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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r 05. 2021

자연을 꿈꾸는 뒷간

- 강산 시인의 꿈삶글 28






자연을 꿈꾸는 뒷간

- 강산 시인의 꿈삶글 28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해우소 중에

순천의 선암사 해우소를 손꼽는다

나는 고민한다

생태순환적이면서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아름다운 해우소를 만들 수 없을까


이동범 선생님께서 쓰신

<자연을 꿈꾸는 뒷간>을 읽는다





똥이 다시 밥으로 순환되는 생태적 뒷간을 위하여

추천사 1

자연을 꿈꾸는 뒷간


당신에게!
우리가 귀농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생태적인 뒷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자기가 눈 똥조차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기형적이고 불구적인 삶을 살면서 지속가능한 생태적 사회와 그 전망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거스르는 현대 산업문명, 특히 시멘트 아스팔트로 생태계의 순환체계를 철저히 차단하고 파괴하는 저 불임의, 죽임의 도시문명이 더 이상 건강할 수도, 지속가능할 수도 없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뒷간 문화는 이 문명의 기형성, 그 반생태적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대 산업문명, 저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문명을 변비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지금 이 문명의 똥탈은 아주 심각합니다.


먹으면 싸야 하는 것이 생명의 이치인데 이 문명은 먹기만 하고 싸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무릇 살아 있는 것 가운데 먹으면서도 싸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없듯이, 살아 있다는 것은 밥을 먹고 그 밥을 똥으로 만들어 싸는 것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살아 있음은 밥을 먹기 때문이요, 그 밥을 똥으로 만들어 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란 생명은 밥이 똥이 됨으로써 유지되는 것이고 나는 밥과 똥 사이에 존재하는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밥 먹고 똥싸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 더 근본적인 일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밥을 어떻게 마련해서 어떻게 먹어야 할 것인가와 마찬가지로 똥을 어떻게 싸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가 각 개인의 삶에서나 그 문명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밥과 똥은 서로 별개의 것일까요? 그것은 본질에서 하나입니다. 밥과 똥은 분리되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생명의 순환,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 과정에서 모습과 위치를 달리한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생성에는 반드시 소멸이 있습니다. 생성과 성장, 쇠퇴와 소멸, 한순간도 끊임없는 이 생멸현상에 의해 모든 것은 그 생명을 이어갑니다. 이처럼 흙에서 태어난 생명이 밥이 되듯이 밥에서 태어난 똥은 다시 그 모태인 흙으로 돌아가 흙의 밥이 되고 이 똥을 밥으로 삼아 흙은 다시 생명을 길러 밥을 만듭니다.


이렇듯 생명계의 순환 속에서 보면 밥 속에 똥이 있음과 같이 똥 속에 밥이 있는 것입니다. 밥은 반드시 똥이 되어야 하고 똥은 다시 밥이 되어야 하는 것이 모든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을 길러 풍요를 이루는 어머니 대자연의 원리인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똥이 되지 못하는 밥은 밥이 아니며 밥이 될 수 없는 똥은 똥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물이고 독이며 차단이고 죽임입니다.


그런데 지금 밥탈이 나고 똥탈이 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똥탈이 매우 심각합니다. 먹기만 하고 제대로 쌀 줄을 모르거니와 싼 똥조차 생명의 양식인 밥으로 다시 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독으로, 오염원으로 버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순환 구조를 철저히 차단하고 분리시킨 데서 현대문명이 처한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것은, 몸과 마음, 물질과 의식,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을 둘로 나누고 쪼개고 차단시킨 것에서부터 인간을 포함한 전 생명계의 절박한 위기가 비롯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리와 차단의 가장 상징적인 형태가 바로 앞서 언급한 대로 밥과 똥의 분리입니다.


당신이 잘 아는 바와 같이 현대문명, 서구문명의 척도는 똥의 기피 정도, 똥과 생태계 순환체계의 차단 정도로써 표현됩니다. 땅의 양식으로 되돌려지던 뒷간 대신에 맨션 아파트의 한가운데 자리잡아 사람이 싼 똥의 수십 배도 넘는 물을 쏟아부어 똥의 흔적을 씻어내리는 이른바 수세식 화장실이라 불리는 것을 가장 문명화된 형태로 삼는 것이 그 대표적인 보기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뒷간이 갖는 문제는 물이라는 생명 자원을 헛되게 낭비하고 강이나 바다를 오염시킨다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똥이 가진 생명력을 죽임으로써 땅과 땅 위의 생명을 살리던 귀중한 생명의 양식이 오히려 다른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에 있고, 이로 인해 자연의 생태순환 고리가 차단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문명화를 자랑하며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이 사실은 우리 삶의 근원을 스스로 파괴하는 어리석음과 다른 생명을 죽이는 범죄를 동시에 저지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똥의 순환 없이는 생태적 삶과 그 문명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다시 대지의 자식으로,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밥과 똥을 하나로 회복하는 것, 똥을 다시 대지의 양식으로 되돌림으로써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회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담하고 품위 있는 뒷간을 하나 만드는 것은 나의 오래된 바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살아가면서 밥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밥을 생각할 때 그 밥과 똑같은 무게로 똥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이곳저곳의 뒷간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주도에만 있다고 알고 있던 내 짧은 지식을 부끄럽게 만든 경남 산간 지방의 똥돼지 사육식 뒷간과, 눈부신 햇살 아래 대지 위에 맨몸을 드러낸 채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던 인도인의 똥들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맨발로 땅을 밟고 깡통에 담아간 똥 무게만큼의 물로 점잖게 뒤를 닦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빨을 닦는 것보다 뒤를 닦는 중요성을, 대지에 기대어 사는 삶의 단순성과 건강성을 봅니다.


