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제주 원도심에서 만나는 봄맞이 축제
제주는 1만 8000 신들의 나라다. 이들이 하늘의 신에게 부름을 받아 하늘에 다녀오는 기간을 가리켜 ‘신구간’이라고 한다. 옛 제주 사람들은 이때에만 집을 옮기고 집을 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부로 이사를 하다간 신들을 노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구간이 끝나고 신들이 제주 섬으로 내려올 때가 되면 무당은 굿으로 신들을 불러들이는 제를 지낸다. 이것이 ‘입춘굿’이다.
과거에는 각 마을의 본향신을 모시는 많은 심방들이 관덕정으로 모였다. 이들 중 가장 춤도 잘 추고 사설도 정확하게 읊는 우두머리 심방이 ‘도황수’인데 이날 뽑았다 한다. 심방이 신들의 강림을 청하며 격렬한 춤사위를 벌이면 신들은 알아듣고서 그가 연 문을 따라 제주 바람과 함께 온다.
때문에 입춘굿은 진정한 ‘대동제’였다. 탐라국 시절에는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조선시대에는 제주목의 최고 관리인 목사에서 서민들까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위 관리직부터 서민 계층까지 한데 어울려 놀았다. 심지어는 벌을 받거나 드물게 아주 큰 상을 받을 때나 드나들 수 있던 목관아도 이때에는 문을 열어 서민들이 마음껏 드나들 수 있도록 할 정도였다. 목사가 업무를 보던 연희각도 살펴볼 수 있었다.
탐라국입춘굿은 먼 옛날 탐라시대부터 이어지는 역사를 계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841년 이원조가 쓴 《탐라록》을 비롯해 여러 문헌에는 탐라국의 왕이 친경적전(親耕籍田, 왕이 몸소 농사를 지으며 농업을 장려하던 풍속)과 더불어 풍년을 기원하며 의식을 치렀다고 밝힌다.
일제 치하에 제주인들의 정신적 결속력을 해체시키기 위해 중단됐다가 1999년에 ‘탐라국 입춘 굿놀이’로 복원됐다. 굿에 이미 ‘놀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는 데서 꼬리표를 떼고 ‘탐라국입춘굿’이라 이름을 바꾸고 오늘날까지 복원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축제를 주관하는 제주민예총이 탐라국입춘굿을 “명맥이 끊긴 전통사회의 입춘굿을 오늘에 맞게 부활시킨 새로운 축제”라고 소개할 만한 지난 역사가 있는 셈이다.
2023 계묘년 탐라국입춘굿 '성안이 들썩, 관덕정 꽃마중'
□ 기간 : 2023. 1. 20(금) ~ 2. 4(토)
- 입춘맞이 : 2023. 1. 20(금) ~ 2. 1(수)
- 거리굿 : 2023. 2. 2(목)
- 열림굿 : 2023. 2. 3(금)
- 입춘굿 : 2023. 2. 4(토)
□ 장소 : 제주시 일원, 관덕정, 제주목관아
□ 주최/주관 : 제주시 / (사)제주민예총
□ 주요프로그램
- 입춘맞이(1. 20(금) ~ 2. 1(수))
* 온라인 : 소원지쓰기, 굿청열명올림, 굿청기원차롱, 입춘등달기
* 대면 : 입춘교실, 12달 복항아리 소원빌기
- 거리굿(2. 2(목)) : 춘경문굿, 새봄맞이 마을거리굿, 도성삼문거리굿, 춘등걸기
- 열림굿(2. 3(금)) : 입춘성안기행, 세경제, 낭쉐코사, 입춘휘호, 사리살성, 주젱이허멩이 시연, 칠성비념(메밀떡나눔), 제주굿창작한마당
- 입춘굿(2. 4(토)): 오리정비념, 초감제, 새철새날을노래하다, 세경놀이, 낭쉐몰이(입춘덕담), 입춘탈굿놀이, 허멩이답도리, 마누라배송, 막푸다시, 도진
* 제주도의 1년 시작은 탐라국 입춘굿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입춘 전에 있는 신구간이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입춘굿을 시작으로 대보름 들불축제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삼일절 발포사건이라고 말하는사삼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다. 올해는 그나마 비대면 생중계 방식으로 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탐라국 입춘굿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낭쉐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나무로 만든 소인데 해마다 다른 모습의 소가 만들어진다. 올해는 과연 어떤 소가 만들어질지 기대가 된다. 이종형 제주민예총 이사장님의 페이스북 글과 작년에 썼던 나의 글과 사진을 올린다.
