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나는 어찌하여 사랑에 중독이 되었고 아들은 어찌하여 도박에 중독이 되었을까. 사랑하면 죽는다는 병, 비후성 심근증 환자인 나는 어찌하여 사랑을 끊을 수 없을까. 도박 빚에 시달리는 아들은 또한 어찌하여 도박을 끊을 수 없을까. 세상의 모든 중독은 진행성 질병이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완치가 어렵다. 나의 사랑 중독도, 나의 그리움 중독도, 당신만을 향하여 달려가는 내 마음의 중독도, 이제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 아들의 도박 중독도, 술 중독도, 담배 중독도 쉽게는 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아들은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오늘도 이렇게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서로 마음 깊은 곳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조심하라고, 각별히 조심하라고, 서로에게 조용히 속삭이면서, 때로는 서로의 뒤를 돌아보면서, 때로는 서로의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조심히 조심히, 천천히 천천히, 서로에게 시나브로 스며들면서 함께 길을 걸어서 간다.
아들이 나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은 지난해 겨울, 12월 15일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 내가 평생 술을 먹지 않기로 작정한 것도 아버지의 심한 주사와 폭력을 동반한 알코올 중독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의 우울증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단순한 우울증이 아니라 도박 중독에 의한 우울증 때문에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도박 중독은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고통을 받는 참으로 무서운 병이다. 도박 중독은 또한 심각한 경제적 파탄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병이다. 도박 중독은 가족 모두의 총체적 환란의 씨앗이 된다. 또한 도박 중독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한다.
중독에는 물질중독과 행위중독이 있다. 도박 중독은 대표적인 행위중독이다. 우리들 뇌에는 해마라는 부분이 있다. 주로 기억과 쾌감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 해마가 건강하게 살아서 우리들 삶의 균형을 잘 잡아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도박 등의 과도한 쾌락에 노출되면 이 해마가 고장이 나서 해머가 되고 만다. 무서운 해머가 되어버린 해마는 우리들의 삶을 철저하게 망가뜨린다. 마약과 도박이 가장 높은 쾌락지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마약과 도박을 경험하게 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인간들의 뇌의 해마는 언어적 기억, 의식적 기억, 특히 쾌감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도박중독은 바로 이 해마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오후 3시 29분
현성이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카톡 문자를 보냈다.
“아빠 제가 할 말이 있는데 말로 할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카톡 남겨요. 몇 년 전에 아빠가 도박 빚 갚아주셨잖아요. 그러고 나서 또 도박을 했었어요. 그래서 빚이 많아져서 대출을 알아보다가 그 보이스 피싱 사건에 연루된 거예요. 그렇게 멍청하게 범죄자까지 되고, 그래서 몇 년 동안은 계좌도 못 만들고 아무 신용거래도 하지 못하게 됐어요. 오히려 저한테는 잘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또 몇 년 동안 대출 이자를 갚고 있는데, 몇 년 동안 모으니 이자만 봐도 어마어마한 돈이 되었어요. 그때 아빠 몰래 그랬다는 게 제 마음에 항상 짐이었어요. 매일매일 악몽 꾸고 사람도 잘 못 만나고요. 이젠, 제가 몇 백번을 죄송하다고 했지만 진심이에요. 우울증도 심하고요. 사실 이제 저한테 즐거운 것도 없어요. 제가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요. 이건 병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몇 년이 지나도, 한 4년 힘든 것 같은데, 끝을 알 수가 없어요. 아빠 입장에서는 제가 한심해 보이겠어요. 정신 상태도 나사가 빠져 보이실 것이고, 말에 두서가 없어도 이해해 주세요”
띄어쓰기를 비롯한 불안정한 문장에서 현성이의 불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현성이가 외출을 잘하지 않고, 밤새도록 컴퓨터만 하고, 낮에는 종일 잠을 자고, 체중 관리가 안 되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1차도 합격하지 못하고…. 기타 등등 아직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남몰래 방황하고 혼자서 자신만의 깊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늪의 깊이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늪의 어둠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한없이 미안했다. 나는 한없이 울고 싶었다.