핀란드의 국립공원에서 생태순환적인 뒷간을 만나고, 녹색 가게에서 우리의 재래식 뒷간과 같은 뒷간 만들기를 소개한 책을 보면서 생태적 삶과 그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인류 공동의 희망을 확인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을 꿈꾸는 뒷간』이라는 책은 생태적 삶을 위한 이 시대의 소중한 길잡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책에는 똥이 다시 밥으로 순환되는 원리와 이치를, 그리고 당신과 우리가 그리던 뒷간들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태적 삶을 추구하며 먼저 귀농한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답고 멋진 뒷간들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며 제대로 알리기 위해 온몸으로 문화답사 운동을 이끌어오던 이동범 형이 귀농하여 문화답사 운동에 쏟던 그 열정으로 이번에 다시 우리의 뒷간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되살리기 위해 만든 이 책은 우리가 기다려온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책의 덕분으로 나도 오래된 바람인 품위 있는 뒷간 하나를 조만간에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똥 오줌에도 도가 있다(道在屎溺)." 장자에 있는 구절이던가요. 생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던 글귀입니다. 아무쪼록 당신과 우리 모두가 생태적 삶과 그런 삶을 위한 세상을 위해 아담하고 정갈한 뒷간 하나씩을 먼저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밥을 거룩히 여기고 그 밥의 다른 모습인 똥이 소중히 대접받는 그런 삶과 문화를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지극정성껏 밥상을 받아 꼭꼭 씹어 모시고 자신과 세상의 사랑을 위해 열심히 일해 만든 제대로 된 똥을 생태적 뒷간에서 시원하게 내려놓는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똥들이 들판에서 향기롭게 익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천년의 첫여름 숲안마을에서
이병철(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


황금꽃의 비밀


누렇게 빛나는 것이
모두 황금이라면
여기 황금이 있다 황금꽃의
비밀이 있다

일찍이 눈부신 하늘을 이고
푸른 잎새였다가 붉은 꽃이었다가
달콤한 열매로 익어
그리하여 구수한 밥이 되었던
아름다운 생명이

허기진 중생의 뼈가 되고 살이 되고 가죽이 되고
터럭이 되고
마음이 되고 넋이 된 후
마침내 똥이 되어
누렇게 빛나는 것

찬란했던 한 생명이
중생의 밥이 되길 마다하지 않고
그 밥 또한 똥이 되길 주저하지 않은 자리에
눈부시게 피어나는 황금꽃이 있다
거룩한 똥 속에 새 생명을 낳는
연금술의 비밀이 있다

1998. 10.10 이병철





자기 똥을 3년 동안 먹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추천사 2

자연을 꿈꾸는 뒷간


나는 큰아들과 함께 오늘까지 20년 넘게 유기농사를 지어온 농사꾼이다. 나의 유기농업은 주로 농사 부산물과 많은 풀들, 그리고 분뇨와 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집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일부를 외부로부터 끌어다 보충하고 있는데, 마을 이웃 가운데 노동력이 부족한 노인이나 혼자 사는 여인네 집의 분뇨를 퍼다 쓴다.


유기농업을 하면서 그동안 우리 부자(父子)는 마을 변소 청소부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귀중한 퇴비를 공짜로 얻기도 하고 또 힘든 노인네 집의 변소 청소를 해주다보니 많은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 적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마을의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고 매도당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일도 이제는 내 나이 고희를 넘기고보니 거의 불가능해져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우리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분뇨는 주로 두 가지 방법으로 쓰인다. 겨울철에는 과수와 밀, 보리에 뿌리고 봄에는 감자, 고추, 호박 등 기타 작물에 밑거름으로 뿌리는데, 잘 발효된 퇴비와 함께 듬뿍 넣어주면 그것만으로 훌륭한 유기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밀, 보리나 기타 작물에 웃거름으로 줄 때는 뿌리기 좋게 3배에서 10배까지 물을 타서 살포한다. 가을 김장용 배추에는 오줌만 따로 모아서 물에 희석하여 엽면에 뿌려주면 매우 훌륭한 속효성 액비가 된다. 그러나 벼와 함께 2모작을 하는 논의 밀, 보리에다가는 오줌을 뿌려서는 안된다. 영락없이 다음해 심은 벼에 목도열병이 난다.


내가 사는 의성에선 벼를 수확한 논에 2모작으로 마늘을 심는데, 가을에 마늘을 파종할 때 분뇨로 만든 완숙퇴비를 듬뿍 넣어주면 다음해 벼농사 할 때에는 다른 아무것도 줄 필요가 없다. 남은 영양분으로만 해도 벼가 아주 알맞게 되기 때문이다.


분뇨를 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봄 거름과 여름에 가을용 거름을 만들기 위해 풀이나 곡식을 거두고 남은 줄기 등 거름 재료를 발효시킬 때 수분을 조절하고 미생물을 번식시킬 요량으로 분뇨를 퇴비장에 넣는 일이다. 이렇게 거름 재료와 분뇨를 켜켜이 잘 쌓아놓고 가끔씩 뒤집어주어 산소를 잘 공급하면 흰곰팡이가 엉킨 방선균 퇴비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토착 미생물이다. 이런 퇴비를 사용하면 작물은 아주 훌륭하게 자란다.


미생물은 어디에나 충만하다. 호기성 미생물이 좋아하는 조건(수분, 산소, 시간, 온도 등)만 잘 조절해주면 미생물은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렇게 훌륭한 토착 미생물을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얻을 수 있음에도 그동안 무수한 미생물제들을 앞다투어 수입해온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10여 년 전 일본 사이다마현(縣) 혼죠시(市) 한복판에서 7천평의 밭을 일구며 수십 종의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세야마아끼라(瀨山明)라는 농가에 견학차 이틀간 머문 적이 있었다. 서로의 농사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똥 농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는 아주 부러워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보시는 대로 나는 혼죠시 한가운데 농토가 있어 분뇨 냄새를 혐오하는 시민들 때문에 분뇨를 쓰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저온 발효된 분뇨 이상 좋은 비료가 어디 있습니까. 혹시라도 분뇨를 담아두는 통에 흙 속에 고인 빗물이 새어 들어간다면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그 속에는 그 땅에 필요한 미생물이 많으니까요. 미생물은 그 땅의 것이 가장 좋은데 한국 사람들은 왜 일본 미생물을 선호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일본을 드나들며 뭐에 좋은 무슨 효소제다, 미생물제다 과대 선전하며 농민을 울린 상혼들이 얄밉기도 하고 또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얼른 화제를 바꾸어야 했다.


