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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May 19. 2023

고3에 만난 남편

리사의 love yourself

고3에 만난 그와 나.


  남편 이야기를 쓰려니 많은 망설임이 생긴다. 마음 정리가 되지 않고 복잡한 심경이 떠돌다가 글이 되지 못하고 다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고3에 만나서 연애를 하고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다. 긴 연애를 했고, 우리는 이제 마흔둘이 되었다. 20여 년의 세월을 같이 보낸 사이.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보다 길다.


  남편과 나는 열열히 사랑했고, 몇 번의 이별을 거쳐 다시 만나고 결혼까지 왔다. 아이 둘도 낳고 우리는 이제 몸이 좀 여유로운 마흔둘이 된 것이다. 내가 겪은 마음의 질풍노도를 그도 같이 겪는 것 같다. 늘 싸우게 되면 항상 서로에게 말한다. "내 마음 좀 알아줘. 나 너무 힘들었어.", 그러면 또 상대방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나는?, 나도 힘들었어."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포용과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일들을 같이 겪었다. 그 과정 속에서 큰 기쁨도 같이 맛보았고, 인생의 고비들을 많이 넘겼다. 감사로 물들 일들이 많다. 어려운 시절에 만나서 힘도 많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온통 그와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반짝이고 아름다웠다. 많은 곳들을 여행했고, 함께 소년과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시간을 거쳤다. 그렇게 부모가 되고 서서히 탈바꿈한 자아를 갖고 삶을 살아간다.


생전 처음 맛보는 경험들. 그 모든 경험들이 그와 함께한 역사 위에 써졌다. 감사를 잃고 어느 날 그와 내가 서먹 서먹해진 그 공기를 느끼며 많이 좌절했던 것 같다. 나의 마음에 슬며시 삶의 의미가 무엇이나 물어오는 목소리도 만나고, 그를 몹시도 싫어하는 마음도 만난다. 그와 함께 잘 살아보고 싶었으나 때론 마음이 닿지 않아 무척 고독하고 쓸쓸했던 것 같다. 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부부로 마흔을 넘겼다.


오늘 아침은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요즘 내가 당신에게 왜 이렇게 서운한 마음이 들고 서먹해졌을까? 아마도 나는 당신에게 아빠 같은, 부모와 같은 사랑을 원했기 때문인 것 같아. 당신은 남편인데,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이 달라서 그렇게 마음이 힘들었나 봐. 이제 그만 당신을 분리된 반쪽의 경제공동체로 보려고 해."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안고 사는 것은 힘들다. 상대도 똑같이 원하는 사랑의 모양이 있을 것이다. 서로가 그 모양을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불완전한 둘은 서로를 완성시켜 나간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가 하나로 제대로 서고, 다시 둘이 하나가 되고 그렇게 부부의 시간은 흐른다.



그 모든 서운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도 그렇게 그에게 외롭고 힘들게 한 시간을 준 것에 미안함을 느끼며. 오늘은 더 깊은 마음과 서로가 닿아서 예전의 우리도 다시 돌아가 봤으면 좋겠다. 그도 묵혀둔 마음속 깊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나의 마음이 유약한 점 때문에 그 끝에 토해내지 못하고 숨겨둔 그의 진짜 속 이야기를 다 들어 보려고 한다. 나 또한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서 피해버린 내 마음을 꺼내어 볼 것이다.


그동안의 세월 속에 각자 많이 성장했고, 또다시 부부로 잘 살아가기 위해 이런 시간이 왔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관계 중에서 나에게 가장 힘든 숙제 같은 남편과의 관계.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오늘은 툭 튀어나오며 맴돌던 그곳에서 글을 빌려 다시 살아났다. 적당히 살면 좋겠다의 마음에 잘 살면 좋겠다가 꽃 피었다.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글을 쓰며 가장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내 상처들을 만난다. 그와 나의 20년. 그 긴 시간 우리는 분명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오늘은 그와 가면을 벗고 만나서 예전의 스무 살로 돌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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