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자글자글
첫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나의 다음 계획은 다른 대학에 가는 거였다. 4년을 다녔지만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배우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투자해서 남은 건 학자금뿐이지만 미련 없이 20대를 낭비한데 후회는 없다. 다만 그 시간이 끝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벌어먹고 살기 위한 능력과 대학에서 배운 건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다. 돈 되는 능력은 일하면서 생겨나는 거지 대학에서 얻는 건 아닌 거 같다.
대학생활은 학창 시절과 달랐다. 중고등학교는 시한폭탄 같은 10대들을 관리하기 위해 모범사례만을 가르치고 거기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하려 하지 않았다. 사회에 나오면 모범답안 이외의 이야기가 훨씬 많고 나머지들도 여전히 자기 몫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학창 시절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점수가 우선이었던 당시엔 배우는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대학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졸업 후 별다른 인생계획이 없었기에 4년제는 졸업해 달라는 엄마의 바람대로 그저 그런 대학에 겨우 들어갔다.
처음 가본 대학은 재미는 없었지만 자유로웠다. 옷도 마음대로 입을 수 있고 가기 싫은 자리는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친구가 있어야 좀 더 즐거웠지만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대학생활이다. 강의는 지루했지만 외워야 하는 정답이 없어서 고등학교보다 좋았다. 우리 과 전임 교수님은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였다. 강의도 30분마다 집중력의 한계가 찾아와 세 시간이나 듣기에는 조금 지루했다. 나는 그 교수님의 강의 때마다 낙서를 했는데 주의를 분산시켜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였다. 낙서는 진심으로 강의를 듣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핑계 같아 보이겠지만 진짜다.)
어느 날은 낙서하는 소리가 좀 티가 났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모습이 교수님 입장에서 좋아 보이진 않았을 거 같다. (더 생각해 보니 다른 데서 그러다 혼난 적도 있는 거 같다.) 교수님은 내 공책 가득한 낙서를 보고 눈치 보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낙서는 뇌 활동에 좋지’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낙서가 좋은 이유를 얘기하기 시작하다가 결론은 앞으로도 많이 해라로 끝이 났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그 일이 교수님의 돌려 말하기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해봤지만 아니었던 거 같다. 나는 학점도 잘 나왔고 강의를 제일 열심히 듣는다는 칭찬도 받았었다. 교수님은 그냥 관용도가 높은 사람이었던 거 같다. 태도로 지적받아본 사람들은 안다. 태도가 좋다는 평가를 들으려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항상 못마땅하기 마련이고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오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때 그 교수님의 반응은 거의 처음으로 윗사람에게 배운 관용의 태도였다. 신기하게도 나이 들수록 그 사소했던 일이 대학에서 배운 것들 중 가장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활이 의미 있었다 생각한다. 대학에 가지 않았더라면 모범생처럼 보이는 법 밖에는 배우지 못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