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에서 연구실까지, 발효가 남긴 질문들
2016년, 처음 맥주를 만들었을 때. 발효는 단순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숫자와 온도, 시간으로 설명되는 일. 공정만 정확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었다. 맥주는 공식처럼 만들어지고 실수는 계산의 오류 정도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발효는 많은 부분에서 사람을 닮아 있었다. 규칙을 따르지만 예측할 수 없었으며 서류와 매뉴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결이 있었다.
양조장에서 처음 맥주를 버려야만 했던 날을 기억한다. 정해진 공정과 모든 수치를 지켰지만 발효가 멈췄고 효모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맥즙 위로 올라왔다. 레시피와 기록지를 붙잡고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모르겠다”는 사실만 남았다.
그날 이후로 다소 무기력한 마음으로 발효를 통제하려는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대신 효모가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예측보다 관찰이 더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패는 조금 덜 두려운 것이 되었다. 발효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그 실패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과정의 일부가 된다. 발효의 일부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수 있었다.
연구실로 옮겨온 뒤에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장비는 더 정교해졌고 데이터는 훨씬 풍부해졌지만, 효모는 여전히 제멋대로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이 있고 그럴 때면 발효는 통제가 아니라 관계에 가깝다는 생각을 다시금 꺼내게 된다.
내 방식대로 끌고 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이해하고 맞추는 일.
효모가 가진 리듬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오래 지나서야 깨달았다. 발효라는 세계를 마주하고 있으면 가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규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예측할 수 없는 선택, 실패와 회복, 그리고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기쁨까지. 발효는 참 많은 것을 닮아있다.
나는 오랜 기간 그 세계에서 일해왔다. 양조장에서, 연구실에서. 수많은 실패와 몇 번의 기쁨을 경험하며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품고 있다. 왜 어떤 발효는 실패했는가. 왜 어떤 실패는 배움이 되었는가. 왜 어떤 순간에는 설명 대신 기다림이 답이 되었는가.
이제 그 질문들에 대한 생각을 천천히 글로 정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