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Jul 28. 2022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

― 이어도공화국 19






키다리 아저씨




보고 싶어요 키다리 아저씨

안기고 싶어요 키다리 아저씨

그리운 당신의 가슴에 안겨서

우리들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

너무 오래도록 물속에만 있어서

퉁퉁 부어올랐을 당신의 발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드릴게요

태풍의 길목에서 버티느라

얼마나 뼛속까지 힘드셨나요

당신은 늘 당신의 아픔을

수면 아래로만 꼭꼭 숨겨놓지요

머리는 또 얼마나 아프셨나요

중국 배와 일본 배 뿐이었을까요

암초에 걸려 물에 빠진 영혼들은

또 얼마나 자주 당신을 괴롭혔을까요

생각할수록 나는 당신의

어머니 같은 연인이고 싶어 져요

이제는 제가 당신의

아름다운 숲이 되어 드릴게요

그 긴 허리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이제는 좀 저의 숲으로 깊이 들어와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쉬어보세요

제가 당신의 깊은 안식처가 되어드릴게요

당신의 젖은 가슴을

저의 따뜻한 가슴으로 말려드릴게요




* 키다리 아저씨 :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







::국립해양조사원:: (khoa.go.kr)



이어도는 제주도민의 전설에 나오는 환상의 섬, 피안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섬을 보면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먼 옛날에 이곳에 와서 조업을 하다 파고가 10m 이상이 되면 이 섬이 보였고, 당시 어선으로는 그런 해상 상황에서 무사히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Socotra)호가 처음 발견하여 그 선박의 이름을 따서 국제적으로는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 불리었다. 그리고 1901년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위치(Water Witch)호에 의해 수심 5.4미터의 암초로 알려졌다.

1938년 일본이 해저전선 중계시설과 등대시설을 설치할 목적으로 직경 15미터, 수면 위로 35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이어도의 실재론이 처음 대두된 것은 1951년으로,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서 높은 파도 속에서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이어도 정봉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이어도’ 라고 새긴 동판 표지를 수면 아래 암초에 가라앉히고 돌아왔다. 그 후, 1984년 제주대학교-KBS 파랑도 학술탐사 팀이 암초의 소재를 다시 확인한 바 있으며, 1986년에는 수로국(현 국립해양조사원) 조사선에 의해 암초의 수심이 4.6미터로 측량되었다. 이어도 최초의 구조물은 1987년 해운항만청 에서 설치한 이어도 등부표(선박 항해에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무인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로표지 부표)로써 그 당시 이 사실을 국제적으로 공표하였다.

이어도가 위치한 해역은 우리나라에 훨씬 가까워 앞으로 주변국들과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정 시 중간선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 있게 될 것이다.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




나는 설문대할망이 오기도 전에

깊은 바닷속에서 솟아올랐다


뜨거운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서

바다 위로 가슴을 풀어헤치고 말았다


설문대할망이 바다에 서귀포를 만드니

바다가 높아져서 나를 잠기게 하였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숨비소리 토하니

서귀포 사람들이 가끔 찾아와 놀았다


큰 배 하나가 가끔 나의 잠을 깨웠다

영국 상선 소코트라 증기선이 지나갔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깊이 안아보고 싶었다

큰 배는 나를 그냥 뿌리치고 지나가버렸다


배에 난 상처를 잊으려고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물속에 잠겨있는 나를 피하려고 바다 그림 그렸다


나는 배를 안고 싶은데 배들은 자꾸만 나를 외면하려고

세상의 모든 배들과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기 시작했다





*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가 부딪쳐서 처음 발견하였으며,

  선박의 이름을 따서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은 인공 섬을 만들려고 했다




이어도는 소코트라 배를 안았네

소코트라 배는 아프다고 울었네


이어도는 사랑을 하였는데

사람들은 사고라고 하였네


소코트라 배 바닥에 난 상처를 보고는

영국 해군은 워터위치 측량선을 보냈네


워터위치 측량선은 바다를 샅샅이 뒤져

이어도를 찾아내서 해도에 그려 넣었네


이어도는 그렇게 영국 사람들에게 발각되었네

사람들은 이어도를 소코트라 암초라고 불렀네


해도를 보고 이어도를 피해서 지나가던 배들

이어도는 가슴에 소코트라 이름표를 달고 울었네


어느 날 일본의 배 한 척이 은밀히 다가왔네

이어도 머리 위에 인공 섬을 만들겠다고 하였네


이어도를 겁탈하려던 오가사하라마루호가 무서웠네

등대 모양의 시멘트 모자가 이어도는 너무나 무서웠네


일본의 패전으로 다행히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네

우리들의 이어도에게는 하늘이 도와준 천운이었네






이어도가 하는 말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서귀포를 사랑했다

설문대할망이 서귀포를 낳을 때부터


아니, 사실은 서귀포는 내가 낳은 자식이다

설문대할망은 나를 도와주던 나의 산파였다


출산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출산을 도와주던 설문대할망은

젖병을 소독하러 갔다가 죽솥에 빠져 죽고

지금은 설문대할망 자식들 오백장군의 막내

건장한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내 머리맡에 앉아서 한결같이 돌봐준다

젖은 수건을 내 이마에 자주 얹어주곤 한다


나와 서귀포는 아직도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가끔 서귀포까지 연결된 나의 길을 걸어보곤 한다


나는 너무 오래도록 바닷속에 누워있어서 허리가 아프다

나는 사실, 먼 옛날부터 바다의 여신이기도 하였다


나는 아직도 내가 낳은 자식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서귀포라고 하지만 그 전에는 탐라국이라고 하였다


