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movie sketch
이상이 만드는 광기
<미드 소마>는 90년에 한 번 9일 동안 열리는 스웨덴의 백야축제 ‘미드 소마’를 배경으로 그린 공포영화입니다. <유전>으로 단숨에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아리 에스터 감독은 <미드 소마>에서도 보이지 않는 공포를 이어갑니다.
장르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한 감독은 평화로운 이미지들과 대낮처럼 밝은 배경으로도 두 시간 동안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미드 소마>를 본 관객은 둘로 나뉠 것 같습니다. 감독의 패기에 감탄한 사람과 질려버린 사람. 저는 감탄한 사람입니다.
<미드 소마>는 공포물이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다른 가정사를 지닌 대니는 언제나 불안해합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녀가 하는 행동은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그녀의 감정은 공감을 얻지 못하죠. 남자 친구 크리스티안은 공감할 수 없는 대니의 감정들에 질려합니다. 영화의 앞부분에 대니가 전화 통화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주는 것은 관객이 그녀의 심정에 공감하게 하기 위해서 인 듯합니다. 대니의 개인적인 불행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녀의 불안을 공포의 근원지로 삼습니다.
<미드 소마>는 관객과의 거리감에 변화를 줌으로써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일반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관객은 대니의 상황에 공감합니다. 남자 친구에게 버려질까 두려운 그녀의 심경과 아물지 않은 슬픔, 불청객으로 여행에 참여한 불안과 불편을 그대로 느끼죠.
반대로 호르가 마을의 생경한 모습을 보는 동안은 왠지 모를 거리감이 생겨납니다. 호르가의 광경은 신비롭지만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낯선 것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겁니다. 호르가 마을이 실체를 드러내기 전까지 영화는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미드 소마 축제에서 호르가 사람들과 그곳에 방문한 여행객 무리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호르가 공동체가 맹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어 전통을 지키려 한다면, 대니의 무리는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남자 친구의 마음이 떠난 것을 느끼고 수시로 불안해하는 대니, 논문 주제를 놓고 다투는 크리스티안과 조시, 철저한 이기주의로 양쪽 모두에 문제를 일으키는 마크 등. 태연하게 기괴한 행동을 함께하는 호르가 사람들과 달리 여행객 무리는 각자의 입장을 달리합니다.
불안감은 인물의 감정 외에 이미지로도 표현됩니다. 끝이 뾰족한 삼각형 제단, 길고 좁은 테이블, 기울어진 지붕들은 관객의 무의식에 불안을 전달합니다. <미드 소마>는 한 번 크게 놀라게 하고 끝내는 것보다는 불안을 축적시키며 긴장감을 높여나가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강물에 던지는 의식을 거하려 할 때 관객은 대니처럼 그들의 결정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호르가 마을은 죽은 노인의 머리를 망치로 깨고 시체를 전시하며 명복을 비는 공동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호르가 마을의 민낯에 잔뜩 예민해진 대니와 달리 크리스티안은 그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합니다. 다른 문화일 뿐이고 그걸 존중해줘야 한다고요. 그는 자신의 욕 망외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호르가 사람들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이방인들을 제물로 사용합니다. 대니는 5월의 여왕이 되어 돌아오지만 기어이 불안한 예감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죠. 호르가의 여성들은 상처 받은 대니의 주위를 둘러싸고 그녀의 호흡에 맞춰 완벽히 같은 소리로 울부짖습니다.
이 장면은 대니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크리스티안과 대비됩니다. 호르가 마을이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완벽한 공감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공유한 이방인 대니는 마지막 순간에 남자 친구였던 크리스티안을 제물로 택합니다.
<유전>과 마찬가지로 <미드 소마> 역시 영화의 후반부에 도달하자 그간 쌓아왔던 불안과 공포를 화려하게 불태웁니다. 지나치다 싶은 설정들 때문에 헛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이 정도가 되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창고 씬에서 크리스티안의 당황한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네요. 아리 에스터 감독의 다음 영화도 많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