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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Sep 06. 2023

'대리만족'에서 '직접만족'으로..

리사의 love yourself

오늘도 부지런히 일어나 하루를 맞고 루틴을 달린다. 정말 그야말로 달리는 기분이다. 아침 기상 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루틴들이 많아서 하루가 활기차다. 독서, 필사, 긍정확언 쓰기, 운동장 맨발 걷기, 영어 수업 준비, 영어 영상 만들기, 공저 책 작업, 틈틈이 좋아하는 유튜브 영어 채널을 듣기. 본업인 영어 수업, 아이들 식사 준비, 오르막 산길 걷기 등 하루가 바쁘다.


이런 나에게 브런치 글 발행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다. 꼭 써야 하나? 빼도 되는 루틴은 아닌가? 공책에 혼자 끄적대어도 되지 않나? 그렇게 브런치의 의미를 물었다. 마음이 이렇게 답한다. 브런치는 '작가로서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트레이닝의 장' 같은 곳이다. 매일 하나의 글을 발행하니 글감도 부족하고 글쓰기 싫은 날도 많지만 꾸준히 함께 쓰는 분들과 쓰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 많다. 가장 큰 것은 '다른 시선을 얻는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나는 특정 주제로 글을 써보는 경험을 하면서 매일 쓰는 좋은 습관 속에 생산하는 삶을 산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이 무릎을 탁 치며, 감탄을 불러일으킬 때 '대리만족'을 느낀다. '사이다'처럼 통쾌한 글을 좋아한다. 내게 부족한 것에 끌리게 마련이다. 오늘은 이 '대리만족'이라는 단어 속에 머물며 글로 풀어내본다. 과연 내가 '대리만족'이라는 주제로 무엇을 꺼낼 수 있을까?


그러다 떠오는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일이 참 많다. 내가 어린 시절 해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아이들에게 선사하면서 얻는 만족감이다. 그중 하나가 가족이 다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어린 시절 가족여행의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도 장사하시느라 바쁘셨고 아빠도 일에 지치고 술에 빠져 사는 시간이 많으셔서 여행하는 삶은 우리 가족의 사전에는 없었다. 어른이 되니 그 아쉬움과 결핍을 채우려 더 많이 떠나게 된다. 오죽하면 나의 어릴 적부터의 닉네임이 '지구별 여행자'였을까. 남편도 나와 비슷한 환경이었기에 나의 마음에 동화되어 이제는 나보다 더 여행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우리는 아들과 딸의 표정과 모습을 자주 본다. 너무나 행복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미소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우리가 되어 같이 웃는다. 우리의 내면아이가 살아나서 대리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가족 넷, 모습도 닮은 우리들. 그렇게 긴긴 시간이 지나도 가족이 함께 하는 행복한 순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살고 있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 즐겁게 하려 떠난 여행에서 어른들이 때론 더 즐겁게 논다는 것이다. 이때가 대리만족에서 직접만족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역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엄마, 아빠도 직접 놀아봐야 재미가 더 하다.


그렇게 딸, 아들, 그리고 남편의 내면아이, 나의 내면아이, 총 아이 넷이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대리만족의 기쁨이 이른바'셀프만족'이 되면서 더 행복해진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많이 떠나고자 하는 '길 위의 여행자'로서의 DNA가 꿈틀댄다. 행복하다.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크고 넓고 높이 자라나면 좋겠다. 많은 여행지에서 나눈 대화들, 음식들, 특별한 추억들을 먹고 아이들이 자존감도 높고 해맑은 아이들로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통한 대리만족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쉽다. 부모 자신들이 못다 살아본 아쉬운 삶에 대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그저 방향과 경험 등을 제시해 줄 수 있을 뿐 모든 삶의 결정에 주체는 아이들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대리만족을 수없이 했던 어린 시절이 지나갔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자라고, 점점 성인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그만 대리만족하며 살아야겠다. 대리만족이 아니라, 나 스스로 직접 못해본 경험을 해보고, 직접 만족하는 삶을 택하기로 한다.


딸아이와의 옛 대화를 상기시키며 나에게, 나와 같은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가져 보자고 말하고 싶다. 일곱 살의 딸에게 바이올린 레슨을 시킨 적이 있었다. 한 일 년을 채 못하고 그만두게 되면서 나는 아쉬운 마음에 딸에게 말했다.


 "바이올린이 얼마나 좋은데, 더 해보자, 악기 하나는 잘할 수 있어야지."

그러자 딸이 말했다.

"나는 바이올린 보다 피아노가 더 좋아. 그렇게 좋으면 바이올린은 엄마가 배워, "


"바이올린은 엄마가 배워..." 이 말은 딸을 통해 악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 욕구를 대신 충족하고 싶은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대리만족'의 '나쁜 예'였다.


이제는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도록 다양한 경험을 주려고 노력한다. 많은 결정들 앞에 아이들이 놓이게 되고, 늘 결정권을 아이들에게 주려고 애쓴다. 언제까지나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다 책임질 수도 없고 부모와 자식으로 한 지붕아래 지내면서 꼭 주고 싶은 신념은 이런 것이었다. '엄마 아빠는 항상 너희를 믿고, 응원해. 사랑해.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고 싶구나.'


점점 나도 이제 어린 나의 자아에서 나와서 스스로 만족하는 경험을 더 하고 있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선생님처럼, 죽기 전에 자식들이 '우리 엄마는 자식을 위한 희생의 아이콘이 아닌, 정말 엄마 하고 싶은 것들 많이 하시고 행복하게 살다가 가셨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살아가고 싶다. 오늘 내가 많은 루틴들을 하면서도 글을 놓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작가라는 직업에는 은퇴가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나는 언제까지나 글을 쓰며 성장하는 할머니로, 그때는 더 지혜를 많이 가진 기품이 철철 넘치는 그런 할머니 작가가 되어있길 바란다.



우리 모두, 가능한, 할 수 있는 만큼,  대리만족보다는 직접 만족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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