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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Nov 20. 2018

[브런치 무비 패스] 영주

#42. movie sketch


진심을 전하기 위해선



영화는 사실상 자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입니다. 내용이 중요하지 껍데기가 뭐가 중요해라고 말들은 하지만 비주얼이 관객의 마음을 여는데 큰 영향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 영화는 눈속임의 예술이고 결국은 커다란 스크린에 무엇을 담았느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투자를 받은 쪽이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오로지 이야기입니다. 상업영화의 틀에 박힌 공식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조금 어색하고 투박해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영주>는 용서라는 흔한 소재에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영주>



영주는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됩니다. 사고는 다른 운전자의 과실이었습니다. 영주는 부모님을 죽게 만든 가해자들을 원망하죠. 전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의 심정이 되어보곤 합니다. 햄릿처럼 부모님의 원수! 복수하고 말겠다! 그 뜨거운 감정이 실제로 며칠이나 갈까 상상해보죠.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당장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내가 있는데 떠나보낸 사람을 위한 복수가 더 중요하게 느껴질까 싶어요. 영화는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영주의 상황. 매일 기댈 곳 없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야 하는 그녀에게 가해자들의 작은 친절은 커다란 힘이 됩니다.


 

<영주>



내용이 진지하고 무겁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주제를 택했으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법이죠. <영주>는 복잡한 이야기를 선택했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의 문제점은 초반에 나타났습니다. 동화에나 나올법한 전형적인 악덕 친척의 등장. 현실에도 악역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소름 끼치도록 뻔한 모습을 하고 있죠. 하지만 이건 영화입니다. 영주는 왜 부모 없이 힘들게 사는 와중에 사고만 치는 동생에게 화 한번 내지 않는 것일까요. 단순히 책임감이 강한 누나이기 때문이다 라는 것으로는 영화 속의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인물들에 이야기를 줄 것인가 아니면 주인공을 위한 기능적 캐릭터로만 사용할 것인가. 영화는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애매하게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행동의 동기가 약할 뿐 아니라 주인공에게 집중하는 것마저 방해합니다.   


 

<영주>



가장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은 가해자 부부에 의지하게 되는 영주의 모습입니다. 그 교통사고는 양쪽 가정에 불행을 불러왔습니다. 가해자 부부에게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운전자였던 상문은 매해 사고가 났던 때가 오면 누군지도 모르는 남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 또한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관객마저 그것을 느끼려면 단순히 주인공의 도덕성이 몹시 높다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주> 속 인물들은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고 연기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영화 속의 빈약한 이야기로는 인물들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남동생은 영주 못지않게 복잡한 감정을 지닌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맥락 없이 트러블 메이커로만 사용됩니다. 매년 피해자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했다던 부부는 영주의 커밍아웃에 그 모든 상황을 없었던 일로 돌리려 합니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일들도 막상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인물들의 행동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느껴집니다. 


 

<영주>



영주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쉽지 않은 소재입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도 하고요. 타인의 공감을 얻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표현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단순한 경험의 나열로만 풀어놓는다면 관객의 공감은 얻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영주>는 저예산에 기대하는 것 이상의 완성도를 냈지만 이야기는 학생영화 수준에 머무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 덕분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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