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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n 02. 2018

은교 : 모든 게 외로워서 하는 일

#04. movie sketch


소름 끼치게 쓸쓸한
시의 순간



<은교>는 세 인물의 세 가지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은교와 이적요, 이적요와 서지우, 서지우와 은교. 나라는 사람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리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새로운 나로 변하니까요. 은교를 만날 때 이적요는 이전과 사뭇 달랐지만, 그의 생을 통틀어 가장 진실한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는 은교를 젊은 마음으로 만나고, 나이가 든 몸으로 친구가 되어, 나이 든 마음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은교>는 슬픈 작품이었습니다. 은교와 70세 이적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이루어질 리 없는 사랑'이니까요.



<은교>



박해일이 연기하는 이적요는 때로는 우스꽝스러웠습니다. 분장으로는 감출 수 없는 박해일의 젊음이 드러나 불편하기도 했고 은교를 향한 노인의 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때면 주책맞아 보였습니다. 아마 <은교>는 박해일의 필모그래피 중 최악의 연기가 될 작품일 테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거 같습니다. 70대 노인의 열일곱을 향한 사랑이 어떻게 우습지 않을 수 있겠어요. 외롭고 고립된 70세 노인의 사랑은 숭고하지만 일방적이고 집요합니다. 만약 이적요가 가족, 친구들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렇게 감동적으로 한 소녀를 사랑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사랑은 전해집니다. 은교 대신 청소해 주는 이적요의 행동에서, 시를 읽어주는 그의 목소리에서, 잠긴 창문을 여는 손 끝에서
 감추려 해도 드러나버립니다. 어린 은교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자기를 사랑해 준 사람의 상처를 느꼈기에 슬펐을 겁니다. 그리고 진짜 사랑은 사랑을 주던 사람의 슬픈 눈을 보는 그 순간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은교>



저는 은교도 이적요를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녀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마음을 나눈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요「은교」를 읽은 은교는 더 이상 할아버지의 집에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김이 서린 창문 사이로 외로운 노인과 외로운 소녀가 만나는 장면은 시적이면서 소름 돋게 쓸쓸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불가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불가능을 알고 시작하는 일의 슬픔. 서지우는 글 쓰기에
 재능이 없고, 이적요는 다시 젊어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알지만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슬퍼서 모르는 척하기로 했던 거 같습니다.



<은교>



원하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게 전혀 다르기에 젊음이 주어진 서지우는 원하는 걸 뺏어냅니다. 이적요가 꿈에나 그리는 은교와 관계를 갖고 작품마저 훔쳐가죠. 그러나 그마저도 서지우가 진정으로 바라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원한 건 스스로 아름다운 글을 쓰는 거였으니까요.

청춘이 특별히 받은 상이 아니고 늙는 것 또한 죄가 아니듯 젊은 그들의 욕심 역시 나이 든 사람의 간절함 못지않았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아니 늙어간다는 건 슬픈 일이겠죠. 아무리 유쾌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해도 외로운 일 일 거 같습니다. 외로우면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루지 못하는 꿈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전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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