이종형 제주민예총 이사장
새해 새봄의 큰 대문을 여는 '탐라국 입춘굿'이 2월 2일~ 3일 이틀간
제주목 관아 무대에서 비대면 생중계 방식으로 열립니다.
무병장수 하시라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입춘국수 한 그릇 나누는
만남의 시간도 올해는 쉬어갈 수밖에 없고
많은 시민들을 모시지 못하는 아쉬움은 크지만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기원하는 마음까지 담아
신축년 새해의 풍년과 풍어 그리고 무사안녕을 1만 8천 신들에게 소원하겠습니다.
제주에서도 거의 처음 시연하는 '마누라 배송굿'은 전염병과 나쁜 기운을 모두 몰아내려는 간절함을 담은 옛사람들의 신앙이자 전통문화였습니다.
봄은 희망의 또 다른 말,
우리가 희망이 되고
우리가 봄이 되는 날
탐라국 입춘굿에 뜨거운 응원 부탁드립니다.
by 강산 Feb 02. 202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출몰하여
세상을 바꾸어가고 있다
박쥐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하고
뱀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중국 우한에서부터 세상이 바뀐다
내가 좋아하는 ‘탐라국입춘굿’이 올해는 전면 취소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정월대보름축제도 취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봄이 되는 날’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섭다. 우한 폐렴이 무섭다. 역시, 작은 것이 무섭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많은 사람들이 더 허탈하고 더욱 아쉬울 것이다. 나는 올해의 낭쉐를 볼 수 없어서 가장 아쉽다. 나무가 소로 부활하는 모습이 나는 참 좋다. 그런 나무소가 아스팔트를 갈아엎는 것도 나는 참 좋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난날의 ‘탐라국입춘굿’을 뒤돌아본다.
심우도 / 강산
심우도(尋牛圖) 속으로 걸어간다 나의 흰 소는 보이지 않고 검은 소들이 있다
소들이 소나무 아래 모여 있다 멍에도 꼬뚜레도 없다 숲에서 뜯어먹은 풀을 되새김질하며 서로의 눈빛을 본다 서로의 등을 핥아주는 소도 있고 꼬리 죽비로 엉덩이를 치는 소도 있다 새로 발견한 풀밭을 알려주는지 귓속말을 속삭이는 소도 있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소도 있다
나도 소를 길렀다 나는 늘 길을 들이려고 했다 내가 기르는 소는 코뚜레를 하였고 멍에를 하고 쟁기질을 해야 했다 갱본에서 쉬는 동안에도 말뚝에 박혀 있어야 했다 나의 소는 소나무 그늘에서 쉬어보지 못했다
나는 흰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 생각만 하였다 소와 함께 놀아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소를 업어 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소들이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소는 걸어가면서도 텅텅텅 똥을 잘 싼다 풀을 먹고 자란 소들이 풀에게 밥을 준다 나도 소나무 그늘에 앉아 바다를 보다가 소들이 들어간 숲으로 따라 들어간다
숲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찢는다 소나무재선충 때문이라고 한다 솔수염하늘소 때문이라고 한다 매개충을 없애려면 기미가 보이는 소나무를 싹쓸이해야 한다고 한다 포클레인이 탱크처럼 숲으로 진군한다
