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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n 03. 2018

매트릭스 : 워쇼스키 남매의 삼부작

#06. movie sketch


액션이란 무엇인가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다들 기억할 겁니다. <매트릭스>의 열풍이 얼마나 엄청났었는지. 지금은 존재감이 작아졌지만 당시 초대형 스타 키아누 리브스가 워쇼스키와 만나 터트린 홈런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매트릭스> 1편을 열 번 정도 본 사람이 수두룩 했으니까요. 그만큼 엄청난 새로움이었고 무엇보다 세련됨 그 자체였습니다. 느리고 유연한 액션은 패스트 모션과 비교되어 더 아름답게 다가왔고 기계 문명의 지배 아래 인간다움을 찾아간다는 철학적 주제는 블록버스터에 기대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매트릭스>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둔 워쇼스키 (당시 형제) 남매가 1편을 감당하지 못하고 <매트릭스> 3부작 규모를 지나치게 키우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매트릭스> 시리즈를 간단하게 나눠보자면 이렇습니다.

<매트리스> : 영웅의 탄생 
<매트릭스 Reload> : 영웅의 사랑 
<매트릭스 Revolution> : 영웅의 죽음

<매트릭스>는 누가 뭐래도 영웅물입니다. 네오라는 구세주가 나타나 기계들에게 공격받는 진짜 인간들을 구하는 이야기. <매트릭스> 1편의 매력은 마치 본 시리즈처럼 고뇌하는 영웅의 모습에 있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이 하루아침에 '그'가 되고 주위의 무거운 기대를 받게 됩니다. '그'가 된 네오는 어리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선한 마음으로 능력을 끌어내며 점차 영웅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매트릭스>



1편이 끝나고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개봉한 2탄은 완성된 영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릅니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네오의 사랑인데 영웅 곁에 있어야 하는 여자의 쓸쓸함, 소외감에 꽤 많은 부분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이 설정은 한계가 있는 게 네오라는 인물 자체가 너무 스테레오 타입입니다. 사랑이야기로는 전혀 갈등이 발생하지 않아요. 매트릭스 2에는 모니카 벨루치와 네오가 키스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방을 지나려면 자기에게 키스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니카 벨루치와 총을 꺼내 드는 트리니티, 두 여자 사이에서 얼빠진 얼굴로 있다가 영웅의 임무를 실현하기 위해 성실히 키스에 임하는 네오. <매트릭스 리로드>의 황당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진지한데 보는 사람은 헛웃음이 나오죠.


<매트릭스 리로드>



2편의 주제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건 사랑하는 법을 안다는 건데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무의미해서 기계들에게 비웃음을 당한다는 것이죠. 매트릭스 설계자는 네오에게 영웅으로써 사명과 사랑 중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합니다. 보나 마나 너는 사랑을 택하겠지만 그건 착각이고 환상이라고 말하죠. 예상대로 네오는 사랑을 택하고 보란 듯이 죽은 트리니티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문제는 트리니를 어떻게 살려냈냐는 겁니다. 그전에 매트릭스를 찾아온 다섯 명은 해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네오는 해냈죠. 


왜?

여기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네오가 '그'이기 때문이죠. 이 상황은 3편 <매트릭스 레볼루션>으로 가면 더욱더 심해지는데 네오가 하는 모든 일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인공이 눈을 다쳐 앞이 안 보이는 극적인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순간 노란빛으로 적들이 잘만 보입니다. 왜? 네오가 '그' 이기 때문이죠.


네오는 별다른 고민 없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할 일을 척척 찾아냅니다. 장애물은 금세 극복하고 불가능은 가능으로 만들어 내죠. 영웅도 이런 성실한 영웅이 없습니다. 게다가 5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액션씬들은 너무도 기계적입니다. 꼭 필요해서 나온다기보다는 때 되면 나왔다가 때가 되면 끝나는 느낌마저 듭니다. 네오가 살인 기계들과 시온에서 싸우는 장면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사람들이 <매트릭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환호했던 미학적 액션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스미스와 네오의 대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트릭스 리로드>



이 물량 전은 길고, 요란하고, 정신없는 데다 결과마저 알고 있으니 이쯤 되면 우리 영웅 네오가 죽어도 그다지 슬프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눈과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었는데도 안쓰럽기는커녕 영화가 끝나 줘서 고마울 뿐이죠.

<매트릭스> 삼부작은 뒤로 갈수록 급격한 질의 하락을 보이며 막을 내렸지만 흥미로운 상상력이 돋보인 영화였습니다. 프로그램이 가상세계 속에서 인간이 되어 복제되고, 바이러스처럼 다른 프로그램을 잡아먹으며, 쓸모없는 프로그램은 지체 없이 삭제한다는 게 점점 기계화되어 가는 인간세상에 
신선한 메타포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첨단 특수효과에 갇혀 철학적인 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영화산업에 스미스 같은 영향을 주고 말았죠. 워쇼스키 남매의 기발한 상상력이 다시 한번 적절한 기술과 마주해 화려하게 꽃 피울 날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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