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자글자글
나는 기독교인이다. 흔히 말하는 엄마 배속부터 교회를 다닌 모태신앙이고 가족들도 대부분 같은 종교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믿는 종교에 대해 언제나 비판적인 마음이 있었다. 그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현상이나 규율에 대한 게 아니라 대체로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사이비 종교들이 기독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정통으로 인정받은 교회에서도 사이비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은 종종 목격된다. 한 때 목회자가 되려 했던 친구 남편은 실제로 마주한 한국 교회의 현실 앞에 이 나라에 기독교는 없다고 생각했단다. 나는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신천지 사태를 보며 느낀 건 어느 종교인이나 조금씩은 교주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이비에 속나 보다. 진짜와 크게 차이가 없으니까.
정규직이 없는 직업 종교인은 수시로 교회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다양한 목사님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인상 깊은 목사님이 있었다. 젊고 정치색도 강했던 그 목사님은 새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설교하던 중 부부 싸움 이야기를 꺼냈다. 신혼 때는 가치관 차이가 심해서 사모님과 매일 같이 싸웠다고. 심지어 어느 날은 한창 부부싸움을 하다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아 이렇게 살바에야 자기가 죽겠다고 난동을 피운 적도 있다고 했다. 또 대학시절에는 삶에 너무 의욕이 없어서 무협지를 산처럼 쌓아놓고 읽다가 죽겠다 싶을 즈음 꿀단지에서 꿀을 찍어 먹으며 지냈단다. 좀 특이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저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그 목사님이 좋았다. 왜냐면 이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업 종교인은 종종 완벽한 사람 행세를 한다. 실제 삶은 쏙 빼놓고 돼야만 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많다. 마치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무결한 사람을 연기하는 거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지적하지만 자기의 부족한 부분은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유교와 기독교를 적당히 섞어서 불특정 다수에게 훈장질만 하는 건 동네 아저씨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삶에 친숙하게 스며드는 종교는 어디든 그곳의 문화를 닮는다. 한국 기독교는 유교와 종교를 구분하지 못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라는 걸 밝히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나는 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성경에 실제 있지도 않은 말이 한 종교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관습의 잣대에는 민감하지만 법 앞에는 관대하고, 교인이라는 울타리 밖의 사람에게는 한없이 냉정하지만 교회 안의 커다란 잘못에는 죄인이 모이는 곳이 교회라며 자위하기 바쁘다. 예수님 닮은 삶을 사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라고 배웠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소수자들을 차별하거나 비난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세상의 작은 규범보다 더 큰 뜻을 따르는 진보적인 사람이었는데 기독교는 대체로 보수당을 지지한다. 구약과 신약이 이어지는 이야기라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기독교지만 신약의 포용과 희생보다는 구약 속 하나님의 분노와 규범만을 되풀이하려 한다.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데 최상의 도구가 돼버린 종교 속에서 종교인은 신뢰를 얻지 못한다. 그 속에서 진짜 믿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깊은 자기 고백을 들려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예수와 같아서 전지전능한 게 아니라 나도 가난이 싫었고, 나도 가정을 유지하는 게 어렵고, 나도 믿음을 유지하기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노력하는 이유를 들려주는 것만이 자기 믿음을 남에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모든 종교인이 훌륭하진 않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희생과 섬김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다. 특권만 누리려 하는 건 종교적이지 않다.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만 하는 건 예수님의 삶과 다르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