소나무 밑동을 잘라 쓰러뜨리고 토막 낸다 약품처리 하고 덮어서 무덤을 만든다 숲은 온통 소나무 무덤이 된다 그해 겨울의 숲처럼,
솔방울을 줍고 삭정이를 부러뜨리고 도끼로 고자배기를 하고 솔잎까지 갈퀴로 긁어 와서 땔감으로 쓰고 생솔가지까지 잘라 와도 잘 버티던 소나무,
겨우 살아남은 소나무들도 은밀하게 잘린다 소나무재선충 때문이 아니다 소나무가 없어져야 땅값이 오른다며 소나무를 죽이고 있다 이제는 숲에 소나무가 없다 소들이 함께 모여서 쉴 곳이 없다 떠나간 엄마소 이야기를 할 곳도 없다 가시덤불 속에서 가시에 찔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소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렵게 새로 돋아나는 소나무 새싹에 콧김을 불어넣는다
나는 심우도(尋牛圖) 밖으로 나와 심우도(心牛圖)를 그린다
탐라국입춘굿 / 강산
칼바람 추위에 납작 엎드려 있던 쪽파들이
팔을 쭉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눈송이인지 수선화 꽃잎인지 매화 꽃잎인지
새하얀 것들이
입춘 하늘을 온통 흔들어대고 있다
탐라국(耽羅國) 신들이 까마귀 궉새들 앞세우고
한라산 구상나무 숲으로 내려온다
동자복 미륵과 서자복 미륵이
용두암에서 헛기침을 크게 한다
신구간(新舊間)에 하늘 다녀온 탐라국 신들이
관덕정(觀德亭) 앞으로 내려온다
일만 팔천 신들이 시내까지 내려와 둘러보고 있다
제주목관아지(濟州牧官衙址)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신들과 사람들이 깃발 앞세우고 관덕정으로 몰려오고 있다
자청비가 앞에서 낭쉐를 끌고 온다
새로운 씨앗 뿌리려고 새 씨앗 가지고 자청비가 온다
바람신(風神) 영등할망도 함께 온다
어지러운 세상 한 번 뒤엎으려고 서둘러서 온다
바다도 뒤집고 하늘도 뒤집어 세상 한 번 바꾸려고 온다
천지왕 허락받아 작심하고 불어온다
바다에도 뿌리고 땅에도 뿌리고 하늘에도 뿌리고
온 세상에 알토란 같은 씨를 뿌리려고 풍요신이 온다
천지왕의 두 아들 대별왕과 소별왕이 함께 온다
해도 둘 달도 둘 혼돈의 세상
거대한 활로 하나씩 쏘아 없애고 송피가루 뿌려
천지 질서를 바로 잡았던 두 신이
큰 활 둘러메고 보무도 당당하게 씩씩하게 온다
자청비를 따라 문도령도 오고 정이 없는 정수남이도 온다
풍물패와 난장패와 걸궁패와 함께
세경신 세 명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탐라국을 손수 만든 설문대할망이 온다
옥황상제의 호기심 많은 셋째 딸이 온다
자식들 모두 불러 모아 오백장군들과 함께 온다
깃발에 쓰인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선명하다
흔들릴 때마다 부자천하지대본(富者天下之大本)으로 펄럭인다
흔들릴 때마다 권력자천하지대본(權力者天下之大本)처럼 펄럭인다
북 치고 꽹과리 치고 나팔까지 불어대며 춤추며 몰려온다
신은 사람 같고 사람은 신 같이 파도치며 몰려온다
등불처럼 몰려온다 등댓불처럼 몰려온다
환하게 불 밝히며 불빛처럼 몰려온다
신명 나는 굿판에서 낭쉐 한 마리
백비 속으로 걸어서 들어간다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 골 지나 백비 속으로 들어간다
그 어둠 속에서 연못을 파기 시작한다
연꽃을 피우기 위해 뼈를 뽑아 뼈를 깎아
뼈의 송곳으로 연못을 파기 시작한다
뼈의 칼로 비문을 새기 듯
깊은 어둠 속에 연못을 파기 시작한다
관덕정(觀德亭) 앞 십자가에 매달려 지금껏 지켜보던 이덕구
신들을 따라 제주목관아지로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들을 따라 탐라국 왕궁으로 입궐하지 않는다
주머니에 꽂혀있던 빛나는 숟가락 던져 버리고
『한라산』시집 한 권 펼쳐 들고 강정으로 달려간다
온통 하늘을 뒤흔들던 꽃잎들
백록담의 백록이 뛰어오르고 오름마다 꽃들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