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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Sep 17. 2019

바이스

#54. movie sketch


가짜 같은 진짜 이야기



<빅쇼트>로 홈런을 날리며 정치개그 전문 감독이 되어버린 아담 맥케인. 다큐에 가까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그의 연출 스타일은 재미와 의미 사이에서 한 가지만 얻어야 했던 관객에게 적절한 중간지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전작  <빅쇼트>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설명하기 위해 마고로비의 목욕 장면을 넣은 그는 대중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감독입니다. 사람들이 관심 없어하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인 코드를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바이스>는 부시를 허수아비로 앉히고 절대 권력을 누렸던 부통령 딕 체니에 대한 사실과 소문을 (영화 초반의 고백대로) 졸라 힘들게 모아 자세히 들여다보는 한 인물에 대한 드라마입니다.



<바이스>



  <바이스>는 충분히 검증된 배우들(크리스천 베일, 스티븐 카렐, 에이미 아담스, 알리슨 필, 조지 부시와 똑 닮은 샘 록웰까지)의 열연으로 보수 정치인의 생태계를 리얼하게 재현합니다. 스티븐 카렐이 연기하는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즈펠트와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하는 딕 체니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무언가를 실수하고 사과하는 딕 체니에게 도널드 럼즈펠트는 말합니다. "You owe me"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철학 아래 철저한 이익 공동체 마인드로 한 배를 탄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도 원칙을 잃지 않았습니다. '내편에', '내 가족'에 '나'에게 경제적으로 이롭게. 이 습성을 이해하고 나면 무척이나 가정적이었던 딕 체니의 모습은 의외가 아니라 정확히 그의 철학에 걸맞은 행동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레즈비언 딸을 향한 배려도 끝내는 더 큰 이익 앞에 꺾이고 말죠. 그들에게는 언제나 일관된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는 정치적 용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특정 성향을 지닌 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수는 성실합니다.



<바이스>

 


놀랍게도 부통령 딕 체니가 내린 지극히 개인적인 국가 결정은 그의 인생 말년에 시작되었습니다. 60까지의 다사다난한 삶도 정치인생에서는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부통령이 된 딕 체니는 자신의 결정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권력을 100프로 활용했고 마지막까지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그의 결정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지니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관객이 어떤 의문을 품을 수 있도록 사실을 차례로 나열합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의견이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중반부에 등장하는 가짜 엔딩 크레디트입니다. 이쯤에서 체니의 정치인생이 끝났더라면 어땠을까 가정하며 안타까워하는 감독의 심경이 느껴집니다.


다시 이어진 영화는 동화 속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의 뒷이야기처럼 알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들려줍니다. 진실은 쓰고 보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지런했습니다. 차라리 게을렀으면 좋았을 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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