지금 우리의 농촌에서는 분뇨가 농사용으로 쓰여진 지 오래다. 대부분은 한 번 처리 비용으로 4만 원이나 되는 돈을 들이며 위생차를 부르고 있다. 그럼 이 분뇨는 고스란히 우리의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쓰레기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귀중한 자원을 돈을 주면서까지 쓰레기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한 경우는 비가 많이 와서 도랑물이 넘칠 때 몰래 빗물과 함께 변소에 가득 고인 분뇨를 퍼다 흘려보내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는 대부분의 농가 노동력이 노령화·부녀화되어 똥장구니 하나 짊어질 힘이 없어진 이유가 크다. 그러나 더욱 큰 이유는 5·16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강력하게 추진된 근대 농법, 곧 화학비료·농약 농법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손쉽게 쓸 수 있으며 표피적으로는 위생적으로 보이는 화학비료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냄새나고 퍼내기 힘든 분뇨를 누가 쓰려고 하겠는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자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다음과 같은 명쾌한 '하수도 이론'을 펼치고 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궁리한 끝에, 비료 중에 가장 생산적이며 유효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분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남극의 갈매기나 펭귄의 똥을 긁어모으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선단을 파견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장 내 앞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무한의 자원을 처리하는 데 또 그만큼의 많은 돈을 들여 바다에 흘려보내고 있다. 프랑스만 해도 매년 5억 프랑이란 막대한 돈을 바다로 흘려버리고 있다. 이는 프랑스 예산의 4분의 1이나 되는 규모이다. 만약 인간들이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자신의 분뇨를 바다에 버리지 않고 흙으로 되돌린다면 인류가 먹고살기 위한 식량은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의 유명 도시들은 아직도 앞다투어 하수도 문명을 발달시켜가고 있다. 하수도의 보급이야말로 문화의 지표라는 것이 근대 도시의 논리인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의 논리와 함께······.


원래 분뇨를 흙으로 돌려보내 농사에 이용한 인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구약성서의 「신명기」를 보더라도 야훼신이 모세에게 "뒤를 보고 그것을 땅에 묻으라"고 명한 내용이 나온다. 고대 로마에서는 B.C. 30년 경부터 분뇨가 사용되었다고 하며, 중세 11세기쯤에 와서는 도시 분뇨가 체계적으로 비료화되어 각 도시의 분뇨 장사꾼에 의해 상품화되어 팔려나갔을 뿐만 아니라 해외무역 상품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는 지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교토(京都)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농민들이 거리를 누비며 "오줌 사려!"라고 외치면서 그것을 무나 채소와 교환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뇨 이용의 기원에 대해서 정설은 아직 없으나 경북대 이호철 교수의 『농업 경제사 연구』에 의하면 조선 전기에 분전법(糞田法)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분종(糞種), 분과(糞科)라는 극히 한정된 범위에서 점차 분전(糞田)이라는 경지 전체의 시비방법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근대 농법이 시작된 것은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하고부터이다. 이때부터 분뇨 농법은 비위생적이고 미개한 농법으로 멸시당하며 추방운동까지 일어났다. 이럴 즈음에 참으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정부가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이 차를 타고 김해 평야를 달리는데 보리밭에 뿌린 분뇨 냄새가 차창으로 스며들었다. 이 대통령은 수행하고 있는 양성봉 농림장관에게 "저 무지한 농민들을 계도하여 비위생적인 미개한 분뇨 농법을 지양하고 화학금비를 쓰도록 하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명령이 근대 농정의 기초가 된 것이다.


그후 5·16 군사 정권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공업입국 조국근대화 정책에 의해 중농정책은 포기되고 농업 또한 근대 농법으로 급전되면서 분뇨는 우리 농업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농법이 역대 정권을 통해 더욱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40년의 세월 동안 그 소중한 분뇨는 농토로 돌아가지 못하고 물로 흘려보내짐으로써 땅은 피폐해지고 수질은 더욱 오염되는 악순환을 만연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분뇨를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의 배설물의 향방이나 처리문제는 농업에만이 아니고 인류문명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분뇨로 보리밭을 가꾸는 일을 낙으로 삼고 똥장구니 마개가 대오를 맞추어 온 밭에 번져가는 것을 회심의 미소로 바라보며, 서숙짚으로 만든 개똥 소쿠리를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이른 새벽부터 누비던 세대는 이제 거의 사라져간다. 한편, 도시의 의식 있는 젊은 귀농자들은 우리의 뒷간 문화를 무슨 낭만이나 이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를 결코 낭만이나 어떤 이상형 문화로서가 아닌,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될 대안 문화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람은 3년 동안 자기 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똥과 밥은 항상 순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똥 냄새를 혐오하는 사람은 아직 진정한 농부가 아니다. 그래서 유기농업을 한다고 하면서 아무 고민도 없이 으레 수세식 변기를 쓰는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당신은 과연 진정한 유기농사를 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유기농업을 하려면 우선 똥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유기농업이란 우선 우리의 뒷간을 복원하는 일이며 분전법을 재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동범 님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온 『자연을 꿈꾸는 뒷간』은 우리의 소중한 길잡이로서 읽혀지고 실천될 것임을 믿는다.


