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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n 04. 2018

여행자 : 위로를 하는 법

#07. movie sketch


삶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


<여행자>는 한국계 프랑스인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실제 입양아였던 그녀는 눈물로 자기 불행을 호소하는 대신 어린 시절 겪은 일을 최대한 정직하고 상세히 담으려 합니다. 다큐멘터리 같은 덤덤한 연출 방식은 불쌍한 아이도 비난할 어른도 만들지 않고 관객에게 해소되지 않을 감정을 남깁니다. 실제 삶처럼 느껴지는 영화에 마음이 한없이 파래지지만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삶의 경의로움 마저 느끼게 됩니다. 영화가 끝나면 전보다 삶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기분이에요. 


<여행자>



<여행자>가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건 배우 김새론의 공이 큽니다. <여행자> 스페셜 픽쳐에 담긴 오디션 영상을 보면 그녀의 타고난 재능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자기 세계가 강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죠. 친구와 싸우는 상황을 연기해 보라는 감독의 주문에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을 아이의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성인 배우의 연기에 익숙한 관객에게 풍부한 감수성으로 꾸밈없는 감정을 드러내는 <여행자>는 새로운 심상을 전달합니다.


영화는 굉장히 유기적인 매체입니다. 연출이 잘되면 연기도 좋고 연기가 좋아야 연출도 살아납니다. <여행자>는 연출과 연기가 서로를 이해하는 작품입니다. <여행자>를 보다 보면 잠시 등장하는 인물의 감정마저도 내 것처럼 느껴집니다. 캐릭터의 사연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관객도 그들이 바라보는 답답한 현실에 같은 막막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수녀뿐만 아니라 고아원 원장, 보모, 외국인 양부모, 하다못해 진희의 아빠까지 모두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디는 사람들입니다.



<여행자>



<여행자>는 편한 영화는 아닙니다. 진희가 의사 선생님에게 자기가 버림받은 이유를 추측하는 장면이나, 고아원 이모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웬만한 할리우드 B급 영화보다 잔인해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진희는 영리한 아이여서 더 상처받습니다. 고아원에 들어왔다는 걸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건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입양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입양 후 달라질 생활을 꿈꾸며 희망을 갖는 숙희와 달리 진희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희망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여행자>



고아원 아이들은 서로 닮았습니다. 머리 모양이나 옷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현실에 순응하고 자연스레 체념한 표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진희는 결국 입양됩니다. 고아원을 나서는 그녀는 어느새 다른 원생들과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해소 할길 없는 원망으로 몸부림쳤지만 결국엔 다른 친구들처럼 살기 위해 희망을 버리기로 합니다.


불행은 진희처럼 어린아이에게도 찾아오고 슬픔은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아원 이모는 진희가 자기 불행을 스스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이모가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구슬프게 부르는 진희를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말없이 치마 단만 꿰맨 건, 그녀 역시 진희가 떠나면 혼자 감당해야 할 슬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자>



그럼에도 <여행자>는 희망적인 영화입니다. 서로에게 무력한 모습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혼자 꿋꿋이 삶을 견디는 아이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우니 르콩트 감독은 각자의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삶의 한 부분을 드러내며 최고의 위로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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