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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n 28. 2020

독재자 성향

#05. 자글자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독재자 성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화 도중에 상대방의 입을 지퍼처럼 잠가 버리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도 독재자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나와 다른 어떤 걸 보았을 때 그걸 부정할 수도 있고, 인정하고 넘어갈 수도 있고, 또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걸 막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근본적으로 통제에 대한 욕구다. 없어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고 싶은 거다.

처음 이 생각을 했던 건 가정 내 불화가 심한 시기였다. 당시의 나는 모든 일엔 정답이 있다고 믿었고 사람이 자기 의지로만 움직인다는 것, 기본적인 옳고 그름조차 천차만별이고 결과적으로는 철저하게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몰랐다. 나에겐 정답처럼 보이는 길이 있었기에 모두를 질질 끌고서라도 그 길로 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정답이 모두의 정답은 아니라는 걸. 다행히도 나는 사회적 갑질을 할만한 상황이 되지 않아 독재자 본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그러나 성향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에 때때로 상대방의 입을 잠가버리는 상상을 하는 거다. 나에겐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얼마 전 유행한 심리테스트 '나와 닮은 대통령은?'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이 나왔다.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 욕망을 이룬 박정희는 무려 18년간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18년간의 업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곤 한다. 글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독재로 성과를 못 낼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거다. 모든 사람의 의견과 인격을 묵살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단기 성과는 분명히 나온다. (안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 시절을 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박정희 대통령이 심어놓은 사상을 느낄 때가 있다. 폭력적으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단순함과 철저한 이기주의 그리고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무감각함. 시대는 변했지만 맞으면서 배운 건 잊기 어려운 법이다. 그 후에 더한 괴물이 나온 것도 그가 뚫어 놓은 길 덕분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치가 발전했고 모두에게 말할 권리를 주었기에 의견을 모으는 게 어려워졌다. 독재는 이상이자 미성숙함의 상징이다. 그래서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이들은 말 한마디 못하는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닐까.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지녔다면 그다음 해야 할 일은 그걸 다스리는 거다. 그래서 난 나의 독재자 성향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건 이룰 수 없는 욕망이다. 하지만 아직 어딘가에 독재의 기회가 남아 있다면 나에게도 줘라.

한 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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