경북 의성에서
김영원
(전국유기농 실천협의회 회장, 전국귀농운동본부 고문)







자연을 꿈꾸는 뒷간


책소개


충남 아산으로 귀농하여 스스로 무공해 유기농을 실천하고 있는 저자가 전국을 발로 뛰며 쓴 '전통 뒷간'에 대한 흥미진진한 보고서. 평소 전통 문화 유적지를 답사하며 절간의 해우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저자는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인분만큼 좋은 거름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똥을 재활용할 유익한 자원으로 활용한 우리의 전통뒷간의 가치를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음식을 먹고, 거름이 되면, 밭에 주었던' 한국 고유의 '뒷간'문화를 되짚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발달한 요강문화, 똥돼지, 똥개 등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뒷간과 관련된 풍부한 우리말 등을 소개하면서 귀중한 '똥'을 무조건 더러운 것으로 치부해 물과 섞어 흘러 버리는 현대의 수세식 변기야말로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꼬집는다.

또한 지역, 계층, 자연환경 등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했던 전통 뒷간의 형태를 소개하고, 귀농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쓰고 있는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킨 생태적 뒷간의 사례와 만드는 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우리의 전통 뒷간이 생태순환의 원리에 충실할 뿐 아니라, 아름답고 위생적이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


저자소개


이동범      

이동범 저자는 계레문화답사연합의 대표 일을 맡으며 우리의 전통 문화를 보전하고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해오다 1999년 3월 충남 아산으로 귀농했다. 1,600평의 땅에서 아내와 함께 2년째 농사를 지어온 저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거의 가족들의 인분만으로 유기농사를 실천하고 있다. 저자는 문화답사 일을 하면서 다녔던 사찰의 해우소 뒷간에 담겨진 조상들의 지혜에 감복했던 경험이 있어 귀농하면 자신도 꼭 그런 뒷간을 갖는게 꿈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친 마을의 개발 때문에 대부분의 임대농지가 개발부지로 묶여 하는수 없이 올 여름부터 농사를 아내에게 맡기고 다시 직장을 얻어 주말농사꾼이 된 형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귀농하면서부터 맡았던 '(사단법인)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 잡지 [귀농통문]편집위원 일까지 하느라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목차


추천사 1 - 똥이 다시 밥으로 순환되는 생태적 뒷간을 위하여/ 이병철
추천사 2 - 자기 똥을 3년 동안 먹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김영원
머리말 ; 자연과 함께 사는 우리 뒷간
1. 한국의 뒷간 문화
- 왜 '뒷간'이라 불렀는가
- '뒷간'을 통해 본 한국인의 똥 철학
- 똥을 버린 자는 곤장 50대?
- 똥의 생태적 활용과 똥 건강학
- 변기와 인체 건강
- 뒷간과 관련된 풍부한 우리말
2. 한국의 전통 뒷간
- 서민들이 애용했던 부춧돌 잿간
- 양반들의 정갈한 2층 누각형 잿간
- 비탈을 이용한 사찰의 해우소
- 똥항아리를 묻은 농촌의 수거식 뒷간
- 똥돼지의 살림집 통시
- 미세기를 이용한 바닷가의 측간
3. 수세식 화장실과 생태 뒷간
- 수세식 화장실의 탄생 역사
- 복합오염의 주범 수세식 화장실
- 음식과 똥의 분리는 생태적 재앙
4. 뒷간의 생태적 원리
- 똥과 오줌에 대한 생태적 이해
- 분뇨의 퇴비화를 위한 기본 이해
- 왜 재나 왕겨, 톱밥 등을 뿌려주는가?
5. 생태적 뒷간의 사례
- 수거식 뒷간
- 해우소식 뒷간
- 잿간
- 통시(똥돼지간)
- 자연발효 위생화장실
6. 생태적 뒷간 만들기
- 1단계 - 주변 환경에 맞는 생태적 뒷간의 기본 구상
- 2단계 - 생태적 뒷간을 지을 때의 기본 설계
- 3단계 - 유형에 맞는 생태적 뒷간 짓기
- 4단계 - 뒷간 내부의 현대적 개량화
- 보론 - 수세식 양변기의 생태적 전환,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7. 새로운 뒷간 문화를 위하여
- 뒷간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 갖자
- 전통 뒷간의 생태성을 계승, 발전시키자
- 수세식을 환경친화적으로 개량화시키자
- 한국 화장실 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자연을 꿈꾸는 뒷간      

자연을 꿈꾸는 뒷간, 책 소개 및 독자리뷰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지음)


책소개


똥을 숨과 밥과 함께 생태순환의 한 고리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묵직한 생태 관련서. 우리의 전통 뒷간이 생태순환의 원리에 충실할 뿐 아니라 아름답고 위생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평소 전통문화 유적지를 답사하며 절간의 해우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저자는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인분만큼 좋은 거름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똥을 유익한 자원으로 활용했던 우리의 전통 뒷간이 지닌 가치를 새로이 발견해낸다. '음식을 먹고 거름이 되면 밭에 주었던' 한국 고유의 뒷간문화를 훑어보고, 우리나라의 요강문화, 똥돼지, 똥개 등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뒷간과 관련된 풍부한 우리말 등을 소개하면서 귀중한 똥을 무조건 더러운 것으로 치부해 물과 섞어 흘러 버리는 현대의 수세식 변기야말로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역, 계층, 자연환경 등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했던 전통 뒷간의 형태를 소개한다. 아울러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 쓰고 있는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킨 생태적 뒷간 만드는 법을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서민가정의 수거식뿐 아니라 아궁이의 재를 이용한 잿간, 절간의 짜투리 공간인 언덕을 이용한 해우소, 양반들의 누각형 잿간, 똥돼지의 먹이 공급원으로 쓴 통시형 뒷간, 바닷가 밀물을 이용한 측간 등 전통 뒷간의 다양한 유형을 현장 사진과 함께 소개하면서 전통 뒷간의 장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지은이 소개


이동범 - 저자는 겨레문화답사연합의 대표 일을 맡으며 우리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해 오다가 1999년 3월에 충남 아산으로 귀농했다. 1,600평의 땅에서 아내와 함께 2년째 농사를 지어온 저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거의 가족들의 인분만으로 유기농사를 실천하고 있다.


