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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01. 2021

천년폭낭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3





천년폭낭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3   


            

1

퐁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폭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팽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산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신당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서낭당나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정자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

얼굴책에서 우연히 나무 한 그루 사진을 보았다

살아있는 낭쉐 한 마리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뿔로 하늘을 들어올리고 있다

쿵쿵쿵 지축을 흔들며 낭쉐 한 마리 걸어가고 있다

텅, 텅, 텅, 걸어가면서도 똥을 잘 싼다

똥덩이를 보니 ‘상가리 천년퐁낭’이라 쓰여있다

지식의 바다로 헤엄을 쳐서 들어간다

살아있는 낭쉐는 코끼리가 되고 하마가 되고

거대한 전갈이 되고 거대한 하늘소가 된다

코뿔소가 되고 사슴이 되고 노루가 되고 토끼가 되고

백록이 되고 꽃 모자를 쓴 설문대할망이 된다

나는 쇠기둥을 받치지 않은 낭쉐가 더 마음에 들지만

세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나는 이제

천 년을 넘게 살았다는 그 폭낭을 찾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올려야만 하겠다

속을 다 비우고 껍데기로 버티고 있을 나무 한 그루

뼈만 남아서 온 몸이 뼈가 된 나무 한 그루

나이테도 다 버리고 기억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나무 한 그루

넘어지고 얻어터지고 허리가 꺾여서도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을 생에 대한 믿음 한 그루

나는 그 꿈과 삶에 대한 예의를 찾아서 가리라

그 간절한 마음은 꿈속으로도 이어져

연꽃이 있는 꿈속으로 먼저 찾아간다

천 년 폭낭이 낳아 기른 상가리

이 폭낭 아래서 차씨, 주씨, 현씨 세 사람이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상가리로 발전하였다는 전설을 따라가니

올레에 조등이 걸려있는 상가에서 도감으로 앉아서

천 년 넘게 돔베고기를 썰고 계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3

나무라고 해서 모두가 나무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나무로 태어났지만 짐승처럼 살아가는 나무가 있다

거대한 곤충처럼 기어가는 나무가 있다

울퉁불퉁한 몸뚱이를 이끌고 천천히 하늘로 기어가는 거미가 있다

살아있는 낭쉐 한 마리 하늘로 올라가 하늘소가 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바라보니 진흙소 한 마리 숲으로 간다

바람소리 한 수레 싣고 허공 속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상가리 천년폭낭을 보니 드디어 나무가 보인다

나와 무(無)가 함께 보인다

나보다 무(無)가 더 잘 보인다


4

길을 찾아 보려고

홀로

밤새 길을 걸었다

아침에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보니

카톡이 하나 와 있다

아, 오늘이

나의 생일이었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구나


5

며칠 전에 겨우 배웠다

천년 폭낭 보고 배웠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지금 처한 그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라

바람 불면 바람을 안고

비가 오면 빗물에 젖고

눈이 오면 눈물을 닦고

봄이 오면 하늘을 보고

여름 오면 그늘을 주고

가을 오면 뿌리로 가고

겨울 오면 하늘로 가라

나도 이제 그렇게 산다


6

강산 시인의 꿈삶글을 쓴다

강산 시인의 꿈과 삶과 글을 쓴다

강산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나는 참 아는 것이 없다

나는 참 세상을 모른다

나는 참 사람을 모른다

나는 참 나를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처음부터 다시 세상을 읽는다

나는 세상을 잘 읽어서

아름다운 세상 하나 만들고 싶다

나는 나를 더 잘 읽어서

나의 세상 하나 꼭 만들고 싶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쓴다

세상을 베끼고 세상을 배운다

사람을 베끼고 사람을 배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먼저 집 정리를 하고 메모를 한다


아, 오늘은 식목일이자 한식날 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나무 심기를 좋아하고

찬 음식을 먹는 가난한 시인이었구나


7

제주도 어느 마을이나

폭낭이 많다

내가 사는 화순에도

폭낭들이 참 많다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폭낭 아래 모여서 지낸다

자세히 보면

상처가 많은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암덩이처럼 울퉁불퉁 하고

오래 전에 잘린 가지들은

속이 텅텅 비어 있다

그렇게 상처 많은 나무들이

새들을 품어 키우고

사람들도 그늘로 덮어주며

모두 모두 함께 잘 자란다

이어도공화국에도 그런 폭낭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8

며칠 전에 보고 온

천년 폭낭이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천년 폭낭 등에서 자라는

돌나물들이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천년 폭낭 등에서 자라는

어린 생명들이

자꾸만 나에게 눈을 껌벅거린다

처음에 보고는

다른 나무가 곁에서 자라나서

함께 합쳐진 연리목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큰 바람에 쓰러질 때

엉겁결에 땅을 짚었던

왼손이었음을 알았다

하늘을 향해야 할 가지가

땅을 향하여

뿌리처럼 박혀 있는

그 나뭇가지가 자꾸만

내 눈에 밟힌다

쓰러진 몸으로도 잘 사는 폭낭 한 그루

큰 바람에 꺾이어 상체를 다 잃고도

다시 싹을 틔워 살아나

자꾸만 자꾸만 나를 부른다

사람들이 받쳐 준 쇠기둥 다 버리고

온전한 자신의 뼈로 지팡이 삼아

다시 새롭게 부활을 꿈꾸는 폭낭 한 그루

자꾸만 자꾸만 내 몸으로 들어온다

천 년을 넘게 살았다는 폭낭 한 그루

자꾸만 나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준다


9

천년폭낭도 처음부터 천 년을 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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