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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l 17. 2019

기생충

#51. movie sketch


우리는 같은 존재인가



봉준호 감독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위해 꼼꼼하게 연출하기로 유명합니다.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제작한 그의 최근작 <설국열차>와 <옥자>도 봉테일에 걸맞은 영화긴 했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한 <살인의 추억>과 <괴물>, <마더>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뭔가 부족한 두 작품을 보며 글로벌 패치가 아직 진행 중이다 싶었죠. 그리고 한동안 감감무소식이던 봉 감독의 신작은 한국에서 개봉하기도 전에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9시 뉴스로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싶게 조용히 커다란 성취를 이루어낸 봉준호 감독. 그의 수상은 놀랍지만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굳이 칸영화제가 타이틀을 붙여주지 않아도 봉준호의 영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성의 있고 유능한 연출가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기생충>은 한국영화 오프닝에 칸 로고가 등장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영화이자, 관객의 감정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생동감 넘치는 작품입니다. 빈부격차와 계급을 소재로 하지만 무게 잡지 않고, 롤러코스터처럼 극의 분위기를 끊임없이 바꿔가며 관객을 이야기에 몰입시킵니다.





봉준호 감독은 언제나 한국의 정서를 잊지 않는 연출가입니다. 사람 사는   똑같고 <기생충>  세계적으로 공감 가능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참으로 시의적절하는구나'라는 대사의 절묘함을 100% 이해할  있는 한국 관객뿐입니다. 영화의 중심 소재인 반지하 역시 한국에만 있는 문화죠. (외국에서 상영하기 위해 자막을 만들  반지하라는 단어가 없어서 번역에 애를 먹었다고 하더군요.) 빛이 반만 드는 , 지상이 보이는 , 지하보다는 나은 . 하지만 지하처럼 완벽하게 가려지지 않아 존재를 드러내는 . <기생충>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 했던 무언가를 드러내는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가족이 등장합니다. 지상의 박사장 가족, 반지하에 사는 기택의 가족 그리고 지하의 문광 부부까지. 신기하게도 지하로 내려갈수록 남성의 권위는 떨어지고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연교는 기의 사소한 실수가 박사장의 귀에 들어갈까 봐 쩔쩔매지만 충숙은 기택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제압하고 지하의 문광은 남편의 생사마저 결정할  있는 사람입니다. 가정 내의 권력은 경제력과 정확히 비례합니다.  초반에 기우의 친구(박서준) 기택의 가정에 행운을 빌며 산수 경석을 선물하죠. 산수 경석은 '산수 경치의 어떤 양상이 상징적으로 축소되어 나타나 있는 돌'입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선언을  겁니다.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보여줄 거라는  말이죠. 얼핏 보면 <기생충>은 각자 사연이 있는 인물들의 얽히고설키는 상황을 공평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영화에는 명확한 입장이 있습니다. 현재 사회에는 문제가 있다.  계급의 차이는 단순히 노력과 기회의 문제인가. 부유하고 나이스  그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일까?



 


영화 초반 영 앤 심플한 연교의 등장으로 부유층은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미국 캠프에서 인디언 정신을 가르친다며 자랑하고, 사람을 못 믿는다면서 기우에게 속아 기태 가족을 전부 고용하죠. 그녀를 가장 멍청이 취급하는 제시카쌤 앞에서는 눈물까지 흘리며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빈틈 있는 연교는 사랑스럽습니다. 영화의 대사처럼 있는 집 애들이 더 착하고 구김이 없어 보이죠. 하지만 그 집의 진짜 주인 박사장이 등장하면 얘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의심하며 상대방에게 선을 긋는 사람입니다. 평상시엔 젠틀하지만 아주 조금만 선을 넘어도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가 정색하는 순간은 주로 기택이 그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갈 때인데, '그래도 사모님을 사랑하시죠?'라던가 '주말인데 애들을 위해 애쓰십니다.'같이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하려 하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죠.



 


 박사장은 기택 가족의 냄새가 거슬린다고 합니다. 냄새는 존재를 드러냅니다. 냄새를 거부하는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기정의 말처럼 반지하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서  냄새가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박사장에게 기택 가족은  바깥의 사람입니다. 그는 그들과 동류가 되기를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장 본능적인 순간(베드신)에는 운전기사가 흘린 더러운 팬티나 마약을 찾으며 같은 인간임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죠.





<기생충>은 한 장르의 속성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입체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의문의 가정부 문광의 등장부터 기택 가족이 저택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장르 혼종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지하실의 비밀이 드러나고(스릴러) 발을 헛디딘 기택 가족은 문광에게 약점을 잡혀 전세가 역전됩니다(코미디). 때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박사장 가족에 집안은 난리가 나고(액션 활극) 문광이 계단에 부딪혀 처음으로 피가 등장(누아르)하며 영화는 불길한 결말을 암시하죠.



 


박사장 집에서 도망쳐 나온 기택 가족은 끊임없이 내려갑니다. 박사장 네로 가는 길은 깨끗한 오르막길이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어지러울 정도로 전깃줄이 빼곡히 뒤엉킨 가파른 내리막 계단이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을 긴 하강의 이미지로 보여준 건 박사장과 기택 가족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리고 저택이 가장 어울렸던 기정은 말하죠. '민혁 오빠한테는 이런 일이 없지!!!' 물난리까지 겹쳐 기택 가족의 비참함은 배가 됩니다. 그리고 그 비극의 바로 다음 장면은 환한 햇살 아래 화장품 C.F의 한 장면처럼 화사하게 등장하는 연교의 밝은 얼굴입니다.





<기생충>에는 세 가지 삶의 태도가 나옵니다.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존재를 무시하는 사람,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 그리고 철저하게 순응하는 사람. 매일 먹이고 재워주는 박 사장님께 리스펙을 외치던 지하실 남자는 궁지에 몰리자 반격을 가합니다. 평생을 계획 없이 살아온 기택은 참혹한 현장에서 마주한 박사장의 맨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칼을 내리꽂죠.





저는 기택이 마지막에 내리꽂은 칼이 이 영화의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택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는가.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인간의 존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지하에 사는 남자가 매일같이 박사장을 향해 보내던 모스부호는 재난 같은 긴급구조 상황에 사용하는 신호입니다. 반지하에 살던 기택은 지하로 내려가버렸죠.


저택을 사서 지상으로 아버지를 올려주겠다는 기우의 계획이 슬프게 느껴지는 건 그 일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우리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기생충>은 지금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같은 존재인가. 같아질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관련 인터뷰에서 여러 번 배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요. 모든 배우가 영화에 크게 기여하지만 <기생충> 배우들을 향한 감독의 찬사는 괜한 말이 아닌 거 같습니다. 훌륭한 배우들이 모여 이룬 팀플레이는 <기생충>을 빛나게 한 일등 공신이니까요. 개봉 후 <기생충>은 천만을 기록하며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고 각종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습니다. 아카데미 상까지 수상했을 땐 정말 놀랐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모든 면에서 충분히 결과를 누릴만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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