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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20. 2022

서복 선생의 꿈

― 이어도공화국 7






이어도공화국 7

― 서복 선생의 꿈




내가 살았던 이어도에는 서복 선생님도 함께 살고 계셨다

진시황제처럼 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상머슴이 되셨다

이어도는 하늘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수중에도 있었다

천국에도 있고 연옥에도 있고 지옥에도 있는 공화국이었다

이어도 사람들은 서복 선생님과 서귀포 이야기를 자주 했다

서귀포에서 가져온 불로초 씨앗으로 서천꽃밭도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서복 선생의 꿈

나는 그런 꿈속에서 오십육 년 넘도록 살다가 산책을 나왔다

서복 선생님께서 정방폭포에 쓰셨다는 서불과지(徐市過之)

그 멀고도 아름다운 전설의 길을 따라서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서귀포로 간다




徐市過此(之) 서불과차(지)

서불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인물. 자는 군방(君房), 서불(徐巿) 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제(齊)나라 사람이다. 기원전 219년, 방사로 진시황에게 중용되었고, 이후 명령을 받아 어린 남녀 수천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본기 뿐만 아니라 사기의 '회남형산열전', 진수의 정사 삼국지, 후한서 등에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서복은 중국을 떠나 단주(亶洲) 또는 이주(夷洲)에 도달하였다고 나오는데, 중국에서 이주(夷洲)는 지금의 타이완을, 단주(亶洲)는 일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복은 처음부터 불로초를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아예 진시황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부러 용왕의 명을 빙자하여 어린 남녀 수천 명과 각종 기술자들을 요구하여 데리고 떠났으며, 동쪽 어느 섬에 자기의 왕국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쪽으로 간 이후의 행방에 대한 전설로는 그가 일본, 대만 또는 제주도에 도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서복에 관한 전승은 동아시아 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 즉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전설도 있다.


서복이 다녀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차(徐市過此) 혹은 서불과지(徐巿過之)는 글자가 서귀포시 정방폭포 옆에 새겨져 있다. 이 글자 자체는 2000년대 초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주변 정리 사업을 할 때 새긴 것이며 원래는 폭포 절벽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2011년에 서귀포에서 글자를 찾아보겠다고 폭포 주변을 정밀 탐색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강산 49분


베이스캠프의 오두막에서

소로의 오두막을 생각한다





강산 2시간

             

소로의 월든을 읽는다

소로의 월든, 숲 속의 생활을  읽는다

나는 영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소로를 작은 길로 읽는다

소로 위로 소월이 떠오른다

작은 길 위로 작은 달이 떠오른다 


내가 아는 시인들은 소로를 닮았다

지리산 시인들은 소로의 길을 간다

여수의 시인들은 소로의 길을 간다

서귀포 시인들은 소로의 길을 간다

제주시 시인들은 소로의 길을 간다

광주의 시인들은 소로의 길을 간다

전주의 시인들은 소로의 길을 간다

임실의 시인들은 소로의 길을 간다

정읍의 시인들은 소로의 길을 간다


나는 참 운이 좋아서 좋은 시인들을 

참으로 많이 알고 있다 심지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인도 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인들도 안다

그것뿐이겠는가 세상에나 나는 글쎄

노동문학관 관장님이신 정세훈 시인과

진짜로 현장노동자이신 김해화 시인을 

함께 존경하기까지 한다 시인과 시인을






강산 2017년 7월 19일

                                  

날개도 없이 

하늘에 사는

거미들 교회

혹은

교회 다니는

거미의 대문





슬픔의 깊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글이 있다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글이다

어머님의 유품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챙겨 온 유품이다 아니다

아무리 읽어도 끝나지 않는

너무나 긴 유서다

어머니께서는 아마 이 글을

농약을 마시기 직전에 쓰셨을 것이다

아니다

그 독한 농약이

온몸으로 퍼지고 있는 동안에

자신을 버린

자식들을 떠올리며 쓰셨을 것이다

지금 어머니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어머님을 지금이라도 모셔와야겠다 그리하여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만들어야만 하겠다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나라를

지금부터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만들어야만 하겠다












徐市過此(之) 서불과차(지)


서불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인물. 자는 군방(君房), 서불(徐巿) 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제(齊)나라 사람이다. 기원전 219년, 방사로 진시황에게 중용되었고, 이후 명령을 받아 어린 남녀 수천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가서 불로초를 구하러 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의 탐험은 두번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서복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본기 뿐만 아니라 사기의 '회남형산열전', 진수의 정사 삼국지, 후한서 등에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서복은 중국을 떠나 단주(亶洲) 또는 이주(夷洲)에 도달하였다고 나오는데, 중국에서 이주(夷洲)는 지금의 타이완을, 단주(亶洲)는 일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복은 처음부터 불로초를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아예 진시황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부러 용왕의 명을 빙자하여 어린 남녀 수천 명과 각종 기술자들을 요구하여 데리고 떠났으며, 동쪽 어느 섬에 자기의 왕국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쪽으로 간 이후의 행방에 대한 전설로는 그가 일본, 대만 또는 제주도에 도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서복에 관한 전승은 동아시아 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 즉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전설도 있다.     


 

서불과차 명문


서복이 다녀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차(徐市過此) 혹은 서불과지(徐巿過之)는 글자가 폭포 옆에 새겨져 있다. 이 글자 자체는 2000년대 초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주변 정리 사업을 할 때 새긴 것이며 원래는 폭포 절벽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2011년에 서귀포에서 글자를 찾아보겠다고 폭포 주변을 정밀 탐색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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