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노장을 편드는 글

#02. 자글자글

by Yearn

마블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이지가 인터뷰 중 내뱉은 그 한마디에 인터넷이 불타올랐다. 이상한 일이다. 이 한마디가 그렇게 화가 날 일이었을까? 보통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강한 자가 약자에게 모욕을 주었거나, (그 일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화를 낸다)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무시를 당했다거나(당사자가 화를 낸다)인데 노장의 개인적인 견해가 뭐 저렇게 입장표명을 해 댈 일일까 싶었다. 여기서 가장 어이없는 건 스콜세지 감독의 '마블은 영화가 아니다.'의 뜻을 다 알면서도 마블은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주야장천 인터뷰를 해대는 '마블 관련 감독과 배우들'이다. 그들도 한때는 망토와 CG 없이 연기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마블은 현재 가장 돈이 잘 벌리는 영화다. 마틴 스콜세지는 경험도 많고 영화계에서 입지도 큰 베테랑이지만 마블만큼의 수익을 가져다주는 감독은 아니다. 자본주의 끝판왕 할리우드에서 발끈한 마블 관계자 및 배우들보다 더 권위 있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전성기를 한참 전에 지나왔다. 맥락 없이 쓰이는 꼰대 타령도 슬슬 지겨워지는 건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과 다른 의견을 내는 행위 자체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꼰대라는 말에는 윗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강요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윗사람은 권력이 더 강한 사람으로 해석 가능하다. 나이가 많은 건 또 하나의 권력일 때가 있으니까. 사람은 각자의 의견이 있고 나이가 다르면 대체로 생각도 다른 법이다. '꼰대 같다'라는 표현은 권력을 지닌 사람이 여러 명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는 편향적인 태도다. 그런데 이 불타고 있는 인터넷 상황을 보고 있자면 누가 꼰대인지 모르겠다. 마블 팬이라고 주장하며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그들은 마치 엄청난 권력자가 작고 힘없는 영화에게 넌 영화도 아니야!라는 폭언을 한 듯한 반응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자기들과 다른 의견에 화가 났을 뿐이다. 스콜세지는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어 왔고 할리우드에서 마블보다 더 강력한 파워를 지니지도 않는다. 단지 의견이 다를 뿐이다.



마블에게 시네마 딱지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어떤 사람들은 히어로물이 아카데미 같은 시상식에서 푸대접을 받는다 말하기도 한다. 왜 그들에겐 시상식의 트로피가 필요한 걸까? 예전에 예능에 나온 이효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뭘 해도 잘 됐기 때문에 연기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을 때도 자신이 있었단다. 내가 이효린데 당연히 잘되겠거니 했다고. 첫 주연 드라마의 결과는 처참했고 낮은 시청률로 현장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에는 워낙 잘 나가서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거 같다고 했다. 스콜세지 발언이 일으킨 논쟁을 대하는 마블의 태도는 잘 나가는 슈퍼스타 같다. 내가 지금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화 마블인데 시상식에 안 불러?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데 괜찮은 영화가 아니라고? 그리고 슈퍼스타의 곁에는 언제나 그들을 철부지 아이 취급하며 과보호하는 팬들이 있다.

시상식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시상식은 작품성이 높은 작품을 지켜주려 노력해 왔다고 생각한다. 영화 포스터에 '00 영화제 수상'이 쓰여있다면 작품성과 연기력은 대단할지 모르지만 큰돈은 못 벌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시상식의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영화도 사회, 정치적인 이유로 외면당하고 수상에 실패하는 일이 매해 일어난다.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도 차별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작품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큰돈을 버는 영화는 훨씬 많다. 그리고 그 영화들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린다. 그 정도를 대체할 작품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나는 마블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 또한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비주얼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다. 하지만 영화가 복잡한 예술인 건 모든 요소들이 합쳐졌을 때 진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마블 영화의 스토리는 빈약하다.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개인의 취향 문제라고. 선호하는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취향이 반영될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얼마나 잘 짜여 있는지는 어느 정도 판단 가능한 기준이 있다. 개연성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실제 삶은 오히려 개연성이 없다. 그럼에도 스토리에 그토록 개연성을 애타게 찾는 건 어차피 이야기는 가짜이고 가짜를 진짜처럼 전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설득력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없는 영화도 있지 않냐. 그렇다. 그럼 그 영화는 관객에게 작품을 전달하기 위해 다른 방식을 택한 거다. 마블은 전형적인 스토리 중심의 방식을 택했고 이야기의 완성도는 개연성으로 평가받는다. 자 이제 마블 영화를 이야기해 보자.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도 마블 영화들이 개연성이 높다고 하겠다면 그건 그런 거겠지. 공감한 사람만 아래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



