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을 읽고 오랜만에 묵혀 둔 눈물을 만난다. 울어 낼 만큼 다 울어 낸 것 같은데 또 어느새 차오르는 눈물을 만나게 한다. 최은영 작가의 섬세하고 차분하면서 묵직한 슬픔을 풀어내는 표현들에 감동하게 되었다.
밑줄을 많이 치면서 읽었다. 한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슬픔에 다시 걸어 들어간다. 밝은 밤은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백 년의 시간을 같이 이야기 속에서 만나게 한다. 증조모에게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나'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나'에게서 출발해서 증조모로 향하며 쓰이는 아야기가 서로 넘나들며 서서히 그 간격을 메워 간다. 가장 가까워서 더 소통되지 않는 원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한대를 건너서 이야기가 통하며 그 틈 사이에서 오는 오해와 소통의 부재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닿고 싶었으나 결코 닿지 못하는 서로움과 외로움을 절절히 만난 것 같다.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더 외로울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위로를 받고 싶었던 가족이 그것을 채워주지 못할 때 오는 결핍과 슬픔은 실로 거대하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된다. 그 소통의 단절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두고 싫어하면서 온 자기 자신과의 소통의 단절이었음을 말이다. 누구보다 자신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하겠다고 밝은 밤을 읽으면서 또 느낀다. 아프고 버려진 마음을 안고 사는 우리를 따뜻하게 연결해 주는 순간들의 힘을 믿는다. 힘든 순간 어깨를 빌려 주고 마음을 나눠 준 이웃들과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결국 밤이 찾아오고 거대한 어둠 속에서 슬프고 지친 우리 자신을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랑한 만큼, 애정한 그만큼 또 아프고 찢어지는 가슴의 통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그렇게 사랑하던 것들과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 밤은 어둠만 안고 오는 것이 아닌, 밝은 밤이라는 것을 작가가 긴 호흡으로 묵직하게 말해 주고 있다. 밝은 밤. 나는 그 밝은 밤의 거대한 연대를 느끼며 조용히 울음을, 따뜻한 울음을 울어 보았다. 감사한 일이다. 밤은 언제나 내게 두렵고 물리쳐야 할 무엇이었는데 이제는 조금, 힘이 날 것 같다.
작품 속의 '나', 지연이 밤의 시간을 지나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나도 같이 그 어두운 밤을 걸어 나오는 것 같다. 4대에 걸친 각자의 삶의 역사와 상처가 너무 때론 서로 닿지 않아서 서로를 찌르며 아프게 했지만 거대한 공통분모를 만난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다시 밤을 만난다. 환한 달처럼 그렇게 서로를 비추며 함께 하는 시간을 선물한다. 여전히 우리 앞에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고, 어떤 마음의 조각은 결코 나와 맞혀질 수 없는 조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밤 아래 우리는 하나이다. 저 우주의 나이처럼, 아득히 긴 긴 시간을 다지나고 인간이 맞을 최후는 먼지와 같이 흩어지고 사라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찰나에 우리가 함께 밝은 밤을 아름답게 반짝이며 통과한 시간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 믿는다.
"새비야,"
"응"
"내레 아까워."
"뭐가."
"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새비 아주머니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
"난 삼천이 너레 아깝다 아쉽다 생각하며 마음 아프기를 바라디 않아."
그 말에 증조모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밝은 밤> 최은영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반짝이는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도 좋은 날이이다. 세상이 참 밝고 눈부시며 햇살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나와 마주한 얼굴들의 눈길이 참 고맙고 따뜻하다. '아깝다'는 생각이 올라올 듯한 '충분한' 생의 순간을 이렇게 또 지날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