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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Pythagoras)


피타고라스 (Pythagoras, BC582?~BC497?)



중학교 수학책에 나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널리 알려진 한 학자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인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그 자신의 업적인지 제자들의 업적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단순히 수학만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를 대표하는 종교가이자 ‘지혜(sopia)를 사랑(philo)하는 자’라는 뜻의 철인(philosopher)이는 용어가 잘 어울리는 철학자이다.


그의 삶과 철학을 기록한 책들은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자신의 사상을 기록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진다. 그의 스승은 ‘물은 모든 것의 제일 원리’라고 주장한 자연철학의 비조인 탈레스인데, 스승의 권고로 그는 이집트의 멤피스로 가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렇게 오른 유학길에 23년간을 수학하게 되며,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이집트가 함락되자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이송되어 12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는 크로톤섬에 우리로 치자면, 사찰에 해당하는 공동체 학교를 세우게 된다. 타고라스 공동체의 생활 규율은 압축하여 표현하자면, ‘오늘 자신이 한 일을 세 번 되돌아보기 전에는 눈을 감고 자지 말아야 하며, 오늘 내가 잘 한 일은 무엇이고, 잘못한 일은 무엇이며, 도 끝내지 못한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전생을 기억해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런 그는 이 공동체에서 ‘혼의 전이설’이라는 영혼의 윤회사상을 가르치며, 아침 식사로 빵과 꿀 혹은 당밀을 먹는 등 육식을 금하는 채식주의를 기본으로 생활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순백색의 정결한 옷과 깨끗한 담요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그는 상호의존과 상호친교를 강조하였는데, 이것을 필리아(phillia), 즉 우정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자연의 모든 원소들을 조화로운 관계로 끌어당기는 우주적인 힘이라 주장하며 “친구들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 친구는 또 다른 나다.”라는 경구를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고대의 백과사전이라 불릴 정도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피타고라스는 우주를 처음으로 코스모스(cosmos)라고 부른 사람이며, 수학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놓인 다리로 여기며 만물의 근원을 '수'로 보았다. 그 수는 자연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수와 기하학에서의 점을 대응시켰다.


피타고라스주의는 이오니아학파의 자연주의와는 달리오르페우스교와 같은 신비적·종교적·정서적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으나, 동시에 진지한 철학적 관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측면도 있다. 이전 시대의 자연주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피타고라스학파도 형이상학(존재의 본성)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존재의 본성을 어떤 실체가 아닌, 수학적 형상(形象)에서 찾았다는 점이 타 이론과는 구별점이 된다.


이론적 방면의 연구에서는 음악과 수학을 중시하였는데, 음악에서는 일현금에 의하여 음정이 수 비례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였고, 순정5도(純正五度)를 반복하여 겹친 음률을 피타고라스의 음계라고 하며, 음악을 수학의 한 분과로 보게 된다. 예를 들자면, 자연수 계열의 연속항의 임의의 항까지의 합은 삼각형수이고, 마찬가지로 기수계열의 합은 정사각형 수, 우수계열의 합은 직사각형 수라는 방법으로 정의를 하며, 완전수, 인수의 합, 비례와 평균의 연구, 상가평균, 조화평균 등도 분류하였다.



그는 우주론, 수학, 자연과학, 그리고 미학을 하나로 보았기에, 이 세계를 단 하나의 법칙에 지배되는 정돈된 전체로 입증하려 하였으며, 지식을 강조하여 무형의 지적 자산은 남에게 준다고 없어지지 않으며, 지식의 기본은 타인을 배려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현대의 대학으로 보아도 될 그가 세운 공동체에서는 지식을 마치 암호처럼 압축된 문장과 수수께끼 같은 형식을 통해 상징적으로 전달하였다.


6세기 말엽에는 그의 공동체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게 되고, 피타고라스의 사상을 전파시키려는 회원들의 지나친 노력과 그의 보수적 정치 경향 때문에 크로토네 시민들은 반감을 일으키게 되었고,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한 세상을 수로 바라보게 한, 철학이란 말을 만들어 낸 원조자가 만들어 낸 사상은 훗날 플라톤을 비롯하여 수많은 철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에도 지식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알게 모르게 대중에게 깊숙하게 스며들어 잔잔한 여운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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