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이라도...

#03. 자글자글

by Yearn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지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지는 경험을 한 건 아마도 나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직장 동료가 심리테스트를 하나 알려줬다.


'나 오늘 너무 피곤해서 드라이 샴푸로 머리 감았잖아'


라는 말에 어떤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T(사고) 형인지 F(감정) 형인지 알 수 있다는 거다. F인 감정형 사람들은 '피곤해서'라는 단어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데 비해 T인 사고형들은 그렇게 드라이샴푸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F형으로 드라이 샴푸 타령하는 T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MBTI에서 단 한 번도 F가 나와본 적 없는 정통 T형으로 당연히 드라이 샴푸가 뭐야?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테스트를 해봤는데 (늘 그렇듯 끼리끼리 인지라 내 주위에는 T가 많다. 심지어 내 친구 중 한 명은 저 물음에 근데 드라이샴푸 너무 좋지 않냐?라고 했다.) F형으로 추정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괜찮아? 어제 뭐 했길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별거 아닌 테스트에 이토록 놀란 건 '괜찮아'라는 말이 내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괜찮아?'라고 얘기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나는 상황에 대한 파악이 빠른 편이라 (덩달아 판단도 많이 빠르다.) 상대방의 기분을 금방 알 수 있다. 대화 중 '어머 어떻게 알았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유년시절의 수많은 인간 관찰에서 얻어낸 (사교성이 많이 떨어졌다.) 통계이기도 하고 영화를 좋아하면서 생겨난 후천적 자산이기도 하다. 문제는 알아챈 기분에 대한 피드백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이 테스트로 그간 의아해했던 모든 순간의 답을 찾은 것만 같았다. 친구들 그간 궁금한 것만 물어봐서 미안해. 앞으로는 좀 더....

뭐랄까....

음....

.......



앞으로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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