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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날이 늘어나는 미래가 되길.

옛날 옛적에는 모두가 슈퍼 울트라 똑똑이들에 멘탈도 파워도 갑인 사람들이 살았나 보다.

현대에는 세분화된 전문적인 일들로 한 가지만 해내기에도 벅찬 세상인데 옛날 옛적에는 자급자족으로 웬만한 일들은 뚝딱뚝딱 다해내면서 살았으니 말이다.


현대인의 삶이 더욱더 고단하고 살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면이 더 큰 것 같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우리는 일명 '태교'라는 고운 테두리 안에 조기교육의 시작이라는 무거운 뿌리를 감춘 채 예쁘게 포장된 경쟁 아닌 경쟁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다 조금 커 작디작은 조직사회인 유치원안의 친구관계에서부터도 아이들은 큰 경쟁을 시작한다.

 성인이 된 후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을 터.

앞뒤를 재가며 겉으로는 친구, 속으로는 경쟁자라는 이중의 시선까지 달고 살아야 하니 이보다 고단한 생활이 또 어디 있을까?


진정한 경쟁자는 바로 나 자신이 되어야 함을 잊은 채 바로 눈에 보이는 코앞의 이들과 경쟁하며 진솔한 마음도 나눌사이 없이 겉으로만 웃고 챙겨주며 살다 보니 마음의 헛헛함은 배로 다가오고 정신적 스트레스는 덤으로 늘 따라다니게 되니 말이다.

먹거리는 늘 부족하고 황폐한 땅을 일구며 늘 몸이 고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 옛날 옛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  한숨 돌리는 반짝 시간이 생길때마다 자연의 풍유를 즐기며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을 진심으로 살피며 살 줄  알았다 하니 그 시절이 오히려 현세보다  행복하고 더욱 살만한 때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대적 빈곤이 심각하고 부의 소유 격차는 더욱 심각하게 늘어나며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차마 꿈꿔 볼 수도 없는 세상에서 자그마한 얇은 실타래 같은 약한 실 한 줌이라도 붙잡고 끊어질세라 살얼음판 위를 걷듯 불안하고 눈치 보며 사는 삶 속에서 사람 같은 모습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준수되며 살 수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요즘, 인간은 인간 자체로 존중받으며 살아야 함이 마땅하거늘 어느 때부터인지 돈이 상전이 되어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존엄성마저도 빼앗고 있는 실정이니 참으로 통곡할 만한 시기가 아닐수 없다.


이런 사회를 아직 잘 모르는 5살 아이는 내게 질문한다.

"엄마, 일등이 좋은 거예요? 꼴등은 나쁜 거예요? 그럼 2등은요?"


그런 아이에게 나는 오늘도 대답한다.

"등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자신이 얼마나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야.

최선을 다해 1등을 하면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끝까지 할 만큼 했어도 2등을 한다면 그래도 그 사람은 잘한 것이고 박수받아야 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서 꼴등을 할 경우에는 그것이 꼴등이라는 사실보다도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훨씬 더 부끄러운 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결국, 등수보다는 자신의 마음과 노력이 중요한 것이니 이점을 꼭 기억해야 한단다."라고.


선천적으로 깔린 바탕에 의해 대접받는 사회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작은 것에 쓸데없는 경쟁과 눈치 보는 일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자연과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웃는 날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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