저자는 문화답사 일을 하며 다녔던 사찰의 해우소 뒷간에 담겨진 조상들의 지혜에 감복했던 경험이 있어 귀농하면서 자신도 꼭 그런 뒷간을 갖는게 꿈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친 마을의 개발 때문에 대부분의 임대농지가 개발부지로 묶여 하는 수 없이 올 여름부터 봉사를 아내에게 맡기고 다시 직장을 얻어 '주말농사꾼'이 된 형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귀농하면서부터 맡았던 계간잡지 「귀농통문」 편집위원 일까지 하느라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책 표지 글


「자연을 꿈꾸는 뒷간」은 생태적 삶을 위한 소중한 길잡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책에는 똥이 다시 밥으로 순환되는 원리와 이치를, 그리고 당신과 우리가 그리던 다양한 뒷간들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태적 삶을 추구하며 먼저 귀농한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답고 멋진 뒷간들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덕분으로 나도 오래된 바람인 품위 있는 뒷간 하나를 조만간에 마련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당신과 우리 모두가 생태적 삶과 그런 세상을 위해 아담하고 정갈한 뒷간 하나씩을 먼저 만들었으면 합니다. 지극 정성껏 밥상을 받아 꼭꼭 씹어 모시고 자신과 세상의 사랑을 위해 열심히 일하여 만든 제대로 된 똥을 생태적 뒷간에서 시원하게 내려놓는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똥들이 들판에서 향기롭게 익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추천사」중에서, 이병철(전국 귀농 운동본부 본부장)


독자리뷰

최진욱 (2004년 9월 26일 월요일)


책의 첫 느낌
뒷간, 화장실, 똥간, 똥수간.
더럽다, 냄새난다, 특히 시골에 있는 것은 더 더럽고 냄새나고 어둡기까지 하다.
대략 다음과 같은 생각, 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우선, 너무 가까이 있지만 특별나게 생각한번 안 해본 소재라서 특이했다.
이런 책도 다 읽어보는 구나 하는 생각.
책을 한 번 쭉 넘겨 훑어보고는 사진, 흥미를 이끄는 그야말로 '뒷간'들의 사진, 이 많아 재밌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서 뒷간에 대해 내가 지금껏 생각하던 것들이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약간의 도전정신? 궁금증들도 참 많았다.
무언가 심각하게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서 읽기 전부터 서평을 쓰기 곤란하겠는걸 하며
턱 겁부터 났었다.
그렇게 나는 긴장 반 두려움 반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읽고 느낀 점
똥이 곧 밥이다. 똥이 만드는 세상. 똥이 돌아 땅이 되고. 어느 하나 안 와 닿는 말이 없다.
정말 인 것 같다. 그냥 '더럽게' '냄새나게' 생각해오던 '똥'이라는 것이 내 머릿속에서
아테네 올림픽의 그것과도 견줄만한 '소중한' '귀중한' 것으로 탈바꿈했다.
생명체란 먹고 그것을 배출하고 또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다시 그것을 먹는
무한히 돌아가는 아름다운 원에 의해 유지된다 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정말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실과라는 책의 삽화에서 본 인분의 재순환 이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화장실'이라는 수질오염의 주 파괴범, 그 자식에 대해서도 알게되는 기회가 되었고,
'뒷간'이라는 우리네 조용히 숨쉬는 이웃, 그 자식에 대해서도 알게되는 기회가 되었고,
'통시', '해우소', '측간' 자기네 모양 모양마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이 놈들과도 친해졌다.
귀중한 것, 그 자체로 지나치지 않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를 만나고 난 뒤 느낀 점
이동범 씨. 1999년 귀농 하시고 지금은 주말농사꾼 형편의 그.
살이 보기 좋게 붙으신 말끔한 도시의 셀러리맨 같아 보이는 그를 만났다.
이런 기회가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몰랐지만,
그분께서 잘 이끌어주시고, 재미있게 이야기도 해주셔서 다소 지치고 놀란 마음을 안정시켜주셨다.
자연의 돌고 돔. 그 안에 숨쉬는 똥이라는 귀중한 비료를 발견하셨기 때문에
서울 태생의 그가 귀농을 결정했다고 하셨다.
우리의 뒷간은 조금만 신경 쓰면 친환경적이면서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
접근이 필요한데, 하나는 쓰는 사람은 터부시해서는 안되고 애정을 가져야 하고,
또, 옛날 뒷간을 쓰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원리를 그대로 쓰되 깨끗하게 고쳐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으로 이 책을 지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책 읽는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은 더 유연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니 이 현대사회에서 조금 더 친환경적이고, 인간다운 마음을 지닌
많은 사람들중 한분을 만나뵙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뭐가 변화되었을까? 아직은 아닌가.





저자소개 - 이동범

추천사 1

추천사 2

머리말 

1장 한국인의 뒷간 문화

1. 왜 '뒷간'이라 불렀는가

2. '뒷간'을 통해 본 한국인의 똥철학

3. 똥을 버린 자는 곤장 50대?

4. 똥의 생태적 활용과 똥 건강학

5. 변기와 인체 건강

6. 뒷간과 관련된 풍부한 우리말


2장 한국의 전통 뒷간

3장 수세식 화장실의 생태적 재앙

4장 뒷간의 생태적 원리

5장 생태적 뒷간의 사례

6장 생태적 뒷간 만들기

7장 새로운 뒷간 문화를 위하여

참고도서




왜 '뒷간'이라 불렀는가


1)뒷간의 의미


전통적으로 '뒷간'이나 '측간'으로 일컫던 변소를 지금은 '화장실'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화장실의 역사는 매우 짧다. 화장실 공간이 처음으로 살림집 안에 들어온 것은 1941년 영단주택(문화주택)이 시초였고, 지금과 같은 세면기, 변기, 욕조로 구성된 화장실은 1962년 마포 아파트가 처음이었다.


