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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Jun 26. 2023

삶은 살아 있는 책

리사의 love yourself

함께 쓰는 지구별 여행, 오늘의 모닝레터는

도널드 밀러의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소개합니다.



20대 초반의 저자가 친구와 함께 구형 캠핑용 밴을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경험을 담은 책이에요. 이 책은 단순히 젊은 시절의 여행담에서 그치지 않고 인생 순례의 길로 바라보면서 삶과 그 자신에 대한 묵상을 하는 모습과 통찰이 아름답고 뭉클합니다. 특히 서문에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길을 떠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줘요.


p10

"그때는 모든 사람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계절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 말이지요."


p11

"우리의 사랑도 거듭 죽고 계속 다시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떠나야 합니다. 집을 떠났다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이유로 다시 자신의 집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 등장인물이 처음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내가 인생을 비유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대상은 책입니다. 마치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기게끔 우리 정신을 속이려는 듯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종이 위에 차례대로 펼쳐지는 방식의 책 말이지요."



"삶은 살아 있는 책입니다. 그 책의 이야기는 수백만 가지 배경에서 펼쳐지며 수십 억 명의 아름다운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거의 끝나갑니다. 당신이 몇 살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곧 끝날 것이고, 이어서 맺음 자막이 올라가며, 친구들은 당신의 장례식장을 마치고 나와 차갑게 가라앉은 침묵 속에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고는 화덕에 불을 지피고 포도주를 따르며 예전 당신 모습을 떠올리다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당신 생각에 아픔을 느끼겠지요."



"당신의 책의 왼손에 잡힌 부분은 두껍고 오른손으로 잡은 부분의 이야기는 거의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야기가 끝나가서 슬프고, 마지막 줄이 들려줄 어떤 아름다움, 길고 힘들게 얻은 결말에 이를 것임을 알기에 천천히 읽어나가고 싶겠지요. "


"당신은 등장인물들이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들의 이야기에 수백 페이지를 할당하는 것이 당연시될 만큼 그 감정이 얼마나 진실한지에 관한 이야기가 속삭임처럼, 마지막 숨결처럼 끝나기를 바랍니다."


"떠나세요."


"이 말을 입안에 굴려 보세요. 정말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당신이 항상 원했듯 아주 강하고 힘이 넘치는 말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닐 것이며, 결코 혼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은 여기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변화되는 것은 당신입니다."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 중>



여행길에서 영성으로 이어지는 이 책이 왜 이토록 내 마음을 울렸을까요? 삶의 의미를 묻는 시간에 답이 영성적인 것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성적인 답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배우고 느낄 점이 많은 글이고 삶입니다. 길 끝에는 항상 성장과 변화된 자신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떠나는 것이 두렵고, 내 안에 공고히 자리 잡은 나만의 신념에 사로 잡혀 살아가기 쉽습니다.



때로는 나의 신념을 깨뜨려 줄 사건과 사람을 만나 더 커지고 넓어지는 경험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삶이 더 자유롭고 가벼워지도록 말이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 그 일과 사람이 당신의 삶에서 꼭 필요했기에 나타나고 펼쳐져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보세요.


"모든 일들은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언제나 힘들면 되풀이한 이 한 문장이 다시 살아 나와 나에게 속삭여 줍니다. 도널드 밀러의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는 많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삶의 열정을 다시 돌려놓았습니다.


p.30

"친구들과 중부 텍사스에 갔을 때 사막의 언덕 꼭대기에 서서 무한한 하늘을, 잉크처럼 새까만 우주 깊숙한 곳을 올려다보았더니 수십 억 개의 별이 허공을 가로질러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떨어지는 수십 억 개의 별. 광활한 우주. 잉크처럼 새까만 우주가 우리 존재의 심연에 자리한 깊은 의미의 우리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자는 우주는 오로지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인간의 경박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 위에서 돌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주가 좋았다고. 우주는 뭔가를, 아마도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를 아는 것 같았다고 고백하지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까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상념에 빠진 순간이 있나요? 저는 지난 무주 가족 여행을 떠올리며 별이 쏟아지던 그날의 밤,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품었던 날이 있습니다. 삶이란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말로는 도저히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극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쏟아지는 별에 압도되는 순간. 숨 막히는 깜깜함에 더 대조적으로 밝게 빛나던 무주 밤하늘의 별이 그리워졌습니다.



창 밖으로 여름 장맛비가 내리는 모습도 그런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 모든 장면에 잠시 생각이 멈추고 존재 자체로 삶 속에 머뭅니다. 생각이 멈출 때 가장 평온하고 행복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만의 해석을 해 보며 아침을 감사하게 열었습니다. 우리가 저자처럼 미국을 횡단해 보는 일이란 힘들겠지요. 하지만 알고 보면 새로움을 발견한 순례와도 같은 길은 우리 앞에도 늘 펼쳐져 있습니다. 오늘 떠나는 나만의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 전혀 다른 생각과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보는 것도 다른 의미로 순례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을지, 그 경험 속에서 어떤 것을 배워갈지, 그 모든 순간이 깨어 있다면 순례길이 되어 줄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서도 낯선 길을 선택하고, 땅만 보고 걸었다면 하늘을 보고 걸어 보며, 나무의 변화를 포착해 보는 그 모든 순간 우리는 깨어있는 순간입니다.


'떠나라'는 저자의 조언을 받아 들고, 오늘도 그렇게 나만의 지구별 여행, 지금의 삶 속에서 작은 순례길로 떠나겠습니다. 그래서 돌아와 새로운 이유로 자신의 집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말이죠.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비가 와도 좋은 날입니다. 존재가 있어 통로가 될 수 있고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책장의 왼쪽 페이지가 점점 두꺼워져 가고 오른쪽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아 책장 넘기는 것이 아쉽고 두려워지기 전에 왼쪽 페이지를 더 감사하게 채워가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참 빨리 흐르니까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평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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