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에서 배운 느림과 관찰에 대하여
양조장에서 일하던 시절, 하루 종일 발효조 앞을 서성였던 날이 있다. 기록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온도도, 비중도, pH도 모두 정상 범위였다. 하지만 탱크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평소와 달랐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익어가던 향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첫 출근자였다. 보통 양조장 문을 열면 발효 중인 맥주의 달큼한 냄새와 금속의 차가움이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는 조금 무거웠다. 전날에 투입한 효모가 예상처럼 발효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출근하자마자 서로 다른 대답을 풀어놓았다. “괜찮아, 조금 느린 거겠지.” “아니야, 뭔가 이상해.”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으로 상황을 해석했지만 누구도 정확한 원인을 말하지 못했다.
결국 그날 하루는 관찰로 시작해 기다림으로 끝났다.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해 보고, 산소를 더 공급해야 하나 고민하고, 장비 고장을 의심하며 점검했지만 모든 수치는 완벽했다. 양조장에서 이런 상황을 종종 겪지만, 늘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야 기록이 따라온다. 나는 탱크 벽면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이산화탄소가 빠져나오는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했다. 아무리 데이터를 들여다보아도 그 하루의 발효는 내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다음날, 멈춘 줄 알았던 발효가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특별히 조치한 건 없었다. 조건을 급격히 바꾸지도, 효모를 추가하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동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끔은 그냥 기다리는 게 답일 때가 있어.” 우리가 멈췄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은 어쩌면 효모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숨 고르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발효조 앞에서 데이터보다 먼저 냄새와 온도를 느끼려 했다. 효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타나는 향, 거품의 두께, 맥즙의 탁도가 말해주는 신호를 조금씩 배워갔다. 연구실에서는 이런 ‘감각’이 정량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되곤 하지만, 나는 안다. 기계가 읽어내지 못하는 미세한 변화를 생명체는 이미 온몸으로 겪고 있다는 것을.
지금 연구실에서 완벽하게 통제된 실험을 할 때도 가끔 그날의 양조장이 떠오른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데도 효모는 제멋대로 속도를 늦추거나 멈춰 선다. 통제는 기술이지만 대상을 이해하는 건 관찰의 영역이다.
발효는 늘 일정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때로는 멈춘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예상보다 빠르게 흐른다. 양조장에서의 그 하루는 멈춤과 느림이 실패가 아니라 발효의 일부일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지금도 발효가 예상과 다르게 흐를 때면 나는 그날 탱크 앞에 서 있었던 긴 시간을 떠올린다.
앞으로 내가 마주할 수많은 발효 앞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록이 아니라, 그들의 침묵을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