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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Jun 20. 2023

망치를 들었다

리사의 love yourself

오늘 모닝 레터의 주제는 통찰이다.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한참을 카페에 앉아 사색을 한다. 요즘 계속 지니고 다니며 아무 때나 펼쳐 보는 책, <마흔에 읽는 니체>를 또 열어본다. 뭔가 나에게 통찰을 줄 한 줄을 찾아서. 그러다 눈이 멈추는 페이지가 있다.


"섬광처럼 내리치면서 자르고 분쇄하라."

망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꿈을 추구하느냐, 현실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로 나눌 수 있다. 이상주의란, 현실을 무시한 채 공상적인 삶에 집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현실주의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말한다. 지금 당장 닥친 문제에 집중한다.


대체로 서양철학에서 보면, 플라톤을 이상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를 현실주의자라 부른다. 니체는 이상주의와 현실의 가운데 어떤 삶의 태도를 취했을까? 그의 책 <우상의 황혼>에 대해서 니체는 "이 작은 책은 중대한 선전 포고"라고 말하며 그 책의 부제 "어떻게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가"로 정했다. 그에게는 이 세상에는 진짜보다 우상이 너무 많다고 말하며, 니체는 망치로 우상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런 그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새로운 시선으로 그의 철학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상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어 왔던 이상적인 세계이다. 그가 우상으로 규정하고 망치로 부수는 대상은 세계를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로 나누는 플라톤 철학이다. 그리고 그의 망치가 의미하는 것은 고정관념을 허무는 용기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에 대한 것이다.


<마흔에 읽는 니체 중 일부 발췌>



오늘의 글감, 통찰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니체가 말한 망치에서 한대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순간이 왔다. 내게는 다름 아닌 지금이 바로 니체가 말한 망치를 사용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나의 세계가 깨지고 허물어지며 나는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고 있다. 나의 글이 나에게 용기를 주고, 끊임없이 기존의 고정 관념이 망치에 의해 깨지기를 반복한다. 통쾌하고 아픈 순간들이다.


아주 오랜 시간 너무나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나의 관념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동굴 속에서 동굴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마치 동굴 밖으로 나온 기분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를 떠올려 본다.



"플라톤은 우리에게 지하 동굴 안에서 살고 있는 죄수들을 상상해 보라고 한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곳에서 다리와 목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돌릴 수 없었기 때문에 얼굴이 오직 동굴 벽으로만 향해 있다. 그들의 뒤편 저 멀리, 위쪽으로부터 불빛이 그들을 비춘다. 죄수들은 그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른다. 평생 이 동굴 속에서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물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림자 이와의 다른 세계를 알지 못하는 죄수들의 삶.


동굴 밖의 세계가 진정한 실재 세계임을 깨달은 어떤 한 죄수가 있다. 동굴 안에 있는 나머지 죄수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다시 동굴로 내려간다. 빛에 익숙해진 그의 눈은 어두운 동굴에서 시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나머지 죄수들은 그가 동굴 밖으로 나갔다 오더니 시력을 상실한 채 돌아왔다고 비웃는다. 아무리 그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림자이며 동굴 밖에는 실체의 세계가 있음을 설명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플라톤은 이 비유를 통해 불변하고 절대적이고 완전한 이데아 (동굴 밖의 세계)만이 참된 세계라 말한다. 나도 니체처럼 망치를 든 작가가 되어 그의 동굴을 다시 깨뜨리고 해체한다. 플라톤의 비유를 가져와서 나만의 동굴을 만든다. '내가 가져온 동굴'은 지금까지의 나 스스로를 무능하고 형편없다고 깎아내리고, 삶을 슬프고 염세적으로 바라본 동굴 속 삶이다.


오랫동안 믿고 있던 마음의 동굴을 망치로 깨 부순다. 나는 마음먹은 대로 해낼 수 있고, 어딜 가나 사랑받아 마땅하며, 삶은 축복이라는 동굴 속 밖의 진리를 본다. 동굴 밖은 그저 찬란한 빛, 빛, 빛의 세상이다. 빛 속에서 나는 한없이 평화롭고 따사롭고 행복하다. 동굴 속 어둠이 세상 전부라고 믿던 관념이 깨지고 나니 이제 삶이 달라진다. 망치가 정말 제대로 역할을 하는 순간이다.


나의 망치는 글이다. 나는 글을 쓰며 어둠 가득한 동굴을 깨부수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처럼, 그 공고하고 실재하던 알이 동굴처럼 깨어지고 부서지며 다시 태어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깨어지는 것들은 새롭게 창조된다. 허물어지는 고통 속에서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그 세상의 이름은 자유이고 희망이다. 자신만의 망치를 들고 이제 스스로를 괴롭히던 관념을 깨뜨려야 할 때이다.



오늘은 망치를 통해 삶을 통찰하며, 때론 가장 유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는 말을 껴안아 본다. 글이라는 유들유들한 도구가 어느 순간 우주 만한 동굴을 깨부수고, 알을 깨뜨리고, 그렇게 깨어남의 순간을 선물한다. 모든 창조하는 것,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들을 환호한다.


그러니 매 순간 다시 태어나고, 죽으며 다시 태어나자. 한 호흡에, 들숨, 날숨에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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