탐라국 이전에는 주호국이라고도 하고

탐모라국, 섭라, 탁라, 둔라 등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나는 또한 내가 낳은 자식이

많이 아팠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최근에는 몽고군에게 짓밟히고 일본군에게 당하고

심지어 미군과 국군에게도 총을 맞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도 근심이 너무 깊어서 일어나질 못한다

내가 낳은 자식이 평화의 섬으로 바로 설 때 비로소 일어설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낳은 서귀포를 너무나 사랑한다

나는 앞으로도 평화의 섬 서귀포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이어도로, 이어도공화국




내가 주로 산책을 하는 곳은

마라도, 가파도, 송악산, 산방산

월라봉 곁에 있는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다


서귀포 사람들은 아마도

범섬 앞에서 나를 보았던 모양이다

서건도에서 서귀포항 가는 길을

사람들은 이제 이어도로 라고 부른다


내가 물론 가지 않는 서귀포의 길은 없지만

내가 한 번쯤 들렀던 곳들은 저마다 나를 팔고 있다

순한 서귀포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나의 길을

요즘에는 일부러 자주 가기도 한다


또한 그곳에서 나는

범섬에서 법환포구까지

법환포구에서 월드컵경기장까지

경기장에서 고근산까지

고근산에서 서귀포 치유의 숲까지

치유의 숲에서 한라산 백록담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한라산까지 오르기도 한다


서귀포 여기저기 여러 곳을 다녀보아도

나는 역시 내가 자주 다니는 산책길이 참 좋다


마라도에서 가파도까지

가파도에서 송악산까지

송악산에서 산방산까지

산방산에서 월라봉까지

그리고

산방산과 월라봉 사이에 있는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에서의

명상과 휴식이 나는 참으로 황홀하게 좋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평화를 위하여

나를 먼저 읽고

너를 보아야 해


오늘도 사랑은

나를 먼저 읽고

너를 보고 있다


미래의 평화를

오늘의 사랑을

과거의 반성을




* 1951년 4월 미국으로부터 조약 초안을 받은 한국 정부는 최남선의 자문에 따라 파랑도를 한국령에 속하는 섬이라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맺어진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평화조약이다. 미국 주도로 연합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최종 마무리하는 내용을 담았으므로 대일 강화조약 이라고도 불린다. 48개국이 참가하여 서명을 하였다. 미 국무부는 독도와 파랑도를 영토로 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거절했다. 두 섬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는 미 국무부의 요청에, 당시 한표욱 일등 서기관은 "파랑도는 일본해에 위치해 있으며, 대체로 울릉도 인근에 위치하는 것으로 믿는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결국 조약 내용에 독도와 파랑도를 명기하지 못하고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조약안이 결정되었다. 이승만 정부의 안이한 태도와 한표욱 일등 서기관의 무능과 말실수로 인하여 독도와 이어도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게 되었다.






여섬, 여도




여가 섬을 보았네

섬도 여를 보았네


여는 섬이 좋았네

섬도 여가 좋았네


둘은 함께 보았네

둘은 함께 좋았네


둘은 서로 불렀네

둘은 함께 불렀네


이어~

서엄~


둘은 하나 되었네

이어서엄 되었네


이어도오 되었네

이어도가 되었네






파랑도, 파랑서




파랑도에서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파랑서에서는 물결소리가 들린다


너를 생각하면 파도소리가 들린다

파도소리에 숨어 있는 네가 보인다


너는 파도소리의 따뜻한 숨결이다

너의 숨결을 찾아 파도 속을 뒤진다





* 제주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여섬, 여도, 이어도, 이여도, 이허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영국 사람들은 1900년부터 소코트라 암초라고 불렀다. 해방 직후 한국인들은 소코트라 암초의 존재를 몰랐다. 1947년 한국의 신문에 파랑도, 파랑서 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1951년 이승만 정부의 파랑도 탐사가 시작된다.






환대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

아픈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 마음을 잘 안다


이어도는 왜 이상향이 되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환대 때문이다


서귀포 사람들은 모든 것을 환대한다

거지도 환대하고 도둑도 환대한다


거지를 환대하면 거지가 아니라 손님이 되고

도둑을 환대하면 도둑이 아니라 손님이 된다


서귀포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환대를 한다

죽은 사람에게도 산담을 쌓아 집을 지어준다


오늘도 죽음이 손님으로 오니 죽음을 환대하느라

마당에 솥을 걸고 몸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우리들의 평화는 환대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전쟁도 환대를 만나면 연꽃으로 피어난다


서귀포는 먹을 것이 없어서 정낭을 만들었다

바람이라도 먹고살기 위하여 아픔을 걸었다


환대만 사는 나라에서는 미움도 사랑이 되고

환대만 풍년인 곳에서는 총구에도 꽃이 핀다







파랑도에서





파랑도에서 나는 하늘을 본다

파랑도에서 나는 서귀포를 본다

파랑도가 서귀포 문을 열어준다

곁에서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빛난다

물속에 깊이 발을 담그고 서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태양광 패널들

꿈처럼 날개 활짝 편 헬기 착륙장

등대 기둥에 이어도 이름표 달고서

이어도에서 출발한 이어도를 반갑게 맞이한다






또 다른 이어도




이어도와 뿌리가 닿아 있는 이어도

서귀포와 뿌리가 닿아 있는 이어도

소코트라 암초가 되었다가 파랑도가 된

하늘로 비상하는 종합해양과학기지

바다로 웅비하는 종합해양과학기지

동아시아의 중심 세계 평화의 발상지

또 다른 이어도에서 나는 이어도를 본다

또 다른 이어도에서 나는 서귀포를 본다







* 이어도 시인은 이제 서귀포 시인으로 부활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가 혼자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