스크린 속 달리는 열차를 보고 실제로 치일까 봐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영상예술의 기원은 눈속임이다. 그리고 영화는 눈속임으로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진화해 왔다. 초기 무성영화에서 현재까지 예술과 상업 사이를 오가며 발전해 온 영화의 결과적인 목적은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깊이가 깊을수록 훌륭한 영화라고 이야기한다. 왜냐면 그게 더 만들기 어렵고 가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본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영화가 예술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는 자본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감독들은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과 상업적인 본전 치기의 경계에서 언제나 고민했고 둘 다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마블은? 영화처럼 복잡한 예술에 어떻게 경계를 뚜렷이 나눌 수 있겠냐만은 마블은 전형적인 오락영화다. 재미와 의미의 경계에서 그들이 택한 방법은 재미 베이스에 의미를 한 스푼 더하는 것이지 중간점을 찾으려 한적조차 없다. 시작부터 목적이 한쪽으로 완벽히 치우쳐있는 작품이다. 마블 영화가 평균적으로 작품 완성도를 올리고 있는 건 사실이나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패스트푸드가 더 맛있을 수는 있지만 아무도 그걸 더 나은 음식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마블 영화는 슈퍼스타들을 그룹으로 기용하고 그들의 얼굴을 골고루 보여주기 위해 불필요한 대사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열 명이 나오면 열 명이 무조건 한 마디씩은 해야 하기에 웬만한 정보는 대체로 대사로 전해진다. 마틴이 주장하는 '시네마'는 아무리 유명한 배우가 혼신의 연기를 해도 작품에 불필요하면 쓰지 않을 수 있어야 하고, 배우의 말 외에도 더 다양한 방법으로 복잡한 이야기와 감정을 전하는 것이다. 이런데도 아직 스콜세지가 한 마블은 영화가 아니다는 말이 거슬리는가. 논란의 기사를 보던 중 흥미로운 댓글을 보았다.


우리의 취향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마블 팬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자신감이 없는 눈치다. 그건 스콜세지의 비난에 공감한다는 뜻이다. 그토록 마블이 우리도 시네마다에 집착하는 건 자기 약점을 정확히 알기 때문인 거 같다. 눈에 뻔히 보이는 약점을 감추기 위해 정말로 오랜 기간 성의 있게 영화를 발전시켜 온 감독을 '꼰대'라는 단어로 깎아내리려 하는 건 너무 폼나지 않는 일인 거 같다. 마블은 자신들이 영화계의 새로움이라고 주장하지만 영화 안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전복적인 지점은 없다. 공공연히 등장하는 정형화된 성역할 인물들과 뻔한 대사는 오래된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반면 마틴 스콜세지의 90년대 작품인 '순수의 시대'는 아직까지도 어려운 성별 논쟁의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려 했다는 점에서 지금 봐도 진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이건 영화계에서 감독이 지니는 위치와 명성을 빼고 영화 내용만으로도 비교가 가능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즐겨 보고 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마블이 자신들이 전혀 투자하지 않은 영화적 이야기 만드는 일에 부족함을 지적당했다고 발끈하는 걸 보고 있자니 데뷔 초에 무명 인디 밴드의 노래를 그대로 베껴 유명세를 누리고 돈은 돈대로 벌었음에도 마지막까지 표절 하나를 인정하지 않았던 자칭 밴드가 떠오른다. 그 노래가 좋게 느껴졌으니 표절했을 테고 그걸로 부와 명예도 다 누렸는데 실제로 자기가 한 일 하나를 인정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이건 콤플렉스다. 예전에도 이런 논쟁이 있었다. 귀여니의 책은 소설인가와 심형래의 <디워>를 비판하는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 그때 소위 꼰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기성세대들은 그 작품들의 일회성을 알면서도 새로운 흐름이라 치부했다. 결과는 현재 귀여니는 소설을 꾸준히 내지 않고 더 이상 처음처럼 이모티콘으로 글을 쓰지도 않는다. 심형래 감독은 구설수로 그의 영화 인생을 마감했다. 이 두 가지 논란은 문화적 보수주의 꼰대들이 나선게 아니라 실제로 두 작품 모두 완성도가 부족했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화를 냈기 때문에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스콜세지 감독이 마블은 시네마가 아니라고 주장한 건 마블이 평균 시네마 수준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영화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냐고? 모든 정의는 그간 쌓인 데이터로 판단하는 것이다. 스콜세지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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