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movie sketch
역사를
가깝게 바라보는 방법
<우리 가족:라멘 샵>은 <동경 표류일기>를 감독한 싱가포르 에릭 쿠 감독의 작품입니다. 싱가포르 영화이지만 일본인 주연에 일본어를 메인 언어로 사용하는 영화이고 일본음식인 라멘을 영화의 중심 소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일본 영화의 느낌이 많이 납니다. 예상한 그대로의 무난한 영화이지만 미약하게나마 일본 전쟁에 대한 죄책감이 드러난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우리 가족:라멘 샵>은 단순하고 익숙한 이야기 방식을 사용하지만 국적이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란 주인공이 충분히 시간을 들여 만든 음식처럼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화려한 싱가포르 요리가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고 음식 영화답게 고요히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는 묘한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가정문제는 세대 간의 갈등이자 역사문제입니다. 전쟁 때 일본인에게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일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는 딸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갈등이 있던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에서 한 세대 떨어져 있는 주인공 손자는 적극적으로 가족 간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가족:라멘 샵>의 특이점이었던 역사의식은 희미하게 묻히고 맙니다. 일본이 늘 주장해왔던 무고한 개인이라는 프레임으로 어영부영 끝을 내죠. 어찌 보면 영화에서 이루어낸 화해는 철저하게 일본인의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인 주인공이 타문화를 배워나가며 자신의 뿌리와 문제점을 발견해 나가니까요. <우리 가족:라멘 샵>은 아직도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로 그리려 하는 일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땐 차이점이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원망에 대한 이유는 잘 그려지지 않고 개인 간의 화해로 끝을 맺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남기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일등공신은 주연인 사이토 타쿠미입니다. 구구절절한 자신의 사연을 읊거나 음식 설명에 대한 리액션이 반이상인 애매한 역할 속에서 일상에 있을법한 자연스러운 연기로 이야기에 중심을 잡아줍니다. 심지어 조연들의 다소 튀는 연기들도 자연스럽게 받아 그들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일본의 영원한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가 주인공을 돕는 블로거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우리 가족:라멘 샵>의 작은 첫걸음을 시작으로 일본 전쟁을 제대로 돌아보는 영화가 일본인 감독을 통해 나오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