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벌교에서 2남 4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라 농사일을 돕던 착한 딸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농사 일손이 모자라던 시골에서, 누구보다 공부를 잘하고 좋아하던, 옥례의 학업에 대한 욕구는 좌절되었다.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옥례는 십 대 시절, 가정의 힘든 형편 때문에 여기저기 일을 하러 집을 떠나는 십 대를 보낸다.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경상도 마산까지 그녀의 삶이 펼쳐졌다. 마산의 한 방적공장에서 일을 하기까지.. 그녀의 빛나는 십 대와 이십 대 시절은 먹고살기 위한 여정이었다.
착하고 착한, 순하고 순한 옥례는 그렇게 일을 하고 대부분을 돈을 집에 붙여주면서 이십 대 초반을 지내다가 방적공장의 절친한 언니로부터 '정윤'을 소개받게 된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 2막이 펼쳐지고 정윤의 아내가 되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통영의 북신동 한 골목에서 부식가게 아줌마가 되어 살았다. 정윤도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이 다 출가하여 각자의 가정을 이룬 지금, 이젠 세상을 다 알아버린 일흔의 할머니가 되어 여전히 골목의 부식가게를 하는 할머니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그녀의 인생 3막이 흐른다.
나의 엄마 옥례.. 엄마라는 이름만 들어도 늘 마음이 아리고 먹먹해져 온다. 돌이켜 보면 엄마의 인생은 가시밭길 투성이었으며 누구라도 안다면 돌아가거나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은 그런 길이 었다. 어린 시절 늘 내 눈에 비친 엄마는 안타까웠고 계속 일을 하고 또 일을 하고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런 어른이었다. 통영 한 골목에 자리 잡은 집에서 과일, 반찬, 잡화 등을 파는 부식가게를 하던 엄마는 우리 아빠, '정윤'에게 온갖 종류의 고생을 하며 평생을 사셨다. 어린 내 눈에 엄마는 오로지 '정윤'을 해내기 위한 삶으로 보였다. 해냈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서 해냈다고 쓴다. 누구라도 힘든 것을 해냈을 때 해 낸 사람으로서의 성취감이 있는 것이다. 지금 엄마는 '정윤'을 해내고 비로소 엄마답게 '옥례'가 되어 살아간다.
옥례의 남편, '정윤'은 나의 아빠이지만 내가 낯설게 내 가정을 바라본다면, 참 말도 안 되게 나쁜 남편이었다. 알코올 중독이 있었던 아빠. 하던 일에서 불미스러운 일들로 술을 거하게 마신 날이면 집은 쑥대밭이 되었으며 온갖 비위를 낮은 자세로 맞춰주던 엄마였다. 때로는 밥상이 날아가고 무언가 깨지고 부서졌으나, 가장 크게 부서진 것은 가족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밥상을 차려주고 또 차려주고 시지프스의 바위 밀어 올리기가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 시절이다. 부식가게 장사 일과 아빠의 술 뒤치다꺼리하는 일들이 긴긴 시간 되풀이되고, 그 와중에 아빠는 암투병을 두 번이나 하였다. 그 모든 병수발은 엄마의 몫이었으며, 그 무겁고 힘든 시간을 몸이 대신 표현하듯 엄마도 유방암에 걸려서 본인 암투병까지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낸 엄마였다.
아빠와 살아낸 시간을 아빠가 돌아가신 지금, 엄마는 어떻게 기억하시고 있을까? 언젠가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속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엄마, 그냥 아빠 버리고, 우리 버리고 도망가서 혼자 조용하게 살아요.. 엄마의 조용한 눈물을 보는 것도 너무 힘들어.." 엄마의 희생과 헌신이 죄책감이 되어 내린다. 우리 가족 누구라도 엄마가 떠난다고 해서 엄마를 원망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원망을 하면 염치가 없는 사람이다. 엄마는 누구보다 힘을 내어서 버티고 해낸 사람이니까..
한날은 엄마, '왜 그렇게 살았어요?'라고 물으려다가, 입을 닫았다. 엄마의 버티는 힘은 바로 자식이었고, 엄마에게도 친정의 엄마, 가족이 있었음을 아니까.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와 같이 슬프고 아팠으며, 힘든 감정을 삼키고 참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스름이 짙어 오는 밤의 시간, 늑대의 시간이라 불렀던 아빠의 아픈 시간이 되면, 나는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슬픈 어른이 되어있었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는 '바보처럼' 잘 까먹어~~
힘들었던 건 기억이 잘 안나~~
참 신기하게도 아빠가 엄마 힘들게 한 건 금방 까먹어..
그러니까 살았지, 안 그럼 못살지.."
그렇다. 신이 주신 은총은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것을 주셨다는 것..
나는 엄마를 보면서 그 무한한 긍정의 힘이 신의 은총임을 깨달았다.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엄마는 아빠와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다 잊어먹은게 아니었다.
괜찮다는 말 뒤에는 괜찮아야만 했던, 그 해내고 싶었던 무의식이 거대하게 존재한다. 지금까지도 엄마는 악몽을 꾸며 시달린다. 엄마가 주무시면서 꾸는 수없는 악몽들을 통해 엄마의 힘겨운 무의식을 옅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짠하다.부디 무의식 마저도 평온한 그 자리로 엄마가 들어갈수 있으면 좋겠다.
고백하건데.. 나는 사실,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 능력도 없고 엄마의 긍정성도 나에겐 없다. 그러나 엄마를 닮아가고 싶다. 세상 가장 큰 그릇으로 아픔이 많은 나의 아빠 '정윤'을 담아내는 엄마가 참 위대해 보였다. 어린 나에게도, 어른이 된 나에게도, 엄마는 늘 '넘사벽'임을 고백한다.
"엄마, 왜 그렇게 살았어요?"
다시는 이런 어릭석은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이미 그 답을 알아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