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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May 16. 2023

커다란 귀가 되어 준 브런치스토리

책이 탄생하던 순간의 기록

  동그란 망원경 렌즈 속으로 한 여자 들어온다. 초록색과 빨간색 체크무늬가 교차하는 시폰 소재의 시원한 옷을 입고 카페에서 뭔가를 쓰고 있다. 책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싸인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즐겁게 그렇게 웃으며 뭔가를 끄적이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누구이길래, 이렇게 꽉 찬 네모도 아닌 동그란 렌즈 속 좁은 시야에서 나타난 걸까?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꿈속에서 그 동그란 렌즈 속 그녀가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는 것인지 몹시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그녀가 바로 나라는 것을. 나는 미리 본 것이다. 작가가 된 내 미래의 모습을 말이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가면성 우울을 벗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뭐라도 쓰고 싶어서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고 리뷰 블로거로서 여행지, 맛집, 카페 등을 리뷰했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도 이제 다른 사람의 삶과 제품들을 리뷰하는 것이 아닌,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조용히 숨죽여 있던 그 아이가 나타났다.


  "나야, 나. 네가 알아봐 주길 오랫동안 기다렸어. 나는 술 취한 아빠 때문에 무서워 벌벌 떨던 여덟 살 너야, 엄마의 유방암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던 열다섯 살의 너이기도 하고, 첫사랑을 하고 버림받은 느낌에 사라지고 싶던 스무 살의 너이기도 해. 이제 그만 오랫동안 닫아 둔 귀를 열고 내 이야기를 좀 들어줄 수 있어?"


  그렇게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고, 작가가 되면서 글 속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내게 브런치스토리는 커다란 귀가 되어 주었고 그 어느 때 보나 나는 행복했고, 아팠으며, 뭉클했고 애잔했다. 곳곳에 버려진 나를 만나서 하나가 되어 가는 이야기가 내 브런치스토리이다. 여러 편의 짧은 글들이 한 권의 책이 될 때까지 나는 커다란 귀가 되어 나를 받아들여 준 브런치스토리에 감사한다. 좋아요와 댓글로 때론 그저 바라 봄과 머물러 줌으로 그 모든 응원과 격려의 에너지들을 느꼈다.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라는 나의 첫 에세이는 그렇게 브런치스토리 속에서 탄생했다. 1장은 나의 원가족의 추억과 마흔에 내가 나로서 떨어져 나오는 성장의 과정을 담았다. 이 역시 브런치 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글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글루틴 팀과 글을 함께 쓰면서 나의 책 2장이 탄생했다. 스무날의 마음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한 달에 스무 번의 글을 발행하며 나는 더 멀리, 더 깊숙이 내 내면 속으로 여행을 떠났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따뜻한 존재가 나타나서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그 행복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글루틴 속에서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완성했다.



  세상에서 혼자 떨어져 나와 아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이 외로운 날의 나를 보았다. 그런 내게 별빛이 내려와 포근히 감싸 안아준 시간이 있었다. "아이야, 살아나렴, 아이야, 너는 참 아름답고 소중한 내 별이란다. 다시 한번 본래의 너로 반짝이도록 내가 너를 꼭 안아 줄게.." 그 따뜻한 포옹을 글로도 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눌러쓰다 보니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두렵다. 다름 아닌 죄책감이 올라온다. 내가 작가가 되어도 되는 걸까?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아도 과연 괜찮을까?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글 속에서 착한 척하며 예쁜 말을 아무리 쏟아내어도 내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어서 그 괴물이 나를 비웃는 것만 같다. 아픈 날의 나는 관계 속에서 많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 위로랍시고 타인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떠난 적도 있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내가 얼마나 위선을 떨고 살았는지 알았다. 착하지 않으면서 착한 척을 그렇게도 했다. 사랑에 고픈 어린 내가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서 나를 속이고 사랑받아 마땅한 행동들만 그렇게 해 댄 것이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여러 편 쓰면서 나는 조금씩 솔직해지고 있다. 한 꺼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의 나와 만나고 있다.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는 내가 쓴 책이지만 어쩌면 그 책 속의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가 닿아서 그 책의 운명을 살게 될 것이다. 최은영작가의 말처럼, 나의 역할이 있고, 책의 운명이 또 따로 있다는 말에서 위로를 받는다. 인간 김리사로의 사적인 나와, 내 삶을 떠나서, 작가로서 한 권의 책 속에 담고 싶었던 마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두려운 마음의 나에게 말한다.



  책 속의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한 글자, 한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느껴 보았다. 한 문장의 호흡이 얼마나 숨 막히는지, 두루루룩 쏟아 내 버린 그 한 문단의 호흡은 또 얼마나 통쾌한지, 온갖 감정들이 뒤얽혀서 그 책 속에 내가 산다. 나는 책을 쓰기로 한 후, 오랫동안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이 책과 함께 책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이 바로 내 지나간 40여 년의 시간을 몽땅 안고 있어서 참 소중하고 애틋하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책과 닮아있다는 비유는 참 언제나 들어도 옳은 말이다.



  오늘도 그렇게 나는 나만의 책을 써 내려간다. 이렇게 브런치스토리에 매일 글을 쓰며, 나는 또 다른 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믿는다. 우리에겐 결국 이렇게 '커다란 귀가 되어 들어줄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종국에는 사라짐으로 끝날 허무한 삶이지만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날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브런치스토리와 그 속의 따뜻한 작가님들이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 주며 오늘을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다. 행복한 동행에 감사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평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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