무이다.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선흘리의 가옥은 단 몇 채만 놔두고 모두 전소됐다. 온 마을이 불타면서 마을 안 거리에 위치해 있던 팽나무에 불이 옮겨 붙어 오래된 지주목이 불탔다. 하지만 모두 타버려 생명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팽나무의 한쪽에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타버려 죽어버린 굽이에서는 어디선가 날아온 수종이 다른 나무의 씨가 새싹을 튀어 몇십년을 같이 살았다.
이 밖에 선흘리는 초토화과정을 겪으며 당목도 잃어버렸다. 선흘리민들은 매년 정초에 마을당인 일뤠당에 모여 굿도 하고 거리굿도 했었는데 초토화의 와중에 당목이 불타고 당도 훼손되었다. 알선흘은 하르방당, 본동은 할망당이라 했는데 마을이 불타면서 훼손된 것이다. 할망당의 당목은 와흘본향당의 당목인 폭낭보다 더 굵고 컸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증언하고 있다. 할망당은 학교 집 아래 밭 두 개 넘어 있었지만 지금은 과수원으로 개간해버려 흔적이 없고 다른 곳을 옮겨 굿을 하고 있다.
알선흘의 하르방당도 옯겨서 굿을 하고 있다.
지금도 마을 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선흘리 보건진료소 좌측을 끼고 길을 가다보면 길 한 가운데 고목을 만날 수 있다.
- 4.3 문학기행 '아픔을 넘어, 다시 기억하는 역사' (2009. 4. 25)
불 칸 낭 / 강덕환
아직, 살아 있습니다
터진 무릎파 또 터져
덧대어 기운 틈새로 찬바람
간섭해도 버티어 있습니다
삭신이야 온전할 리 있겠습니까
정처 없는 동백 씨앗
겨드랑이 타올라 뿌리 뻩고
담쟁이 목줄에 감겨와도
모두 아울러 살아갑니다
집이건, 연자방아간
깡그리 무너지고
동굴 속으로 숨어든 사람들마저
다시 못 올 길 떠난 자리에
방홧불에 데인 상처
아물지 못해 옹이로 슴배인
마을의 허한 터에 서서
끝내 사라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