화장실이란 말은 서양에서 개발된 수세식 양변기가 들어오면서 씻는 곳과 싸는 곳이 물을 매개로 공간이 통합되면서 붙은 서구적 개념의 말이다. 이러한 화장실이 들어오기 전에는 욕실 공간과 배설 공간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우리의 뒷간이 이른바 일제에 의해 변소(便所)로 불리던 시기는 일제시대부터 바로 수세식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로, 이 당시의 가정집에는 일부 소수 계층에서나 실내 욕실 공간이 있었을 뿐이며 대다수 서민들은 공중 목욕탕을 이용하는 형편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업발달사 측면에서 보면 일제시대 이후 자본주의화에 따른 도시 집중으로 인해 인구가 대거 도시로 밀려들면서 변소라는 수거식 뒷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화장실이나 변소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뭐라고 불렀을까?


옛날에는 화장실을 '뒷간' 또는 '측간(厠間)'이라고 불렀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칙간(측간의 사투리)', '정랑('뒷간'의 경상도 사투리)'이라고도 불렀다. 점잖게 한자말로 정방(淨房)이라고도 했고 절에서는 '근심을 더는 곳'이라 하여 해우소(解憂所)라 부르기도 했다. 또는 북수(뒷물)를 하는 곳이라 하여 '북수간(北水間)'이라고도 했다.


옛날집 뒷간에는 재를 많이 뿌렸으므로 '잿간'이라고도 불렀고 한자로 회간(灰間), 신간(燼間)이라 했다.


또한 조선시대 이후 일상생활에 깊이 박힌 유교적 관념의 영향을 받아 괴춤이나 치마끈을 푸는 곳이라고 꺼려했다. 그래서 기록이나 유물 등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급한 데', '부정한 데', '작은 집' 등으로 은밀히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말은 '뒷간'이었다.


뒷간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뒤를 보는 집'이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뒷마당에 자리한 집'이라는 뜻이다. '사람 똥'을 점잖게 에둘러 표현한 말이 '뒤'인데, 유교적인 의미의 은밀성이 드러나는 표현이다.


그런데 뒷간의 본질적 의미는 바로 '뒷마당 한켠에 자리한 집'이라는 데 있다. 뒷간의 한자말인 '측간(厠間)'도 이러한 의미를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즉 厠(뒷간 측)은 广 + 則 인데, 여기서 則은 '한쪽 귀퉁이'란 뜻의 側으로도 쓰이므로 결국 '마당 한귀퉁이(則)에 놓인 건물(广)'이란 뜻이다.


이렇듯 뒷간이라고 부른 것은 화장실이 살림채에 붙어 있지 않고 뒷마당에 별채 형태로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뒤에 따로 떨어진 측간'이란 뜻으로 '뒷간'이라 부른 것이다. 이 뒷간이란 말은 1459년 『월인석보』에서 처음 나타난다.


2)뒷간을 따로 떼어놓은 이유


그렇다면 조상들은 왜 뒷간을 따로 떼어놓았을까? 언뜻 당연한 듯하지만 밤중에 볼일 보러 깜깜한 밤중에 마당이나 뜰을 거쳐 간다는 것이 조상님이나 우리나 귀찮고 무섭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측간을 따로 떼 놓아야 했던 뒷간의 공간적 의미 속에서 바로 뒷간의 과학을 찾아낼 수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만큼 우리네 조상들은 인분을 거름으로 내어 썼는데 이렇게 뒷간의 인분을 거름으로 쓰자면 인분을 부패·발효시켜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메탄·질소·암모니아 등의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가스를 원활하게 배출시켜 냄새를 없애려면 뒷간의 위치는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있어야 했다.


또한 통풍이 잘 되어야만 인분 속에 있는 미생물에게 산소를 공급해주어 발효가 더욱 빨라진다. 통풍을 잘 되게 하는 것은 냄새 문제를 해결하고 미생물 발효를 돕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 집의 좌향 등을 고려하여 뒷간의 위치를 결정했다. 통풍이 잘 되려면 우선 뒷간을 살림채에서 따로 떨어뜨려야 했고, 집의 구조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해 냄새가 살림채로 넘어 들어오지 않도록 공간적 배치를 했다.


만일 공간적으로 도저히 살림채와 분리시키기 어려운 경우에는 살림채에 붙여놓더라도 통풍이 잘 되고 또한 냄새가 살림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곳을 택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지만 강원도의 깊은 산속 화전민 집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럴 땐 살림채와 붙어 있더라도 독립 공간처럼 배치하고 똥통을 작게 해 빨리빨리 수거하여 치울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3)뒷간과 부엌은 원수지간?


뒷간을 살림채에서 따로 떨어뜨릴 때에도 특히 음식 만드는 공간인 '정지(부엌)'와는 더더욱 멀리했다. 냄새도 냄새지만 위생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엌과 뒷간이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제주도에선 아주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南선비의 첩으로 들어가 본부인과 그녀의 일곱 아들까지 죽이려다 흉계가 들통나자 측간으로 도망가 목매달아 죽어 측도부인(厠神 : 측간신)이 되었다. 이에 따라 南선비의 본부인인 조왕(竈王 : 부엌 신)과 첩인 측도부인은 원수지간이 됨으로써 부엌과 측간은 멀리 짓고, 측간의 돌멩이 하나, 나무 하나라도 부엌으로 가져오지 않으며, 부엌의 물건 역시 측간에 가져가지 않는 관습이 생겼다.

- 제주도 '문전본풀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신문화연구원 편)


부엌과 뒷간의 공간 분리는 통풍성을 좋게 하고 냄새를 분리하며 위생 보건과 미생물 발효를 촉진한다는 면에서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는데 이러한 과학적 근거들을 굳이 일일이 설명치 않고도 떨어져야 좋다는 것을 민간신앙적으로 설파한 것이 참 재미있다.


