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지현 등단시인 칼럼니스트
Apr 26. 2020
비바람 가득한 마음속에서 한 줄기 의욕이 기지개를 켜며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낯선 땅을 처음 마주하는 듯 어이없고 맥이 빠져 축 늘어져만 있던 검은 영혼의 숨결에도 드디어 시작의 바람이 분다.
시작은 늘 새롭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론 두렵고 또한 깊숙이 어디론가 파고들어 머리카락 한 올까지 숨겨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단어는 그 어디론가 나아가게 한다는 자동 공식이 또한 그 안에 숨겨져 있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졸업 전에 은행에 취업하였지만, 적성을 운운하며 반년만에 퇴사를 하였다.
그러나 바로 2 주만에 나는 새 직장을 찾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동생을 가르치는 일이 많아 재미있고 익숙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택한 나의 새 직장은 학원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 직장에서의 적응도 아주 익숙해질 만큼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는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시기.
이 시기는 그렇게 익숙해져 갔기에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익숙한 나날들이 도돌이표를 찍게 되었고 그것은 나를 또다시 지루한 일상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하지만 항상 위기는 이러한 안정화된 평화로 움을 질투한 그 누군가의 눈에 띄었는지 영 불편한 상황과 직면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정착한 학원 생활이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질 때쯤 그리 지루할 수만은 없는 일상이 나에게 물밀듯이 순식간에 깊숙이 닥쳐왔다.
처음으로 어떤 한 학생으로 인해 괴롭고 직장에 나가기도 싫어진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심각한 상황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학생을 담당하는 전과목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겪게 된 무거운 문제였다.
일명 의사 아버지에 잘 사는 집 아들이면서 똑똑하기까지 한 아이였던 이 학생이 나의 평화롭던 안정기의 수면 위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그 학생은 3학년이나 되어서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고 수업 진행이 불가할 정도의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는 아이였다.
이런 행동은 나날이 갈수록 강도가 강해졌고 내 마음은 지쳐가며 깊고 검은 우물 속으로 숨어 버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직장을 옮겨볼까?
잠깐 쉬어볼까? 많은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번 내 마음속을 뒤집으며 생채기 난 곳을 더욱 건드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선생님이 너 많이 생각하는 거 알지?
네가 수업 시간에 바른 행동을 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파. 내가 너를 혼내는 것도 너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야. 관심이 없다면 너를 혼내지도 않았을 거야"라고 정성을 들여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학생은 갑자기 180도로 바뀌어서 모범생이 되어버렸다.
등원할 때면 밝은 모습으로 교무실까지 일부러 찾아와 나에게 웃어요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다른 선생님들도 하루아침에 바뀐 그 학생의 모습에 적잖이 놀래신 듯했다.
'나는 순간 이건 뭐지?' 하면서 당황스러웠다.
며칠을 지내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최후로 선택해 건네었던 내 말이 서로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어 되돌아온 것임을.
그 학생은 단순한 문제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 간절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이야 몇십 년씩 학생들을 대하니 금방 알 수도 있는 기본적인 일인 것을 알지도 못 한 채 나는 그 당시 내가 초짜인 줄도 모르고 몇 년 가르쳤다고 지식이 전부인 것인 것처럼 착각하며 지루한 일상의 무지한 덫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렇게 나는 진짜 선생님이 되는 첫 신고식을 커다란 감동과 부끄러움으로 치러내며 진짜 선생님으로서의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디뎠다.
개인 사정으로 학원을 떠날 때 그 학생은 나에게 학원을 그만두지 말아 달라며 울며 매달렸다.
그리고 며칠 후 그 학생은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선생님!
제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꼭 선생님 찾아갈게요.
건강히 잘 지내세요!
사랑해요. 선생님!"
지금도 그 학생의 말이 감동에 묶여 벅차게 떠오른다.
내가 진짜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도 마음속으로 새로운 답장을 또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