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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n 03. 2018

돈의 맛 : 사랑하는 나의 영화

#05. movie sketch


고발과 공감


영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첫 번째 이유는 좋아하는 영화는 변호하고 싫어하는 영화는 궁시렁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돈의 맛>은 궁시렁거릴 요소가 많은 영화입니다. 다음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영화의 특징들인데 <돈의 맛>이 몇 개나 포함되는지 헤아려봅시다.

1. 관념적인 이야기를 대사로 줄줄이 쏟아붓는다. 
2. 화려한 화면빨을 자랑하지만 이야기와 연결되
지 않는다.  
3. 관객이 감정이입하기 전에 
등장인물이 자기감정을 터트린다. 
4. 이야기를 거두지 않고 뿌리기만 한다. 

가장 중요한 

5. 감독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하녀>에 이어 목적이 뚜렷한 영화였습니다. 상류층의 삶을 보여주리라. <하녀>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보여주는 방법이 너무 낡고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단한 사회적 소명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는 유치합니다. 용기 있는 고발도 의미 있는 선택이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설득력 없는 이야기로 현실을 보여주는 건 안일하게만 느껴집니다. 


어떤 평론가는 임상수 아니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다루겠냐고 합니다. 맞는 말이죠, 임상수 감독은 우리 사회 1프로의 추한 모습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으니까요. 그러나 상류층의 복잡하고 미묘한 군상을 이토록 김 빠지게 그린다면 소재의 특이성 만으로 공을 인정받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돈의 맛>에서 상류사회 가족은 종자부터 다른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감독은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무엇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관객에게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며 영화 속 인물들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죠.



<돈의 맛>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돈이 주는 무게감에 지친 백윤식이 자기 딸과 김강우에게 일장연설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는 이 집에 들어와 어쩌고 저쩌고 이래서 저랬는데 그건, 모욕적이었어." 전 생각했죠. '저 대사로 백윤식이 겪은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 그룹의 연애스토리를 떠오르게 하는 설정은 단순한 고발일 뿐입니다. 왜 아쉬울 것 없는 재벌 딸은 다 늙은 남편이 집을 떠나는 건 견딜 수 없었을까. 백윤식은 왜 하필 그 하녀였을까. 태어날 때부터 상류사회에 속해 있던 김효진은 남자 하나로 견고한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김강우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욕망을 키워나가죠. '왜??'



<돈의 맛>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임상수의 고발 프로젝트에 순서대로 움직이는 말에 불과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1프로의 삶이 본받아 마땅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단순한 사람 일리도 없습니다. 김효진이 연기한 재벌집 막내딸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고 <대부 3>의 메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상류사회에 속해있던 메리는 아버지가 하는 일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유복하고 인자한 부모님 밑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꿈꿀 뿐이었죠.



<대부 3>



다만 메리도 눈치가 있는 사람인지라 가끔 묻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일이 정말 합법적인가요?' 십 대 소녀도 이 정도인데 한 그룹의 사장까지 맡은 김효진은 어째서 자기 엄마와 관계를 한 남자와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었을까요. 감독은 머릿속에 있는 가상 인물을 관객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먼발치서 바라보고 나열하는 게 아니라 더 상상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관객이 이해하기 힘든 영화는 어려워서가 아니라 감독이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맛>의 이 치명적인 단점은 <시민 케인>을 떠오르게 하는 유려한 영상미에도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복잡한 예술입니다만 결국은 서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세련된 영상미는 턱없이 부족한 서사 앞에 초라해질 뿐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가족들이 모여 앉아 <하녀>를 보는 부분입니다. 그 외엔 자기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감독이 내뱉는 토사물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칸에서 수상을 예상했다는 임상수 감독 인터뷰를 보며 농담이겠거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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