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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Nov 08. 2021

입동

- 이어도 공화국 41





입동




               

오늘은 입동

따뜻한 겨울의 시작이다

내일부터는 추워질 것이라고 한다

나의 올 겨울은

구름이 많을 듯하다

나의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만 같다

발걸음이 무겁다

산책길도 어깨가 무겁다

낙엽들이 떠 있는 연못

물고기들이 파문을 만든다

피라칸타 열매와

먼나무 열매가

붉은 눈빛으로 

서로를 오래도록 본다

벚나무도 팽나무도 잎을 떨군다

솔잎과 솔방울도 떨어져 쌓인다

월대천 징검다리 아래

푸른 이끼들이 몸을 잠시 말린다

저 이끼들은 밀물이 들면

다시 잠수를 할 것이다

물새들도 잠시 발등을 말린다

갈대들도 억새를 바라보며 부푼다

자귀나무는 꼬투리를 달고 종을 친다

오늘은 나의 마음도 다리 밑으로 간다

다리 밑에 낙서들이 많다

다리 기둥들이 벽처럼 서 있으니

캔버스 삼아 그려놓은 그림들이 많다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놓은 그림들

그 그림과 낙서 속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다

젊음을 분출하고 싶은 그래피티를 읽는다

밭들이 하나 둘 비워지고

억새꽃은 내도 알작지 쪽으로 흔들린다

알작지 입구에 캠핑카가 있고

캠핑카 곁 벽 위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여자

벽이라고 해야 할까 방파제라고 해야 할까

나도 저렇게 나란히 앉아 바다를 보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줄 친구가 있을까

저런 친구 한 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언제나 나라는 친구만 있으니 어쩌면,

나는 더 이상 걸어가지 못한다

이호 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을 포기하고

알작지 몽돌에 앉아 바다를 본다

지금도 보수 중인 벽에 등을 기대고 본다

지난 태풍 때 파도에 부서졌던 벽에 나를 기댄다

그동안 자세히 보지 못했던 바위가 나를 본다

개구리의 눈처럼 생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밀물에 서서히 뒤부터 몸을 담그며 나를 보고 있다

아, 다시 한번 바라보니

그 두꺼비 같은 바위가 나를 닮았다

내가 그렇게 서서히 젖으며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내가 그렇게 서서히 젖으며 바닷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등 뒤에는 내가 기댄 벽 위로 난 길을 사람들이 계속 걸어 다니고

갯바위에서는 낚시를 하는 남자들이 열심히 미끼를 던진다

파도는 끊임없이 왔다가 가고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점점 전선을 넓혀온다

밀물은 그렇게 한꺼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왔다가 가면서, 가면서 오면서 그렇게 쳐들어온다

밀물도 썰물도 그렇게 오는 듯하며 가고 가는 듯하며 온다

한 남자가 그런 파도를 사진에 담다가 떠나고

그 자리에 두 젊은 남자가 와서 낚시를 하기 시작한다

친구인 듯 두 사람, 한 친구가 한 친구에게 낚시를 가르친다

지렁이를 바늘에 끼우는 방법부터 가르친다

릴낚시를 던지는 방법을 반복해서 가르친다

나도 저 친구들처럼 나에게 가르쳐주는 친구가 있을까

나도 저 친구들처럼 내가 가르쳐 줄 친구가 있을까

나에게는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밀물은 내가 앉아있는 곳까지 밀물 져 오고야 말았다

가벼워지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월대천의 징검다리는 넘실대고 있었다

바다가 월대천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일광욕을 하던 푸른 이끼들은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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