나는 서둘러서 허겁지겁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한성저축은행에서 21년 1월쯤에 1,000만 원 20% 이자율로 빌렸고, OSB저축은행에서 같은 시기 21년 1월쯤에 500만 원 20% 이자율로 빌려서, 지금까지 이자는 꼬박꼬박 엄마가 갚아주었다는 것이었다. 높은 이자율도 문제지만 돈을 빌린 원인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빌렸다는 사실이었다. 몇 년 전에도 도박을 해서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같은 상황이 또다시 벌어진 것이었다. 도박 중독이 치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었다.(나는 도박에 대하여 너무나 몰랐다. 나는 도박 중독에 대하여 너무나 몰랐다. 나는 어느 게임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게임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도박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도박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그러니까 12월 16일 금요일에 병원으로 갔다. 나와 함께 가자고 하였으나 현성이가 나와는 절대로 함께 갈 수 없다고 해서 현동이를 대신 보냈다. 현동이와 현성이가 함께 중앙병원에 가서, 현성이 상태를 알아본 결과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도박 중독 상담 센터까지 가서 상담을 받고 왔다. 나는 대신 집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확인한 결과 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관대 선생님인 것 같았다. (전문진료분야 : 정신치료, 노인정신의학, 중독정신의학) 현성이에게 간접적으로 전해서 들은 이야기와 진료 분야 및 경력사항을 보니 믿음이 가고 꼭 치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나는 그때까지는, 도박 중독의 가장 심각한 증상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라도 더 늦기 전에 내가 알게 되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성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병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치료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신경정신질환은 환자 자기 자신이 정신질환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고 전문가의 도움을 스스로 요청할 정도라면 충분히 완치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었기 때문에 희망이 보였다.
그때까지 나에게 숨기고 있었던 이유를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숨기는 행위는 치료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고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임을 현성이와 가족들이 알아주면 더욱 고맙겠다. 물론 나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서 나를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숨겨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며 현성이와 우리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도 결코 바른 길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앞으로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날, 병원에 다녀와서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거실 탁자에 있던 유리컵을 방바닥으로 힘껏 던져서 깨뜨리고, 현성이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스스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다른 어떤 식구들보다도 현성이 본인 자신이 가장 놀라고 가장 무서웠을 것이다. 지난날의 끔찍한 악몽을 재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에 휩싸였을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과거의 악몽 속으로 돌아가 있는 자신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 공포감을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지는 일들 때문에 더욱 스스로가 힘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또한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치료가 어려울 것이다. 현성이 자신과 다른 가족들이 함께 힘을 합친다면 이런 어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악마와 천사가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이 둘 중에 누구에게 먹이를 많이 주느냐에 따라 악마가 이길 수도 있고 천사가 이길 수도 있다. 그런데 현성이는 지금 병에 걸려서 천사보다 악마가 힘이 세져 있는 것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천사에게 먹이를 많이 주면 곧 천사가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현성이 혼자만의 힘으로는 마음속에 숨어있는 악마를 물리치기는 어려운 상태에 있다. 악마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몸의 주인을 속이면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성이가 스스로 악마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전문가와 가족들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런 지독한 절망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현성이는 지금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 안에 숨어있는 무서운 악마와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현성이의 첫 메시지 중에서 “이건 병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고백하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자체로 이미 현성이의 병은 치료가 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스스로의 힘으로 분노 조절이 어려운 상태이므로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아직은 잘 모르는 것들이 많고 서툴러서 충돌이 심해질 것이고, 병을 오히려 악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서로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알고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마음부터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글쓰기가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중앙병원 고관대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치료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현성이의 채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가장 좋은 방법을 도출해 내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함께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 당시에 도박 중독 치료에 대하여 너무나 몰라서 채무 변제 해결에만 너무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도박 중독 치료에 있어서 채무 변제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종교를 갖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으니, 현성이가 좋아하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교는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으므로 우선 마음이 편안해지는 명상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당시, 당장 현실적으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 집에서 할 수 있는 명상과 108배가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현성이에게 <귓전명상>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현성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잘만 따라서하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현성이는 바로 당장 채무를 한꺼번에 변제하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내 생각은 좀 달랐다. 현성이가 그나마 2년 가까이 도박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고 싶어도 도박을 할 수 없었던 환경 탓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도 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쉽게 돈을 빌릴 수 없었던 여러 가지 환경 탓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독하게 마음먹고 딱 끊을 수 있다면 희망은 확실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어떤 이유로든 다시 한번 도박을 하게 된다면 우리들에게 희망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들은 영영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