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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May 03. 2023

책 한 권을 썼고 내 삶이 바뀌었다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책 한 권을 썼다.


  큰 출판사가 아니라도 그냥 나에겐 처음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면서 결과를 만들고 싶었다. 목차 만들기와 글 다듬기, 퇴고 등의 과정을 진행해 보니 얻는 것이 무척 많다. 읽으면 읽을수록 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러 번을 고친다. 책을 쓰는 과정이 한 인간의 성장의 과정을 다 담고 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처음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시점은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마음속에 들끓는 목소리를 따라서 여러 가지를 글로 쏟으면서 나를 만났다. 책 쓰기의 가장 첫 과정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이해하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만났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더욱 활발해진 내면 작업이 이제 많은 결과를 내게 보여주는 것 같다. 책 한 권 쓰기를 하면서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더 나의 상처에 솔직해지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내려놓는다.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잘 살고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가 정말 나에겐 새로운 삶을 선물한 것 같다. 책 처음에는 그저 눈물만 흐를 뿐이었는데 마무리를 할 때쯤엔 조금 더 단단하고 다부진 내가 되어 있었다.

 

  늘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고 못마땅해서 힘들었는데, 책 쓰기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나에게 주었다. 불편하고 못마땅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사랑의 연습 시간이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욕심이 나고 또 욕심을 내다보면 앞에서 한 작업들이 다 쓰레기 같다. 그렇게 내가 나를 비난하며 다시 글 앞에 앉는다. 그러다가 또 나를 이해해 주고 토닥여 주기도 하면서, 잘못된 점들을 찾아서 고쳐도 보고 나쁜 마음이 아닌 아팠던 마음이었으니 그만 자책하자고 위로도 해 주는 것이다.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면서 내면아이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 우울증과 불안으로 힘든 사람들,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고 싶은 사람들, 사라지고 싶은 마음에 힘든 사람들이라는 타깃 독자가 정해져 있었으나 결국 나는 내 책의 1호 독자로 스스로 얻는 위로도 큰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공감이 될 만한 글을 쓰고 싶어서 마음을 많이 열고 쏟아내었지만 그 결과는 알 수가 없다. 읽는 사람에게로 바톤이 넘어간다. 그저 내가 얻고 싶었던 위로를 온 마음으로 쓴 시간이었다.


  내가 써 내려간 그 한 권의 책이 내 손에 들어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이 첫 책이 지금까지의 내 삶을 다 표현해 주는 것이 되리라. 어떤 날은 만족과 성취감에 부풀었고, 또 어떤 날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고 비참했으며, 어떤 날의 나는 그렇게 사라지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책처럼 그렇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껴안을 것이다. 누군가는 형편없다고 말하고, 누군가에겐 조금 읽다가 덮혀질지 모를 책이지만, 그렇게 나는 내 삶을 사랑했고, 열심히 나를 알아가기 위한 사투의 시간을 벌이며 애쓰고 살았다는 인정을 가득 주려고 한다.


  삶은 책 쓰기 과정과 참 닮아 있다. 일단 책이 펼쳐지고, 책장이 덮이는 마지막의 순간이 있다. 나의 책도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책을 쓰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수없이 새롭고 더 나은 모습으로 수정해 가는 과정이 한 개인의 성장과도 닮아 있다. 그럼에도 완벽한 책은 없다는 것이 또한 삶과 같다. 아무리 수정해도 오류나 불편한 점이 발견될 것이 때문이다. 오늘 그 책을 바라보는 내 느낌이 3년, 5년 후의 감상과 또 달라질 것이기에 그 또한 삶이다. 삶은 이렇게 어느 한순간도 똑같지 않으며 변화무쌍하게 흐른다. 책 쓰기를 통해 나는 조금 더 삶의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나를 이렇게 존재하게 하고 성장하게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가장 크다. 당연한 줄 알았던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다 감사하다. 나를 고통으로 밀어 넣은 그 사람들 마저 감사했다. 그 고통이 내가 글을 쓰게 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고통스러운 관계가 없었더라면 글 쓰는 나는 없었을 것이다. 때론 축복은 이렇게 쓰디쓴 포장을 두른 채 우리에게 오는 것 같다. 축복인 줄 알아서 감사하다. 이제는 조금 더 평온해진 나와 동행하며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오늘도 충만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이고 기쁨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책 쓰기를 하며 참 행복했고, 아팠고, 뭉클했고, 위대했고, 평온했다. 이렇게 다시 나는 글 속에서 위로받고, 또다시 사람과 함께 하는 풍경에 희망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고 나답게 살아가겠다. 그런 다짐을 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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