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movie sketch
모두가 공감할
사이코 러브스토리
<펀치 드렁크 러브>는 현시대의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불리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새롭게 그려낸 러브 스토리입니다. 완벽한 남녀가 만나 멋진 말만 주고받다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익숙한 관객에게 평범하다못해 이상한 사람들의 로맨스를 보여줍니다. 사실 러브스토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재생산하는 장르입니다. 현실 로맨스에서 필요한 인내심, 희생은 이야기하지 않고 가장 좋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고 잘 팔리는 이야기이죠. 제목만큼 색다른 로맨스인 <펀치 드렁크 러브>는 괜찮은 점보다 이상한 부분이 훨씬 많은 주인공 베리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펀치 드렁크'는 복싱선수들처럼 뇌에 충격과 손상을 많이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일종의 뇌기능 장애로 혼수상태, 정신불안, 기억상실 등을 유발할 수 있죠. 유능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권투선수들의 후유증과 사랑에 빠져 사고가 마비된 남자의 닮은 점을 발견하고 영화 전체를 누군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으로 그려냅니다. 빠른 카메라 이동과 갑작스러운 굉음, 동시다발적인 사건과 의미 없이 쏟아지는 대사들은 주인공 배리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대변합니다.
베리는 이성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멍하고 얼빠진 얼굴이지만 일곱 누나들의 연이은 전화 공격과 시시때때로 들추어내는 과거사+애 취급에도 화내는 일 없이 잘 참아냅니다. 하지만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을 때는 창을 깨부수거나 화장실을 망가트리며 분노조절 증상을 드러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죠. 그는 자기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해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베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레나를 향한 반응입니다. 갑자기 도로에 떨어진 오르간과 예고 없이 나타난 레나. 베리는 레나가 오르간에 대해 물었기 때문에 쓰지도 않을 고물단지를 회사 안으로 들입니다. 또 그녀가 하와이로 출장을 간다고 하자 관심도 없던 여행을 계획하죠. 어른스러운 레나는 베리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합니다. 당황한 베리는 말로는 바빠서 안될 거 같다고 하지만, 사무실 바깥의 한쪽 벽이 무너져내리는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다가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베리와 달리 레나는 솔직하고 많이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로맨스 영화의 어떤 여주인공이 이렇게 희번덕거리면서 등장하던가요. 이혼녀에 연상으로 추정되는 레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베리를 면박 주지 않고 길 바로 앞까지 몰래 끌어주는 사람입니다. 또 남들이 사이코처럼 느끼는 베리의 모습 너머 순수함을 발견하는 심미안도 지니고 있죠. 그녀는 베리가 하는 무수한 실수에 화내지 않고 그가 제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펀치 드렁크 러브>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파란색과 핑크색이 어지럽게 섞이는 장면은 하와이에서 베리와 레나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에도 사용됩니다. 점차 경계가 사라지는 색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표현했어요. 둘의 만남은 새로운 색을 만들며 내며 서로의 영역을 확장시킵니다. 그 정신없고 어지러운 순간 벽이 허물어지면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기괴하게 빚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입니다. 너의 눈알을 파서 먹고 싶다고 고백하는 사이코들의 러브스토리지만, 각자의 문제를 지닌 남녀가 사랑으로 서로에게 가장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낭만적인 이야기거든요. 이 과정은 어색하고 기이하지만 상당히 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