뒷간과 살림채를 공간 분리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화재예방이었다. 옛집은 목재를 많이 사용하므로 불이 나면 다른 방도가 없을 정도로 약했다. 『증보산림경제』나 『임원경제지』에 보면 "재의 열은 화재를 일으키기 쉬우므로 잿간은 살림채 가까이에 두면 안 된다(熱灰易生火故灰屋勿接近人居)"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옛날에는 뒷간 자체가 재를 보관해두는 잿간으로 쓰이거나 퇴비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잿간 근처에 많이 두었기 때문에 뒷간 또한 화재예방을 위해 살림채와 떨어뜨리는 것이 상식적이라는 얘기다.


이 밖에도 공간분리는 텃밭에 똥거름을 뿌리기 편한 공간으로 쓰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사찰 해우소(解優所)의 공간 배치를 잘 살펴보면 대부분이 똥거름을 내어 쓰기 쉽도록 채마밭과 연결되어 있듯이, 서민들의 뒷간도 텃밭과 연결되어 인분을 처리하기 쉽게 했다.


논밭과 뒷간 사이의 거리가 멀 때는 똥장군이나 오줌장군을 지게에 지고 밭둑가에 파놓은 소매구덩이에 갖다날라 뿌렸으니 '거름을 낸다'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이렇게 똥장군으로 자주 퍼내어 똥거름을 만들어 쓰려면 아무래도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뒷간이 따로 있으면 거름내기도 편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뒷간은 우물과도 멀리했는데 이것은 식용수의 오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뒷간이 이렇게 살림채와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야밤에 볼일을 보려면 별도 보고 달도 보고 바람도 쐬며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듣는 운치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오직 뒷간만의 장점이다. 뒷간까지 가는 길이 비록 짧지만 사색하며 걷는 산책길이었으니 그 맛은 오직 뒷간을 가진 사람들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여인네, 어린이들은 야밤의 뒷간 출입이 불편했기 때문에 실내에서 쓸 수 있도록 고안한 임시용 변기가 바로 요강이니, 요강을 야호(夜壺 : 밤에 쓰는 단지)라고 불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밤새 받아놓은 요강은 다음날 새벽 퇴비더미에 뿌려져 천연퇴비를 만드는 재료로 요긴하게 쓰여졌으니, 이렇듯 뒷간이 떨어진 의미는 그 불편함을 상쇄할 만큼 나름대로 상당한 과학성을 지니고 있다.





똥돼지의 살림집 통시


1) 똥돼지간의 역사적 연원


'통시'는 일명 '똥돼지간'으로서 '돝통시'라고도 하는데 측간 아래쪽의 분뇨 저장공간에 돼지우리를 둔 뒷간이다. 오늘날 제주도나 지리산골 주변의 오지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돝통시는 사람들에겐 배설의 공간이지만 돼지들에겐 즉석요리를 시식하는 훌륭한 식당(?)이다.

사람들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음식찌끼를 돼지가 마저 먹고 맛좋은 똥돼지로 변해 사람들에게 훌륭한 고기를 선사하니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자원재활용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정육점에서 파는 백돼지의 맛과 이 똥돼지의 맛은 비할 수 없다. 우리나라 토종의 흑돼지 중에서도 통시에서 기름기 없는 사람 똥을 먹고 자라는 똥돼지야말로 비계도 거의 없고 돼지 특유의 누린내도 나지 않으니 육질면에선 단연 최고로 손꼽힌다. 더구나 앞서 소개한 똥개처럼 외국산 재료로 만든 사료와 달리 우리네 사람들의 똥을 먹기 때문에 우리의 식단과 신체 구조에 맞는 맞춤형 돼지고기라 할 수 있다.

돝통시의 기본 구조는 2층 누각 구조로서 아래층엔 돼지우리가 있고, 위층에 뒷간이 있어 계단이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다. 통시 안에 들어가면 안에는 기다란 장대가 있어 볼일을 볼 때 돼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배고픈 돼지가 돌진하는 사태(?)도 막고 인분 세례를 맞은 돼지가 몸이라도 흔들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이렇듯 뒷간의 형태와 분뇨처리 방식이 독특한 돝통시가 제주도나 지리산 같은 깊은 산골에 주로 분포하는 지역적 연원은 무엇일까?

인류가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기 이전의 주거형태는 동굴 아니면 나무 위였는데, 볼일을 보는 곳도 자연스럽게 나무 위였다고 한다. 인류의 시조라 할 원숭이나 침팬지의 경우에도 나무 위를 주거지로 삼으면서 대소변을 나무 위에서 보았다. 채집과 수렵생활을 했던 당시의 인간들은 동굴이나 나무 위에서 살면서 짐승들의 습격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뒤를 보려면 재빠르게 보거나 나무 위 같은 은신처에서 보는 방법밖엔 없었을 것이다. 볼일 볼 동안에 짐승이나 독사, 독충들이 공격하면 꼼짝없이 당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파푸아뉴기니의 오지에 사는 종족들은 걸어다니면서 대소변을 보는데 그 이유가 수목이 우거진 정글에서 볼일을 보자면 그 냄새를 맡고 독충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 볼 때 짐승과 독사, 독충들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가 제일 먼저 택한 측간은 '나무 위'가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인간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자 고정된 주거지에서 분뇨를 처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분뇨처리 공간을 지을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우선 짐승이나 벌레,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신변을 보호하고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망루 구조여야 한다는 점, 둘째로는 분뇨의 처리가 용이해야 하는 점이 아마도 제일 먼저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민족 중에서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주거지에 치명적인 해를 주는 독사나 독충에 절대적으로 강한 돼지를 아래층에 키우고 위층은 주거와 뒷간으로 구성되는 마루 구조의 살림집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겨울이 돌아오는 지방의 사람들은 마루 구조와 난방집을 같이 두되 뒷간을 마루 구조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해보는 것은 실제로 집(宀) 내부에 돼지(豕)를 키우는 것이 집[家]이기 때문이다.


