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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01. 2021

두부가 된다는 것은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4






두부가 된다는 것은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4




콩이 두부가 된다는 것은

콩이 고기가 되는 것이다

콩이 두부가 된다는 것은

원이 네모가 되는 것이다

콩이 두부가 된다는 것은

딱딱함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이다


어릴적 내 고향에는 밤마다 두부를 만들어 파는 집이 있었다 따뜻한 두부를 먹기 위해서는 저녁밥을 일찍 먹고 서둘러서 가야만 했다 커다란 솥에 미리 갈아놓은 콩물을 은근히 끓이며 저어주어야만 했다 어둠이 눌러 붙지 않게 하려면 끊임없이 저어주어야만 했다 보통 하루에 두 판 정도의 두부를 만들었고 명절에는 더 많이 만들어 팔곤 하였다 인기가 좋아서 늦게 가는 사람들은 두부는 사지 못하고 비지만 얻어올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때 얻어먹은 순두부와 두부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두부뿐만 아니라 비지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두부를 만든다

이제는 맷돌로 갈지 않고 모터로 콩을 간다

물을 부어가며 콩을 갈아 콩물을 만든다

이왕에 콩물이 있으니 콩국수도 만들어 먹으며 두부를 만든다

두부를 만드는 핵심 기술은 은근과 끈기다

은근한 불에 끈기 있게 저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다

인생이 눌러 붙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저어주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은 솥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콩물을 저어주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금방 지쳐서 방에 들어가 드러눕는다

어떤 사람은 곁에서 노래를 불러준다

어떤 사람은 국수를 끓이고 김치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상을 차리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콩이 콩물이 되고 콩물이 다시 엉겨 붙어 두부가 된다

딱딱한 것들은 부드러워지고

둥근 것들은 제 영혼을 갈아서 다시 네모로 부활한다

순두부로 만족하는 두부도 있지만

다시 물을 쪽 빼고 두부가 되고 싶은 콩들이 많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그렇게 모두가 둥그렇게 태어나서 네모로 간다

둥그런 하늘 아래서 둥그런 무덤을 만들고 떠난다

둥그런 무덤 속에는 언제나 두부처럼 네모난 관이 들어있다

(혹은 네모난 상자 안에 둥그런 항아리 속에서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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