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이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다.
어렸을 적에는 착하게 살라는 부모님의 교육에 따라 최대한 종교도 가지면서 착하게 살았다.
하지만 성인인 대학생이 되자마자 이런 현실은 마구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고등학교 때까지는 선생님들께서 번갈아 교실을 찾아오셔서 수업을 했으나 성인이 되어서는 학생 스스로가 알아서 교수님을 찾아다니며 강의를 들어야 하는 일처럼 말이다.
어느 날, 열심히 며칠을 밤을 새우며 그것도 수학만을 오전 6시부터 밤 12시가 넘도록 도서관에서 살며 머리에 쥐 나게 공부했거늘 장학금을 탈 수 없음에 속이 상해 엄마 앞에서 펑펑 울었다.
시험날, 5명의 학생들이 서로 짜고 일명 커닝을 했다.
알고 보니 과 학생들 대다수가 그러했다.
엄마는 그전과 다르게 "못하는 게 잘못이지. 그것도 능력이지"라고 하시며 달래기는커녕 핀잔을 주셨다.
믿고 믿었던 엄마에게서 머리 한 대를 맞은 듯 멍한 느낌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지구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다 맞는 말씀이셨다.
사회라는 곳, 세상이라는 곳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두 손바닥 비비는 일 없이는 독불장군으로
커나가기에는 이 사회에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영특하고 부지런하기도 하면서 성격 또한 나름의 융통성과 유연성을 가져야만 했다.
순진하고 착한 이로 대접받는 시간은 이미 다 흘러가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아이에게 또다시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대신 "아이~착해!"라는 말은 되도록 쓰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바르게 살기를 원하지만 나의 아이 또한 스스로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착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참아야 하고 타인이 우선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진짜 속마음은 아직도 착하게 살고 싶다는 편이 더 크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에게 대접해주자는 것이 나의 주된 마음 가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우습게 생각하기 일쑤다.
자신에게 잘해주면 무슨 속내가 있나 의심하거나 모자란 사람, 혹은 자신보다 아래급으로 칭하며 밟고 올라서기 바쁜 것 같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진심을 알아주고 나를 인정해주는 1인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고, 그런 마음을 나누지 못한 이들도 나중에는 나의 진짜 가치를 알아주지 못했음을 후회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20,30대처럼 전부는 아닐지라도 아직도 나는 마음속에서 진짜 꿈일 수밖에 없는 꿈을 꾼다.
내가 상대를 배려해주고 상대 또한 나처럼 배려해주면서 상생하기를 바란다.
서로의 진심을 서로 편하게 나누는, 그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기를!
상대방도 나와 같은 진심이 있어야지만,
진심을 나누는 일이 통한다는 사실에
끄덕 한숨,
끄덕 두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