2) 팡돌간과 돼지막이 어우러진 제주도 돝통시


제주도의 경우에는 뱀이 많아 그 피해가 많았다. 제주도의 가시리 일대에는 아직도 뱀 신당을 모실 정도로 뱀이 많은데, 뱀에게 노여움을 안 사야 뱀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독사에게 가장 강한 짐승은 바로 돼지였다. 돼지는 지방살이 두꺼워 어떠한 독도 혈관을 뚫지 못하기에 독사에게 가장 무서운 천적이었고 또한 독사는 돼지에게 좋은 영양식이었다. 그래서 돼지를 집집마다 키워 뱀의 가택 침입을 막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토양이 매우 척박하여 돼지에게 먹일 사료가 충분치 않았던 제주도였기에 인분을 돼지사료로 삼았던 것이다.

제주도의 통시 구조는 대부분 누각 구조가 아닌 수평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부출 밑이 돼지우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부출의 높이는 돼지가 머리를 들고 들어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로 되어 있다. 보통 다른 지방의 경우 부출을 나무로 까는 것이 일반적이나 제주의 경우에는 '팡돌'이라고 하는 넓적하고 긴 돌멩이 두 장을 부출로 깔아놓고 쓴다. 따라서 제주의 돝통시에서는 팡돌이 '부출' 겸 '부춛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팡돌 두 장이 놓인 변소와 돼지막(돼지우리)이 수평적으로 연결된 구조가 제주의 돝통시다.

제주 통시의 위치는 주로 바깥 돌담에 덧붙여 놓는데 사람 키 정도를 가릴 만큼 돌담을 두르고 한켠에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덮어주었다. 뒷간은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 팡돌 두 장을 깔아놓았는데 대부분 지붕이 없다. 대체로 통시의 모양은 열쇠구멍 모양처럼 둥그런 돼지막 한쪽 귀퉁이에 뒷간이 쑥 들어가 있는데, 칸막이가 없어 돼지는 팡돌 밑과 돼지막을 자유롭게 왔다갔다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제주도의 돝통시



① 왼쪽 앞에 옆으로 가지런히 놓인 팡돌 위에 앉아 뒤를 본다. 그 뒤로 보이는 곳이 돼지들이 잠도 자고 비도 피할 수 있는 돼지막이다.

② 통시의 마당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똥돼지들. 이들에겐 집안 식구들의 인분만으론 먹잇감이 부족하므로 따로 사료를 주는 구유통이 있어야 한다.



3)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지리산골 통시


역시 돝통시가 많은 지리산 자락의 산골마을은 어떠한가? 깊은 산골에다 수풀이 우거진 이곳에선 측간이 짐승과 벌레로부터 안전한 누각 방식이 선호되었다. 특히 지리산골같이 깊은 산골이나 뱀이 많은 지역은 돼지를 많이 키웠다. 산골마을의 경우 경작지가 부족하여 돼지에게 먹일 사료도 마땅치 않으니 인분으로 키우는 똥돼지가 제격이다.

물론 인분만으로는 사료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음식찌꺼기나 농산물찌꺼기를 함께 주는데, 인분을 직접 퇴비로 쓰지는 못하지만 돼지우리 바닥에 짚이나 마른풀을 깔아두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인분이나 돼지똥, 채소찌꺼기 등이 돼지발에 밟히면서 자연스레 함께 섞여 두엄이 된다. 이런 두엄을 '쇠두엄[廐肥]'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거두어내어 두엄간에 쌓아두면 양질의 천연퇴비가 되는 것이다.

지리산의 통시 구조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 있다. 대체로 산밑의 평지마을에서는 평지에 2층으로 짓고 사다리를 놓아 오르내리는 식이 많고, 산골의 경사진 곳은 해우소식으로 비탈 위에 놓아 전면 1층, 후면 2층의 구조로 지어져 있다.

똥돼지간은 전국적으로 거의 사라졌는데, 지리산 인근 마을에는 아직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남 산청군 구평리의 뒷간이나 신등면 평지리의 통시는 평지에 위치한 까닭에 돌계단이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해놓았다. 구평리의 통시는 돼지우리 전체를 2층 누각으로 올렸으며, 평지리의 통시는 돼지우리 한켠에만 다락식으로 올렸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의 똥돼지간은 경사가 급한 산골마을이라 해우소식으로 지었다.



경남 산청군 생초면 구평리의 똥돼지간



① 왼쪽 돌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2층 누각형 구조. 아래쪽이 돼지우리다.

② 2층 안이 넓어 창고를 겸하고 있으며 한켠에 부출이 깔려 있다.

③ 우리 안에 똥돼지가 식사를 마치고 기분좋은 듯 낮잠을 즐기고 있다.




경남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법물의 통시




① 왼쪽의 나무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통시의 좌우쪽에 다른 건물칸이 붙어 있어 채광과 통풍을 위해 돼지우리 전체에 부출을 덮지 않고 한켠에만 설치하여 다락처럼 꾸몄다.

② 부출 사이로 똥돼지들이 보인다. 사람이 2층으로 오르면 뭐 먹을 게 안 떨어지나 하고 돼지들이 부출 밑으로 모여든다.

③ 똥을 잘 먹는 똥돼지는 우리나라 토종 돼지인 흑돼지다. 몸집이 작고 빨리 안 자라 거의 멸종되어가다가 최근 똥돼지의 육질이 서양 두룩돼지와 비할 바 아니라는 것이 사람들의 입맛을 통해 증명되면서 조금씩 수요가 늘고 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의 똥돼지간



① 지리산 칠선계곡이 마주 보이는 산자락에 구양리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뒷간은 대부분이 통시다.

② 비록 뒷간의 외벽은 시멘트로 발라 개량화시켰지만 내부구조는 옛날식 통시다. 1층은 돼지우리이고 2층의 한켠은 부출, 한켠은 창고로 만들어 쓰고 있다.

③ 부출바닥에 타일을 입히고 하얀 타일변기를 달아 나름대로 깔끔하게 내부 시설을 꾸미려 했다.

④ 부출 가운데 변기구멍에 돼지 얼굴이 보인다. 역시 떨어질 먹이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⑤ 아래층 돼지우리의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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