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가 모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Jan 03. 2023

시인은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

도박과 우울증 10



 

시인은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

도박과 우울증 10



          

자식은 내 안에 살던 부처님께서

우매한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가장 가까이 계시는 현생 부처다

나를 열반에 들게 할 미륵 부처다

     

시란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이고 시인이란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다. 나의 시는 망했고 나의 시인은 병이 들었다. 제프람정 5mg 처방을 받았고 월요일부터 복용을 시작했다. 또한 졸민정 0.5mg도 함께 처방을 받았고 함께 복용을 시작했다. 병든 마음을 치료해야 할 시인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는커녕 시인 자신이 마음의 병이 들었다. 시인의 분신인 아들이 병이 들었다. 반드시 치료하지 않으면 시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이다. 반드시 치료하여야 한다. 반드시 치료에 성공하고 더 아픈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치료하여야만 한다.

     

제프람정 5mg은 신경전달물질을 조정하여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장애 등을 치료하는 약이며, 졸민정 0.5mg은 불면증에 사용되는 약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분신이 지금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 우울증과 불면증은 도박 중독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도박을 하기 위해 빌린 도박 빚 때문에 악화된 것이 분명하다. 나 모르게 2년 전에 1,500만 원을 빌렸고 그동안 현성이 엄마가 매달 20%의 이자를 대신 갚아준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성이는 늘 갚지 못하는 원금에 대하여 큰 부담을 가졌을 것이고 또한 나에게 숨긴 것에 대하여도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울증과 불면증은 더욱 악화되었고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어렵게 용기를 내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벌써 일주일이 지났고 처음으로 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진료를 받은 지 꼭 일주일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나의 방식으로 치료를 어제부터 시작하였다. 지난주 금요일에 첫 진료를 받았고 이번 주 월요일부터 약을 처방받아서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제 현성이는 시의 씨앗 하나를 자신의 마음속에 심었다.

          

현성이가 심어놓은 <갱생>에 약간의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으니 시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갱생 현성

     

나의 갱생이 시작되었다

부모님과 동생이 부처고

화순집이 나의 사찰이다

나는 이제 승려가 되었다          


서천 꽃밭에서 불어 온 바람소리가

처마 끝 풍경소리 이마를 짚어준다     


&     


현성이의 도박과 우울증에 관한 카톡을 받은 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밭에서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되어간다. 그동안 제프람정 5mg과 졸민정 0.5mg을 날마다 복용한 덕분인지, 아니면 밭에서 나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해서인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잘 걷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뛰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첫 처방 일주일 후부터 파마주석산 졸피뎀정 10mg의 반 개가 추가되었다. 이 약은 불면증 치료제인데 추가로 복용한 후로 잠이 더 많아진 듯하다.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는데, 추가한 약은 빼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병원 진료 시 나도 함께 가서 상담을 받고 싶지만 현성이가 싫다고 해서 함께 가지는 못하고 있다. 단도박 센터에도 함께 가서 상담을 받고 싶지만 역시 현성이가 함께 가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이 심해서 그냥 당분간 지켜보기로 하였다. 예전에 더욱 심각했을 때에는 병원에도 함께 가고 센터에도 함께 갔으나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현성이를 믿고 내 방식을 겸하여서 치료해볼 생각이다.

     

나는 그동안 가능한 아이들의 삶에 끼어들지 않고 그냥 지켜보려고만 하였다. 아이들을 믿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방목을 시켰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라. 다만 나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라. 너희들이 사는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니, 너희의 행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살아라. 이런 자유주의자였다. 어쩌면 방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게 된 계기는 나의 유년시절의 경험 때문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켰다. 학교도 가지 말고 일을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 힘으로 학교를 가기 위하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는 너무 가난했고 가난한 고향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누나와 큰형과 작은형은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취직하여 돈을 벌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내 힘으로 꼭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오리, 닭, 토끼, 돼지, 소, 등 짐승들을 길렀고 산토끼와 꿩도 잡아서 팔았다. 내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지게질을 하기 시작했다. 지게질을 하면서 첫사랑도 하였다. 그래서 내 자식들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마음껏 즐기면서 살기를 바랐다.

     

요즘 함께 밭에서 일을 하면서 생각하니, 어쩌면 내 좁은 생각에만 갇혀서 살지나 않았을까 반성을 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를 소망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2~3년 전이 가장 큰 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때는 강제로라도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자살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까지 하였다. 혼자 살고 싶다고 하여 방을 얻어서 혼자 살도록 하여주기도 하였다. 큰 파도가 지나가고 한 2년 정도는 조용히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에 현성이 혼자서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많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잃고 가슴에 묻은 채로 살아갈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겨우 그런 불상사는 아직까지는 겪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잘 견디어준 현성이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도박 중독과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현성이가 자랑스럽다. 현성이는 누구보다도 밝고 맑고 향기로운 아이였다. 틀림없이 현성이는 회복하여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자식은 어쩌면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살아있는 부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을 매 순간 깨닫게 만드는 생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은 수없이 거듭된 우리들의 전생에서 태어나 우리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우리들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와 함께 같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같은 하늘 아래서 서로 마주 보면서 웃어주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로운 부처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들을 깨닫게 하고 열반에 들게 하여 결국 새로운 미래의 등불이 될 미륵부처님이 아난가 생각하게 하는 나날이다. 나와 아들이 함께 일하며 함께 웃고 함께 땀을 흘리는 이어도서천꽃밭에는 요즘 수선화꽃이 만발하고 있다. 이곳은 또한 날씨가 좋아서 수선화꽃과 코스모스꽃이 함께 어울려서 춤추고 노래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아들의 치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더없이 행복한 힐링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박 인생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