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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Part 2. 엄마의 시간, 엄마라는 묵묵한 산

by 김리사



엄마는 구멍가게를 하면서 우리 삼 남매를 키우셨다. 아빠의 미장일로 벌어 오는 불규칙적인 수입과 부식가게의 장사로 번 돈으로 우리가 자랐다. 집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덕분에 과일과 먹거리가 늘 풍부해서 먹는 것 하나는 모자람 없이 먹고 자랐다. 그 덕분에 엄마 아빠의 키에 비해 우리 삼 남매는 키가 큰 편이다. 아직도 엄마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돈이 부족해서 힘들었지만 가게를 한 덕분에 우리 먹이는 것에는 풍족했다고 감사를 잃지 않으신다. 나도 막상 부모가 되어 보니 아이들 먹고 싶은 것 먹이는 것만큼 뿌듯하고 기쁜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시절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먹거리까지 걱정을 했으면 부모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늘 엄마를 떠올리면 집에서 반찬가게를 하시면서 하루 삼시 세 끼를 다 따뜻하게 지어서 해 주시는 엄마가 떠오른다. 한편으로 정말 죄송하기도 하다. 요즘 그 흔한 외식을 하는 풍경은 지난 시절 우리 집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니 매 끼니 '오늘은 또 무엇을 해 먹일까?' 하는 식구들 음식 걱정이 끝이 없으셨을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가 가끔 친구분들과 혹은 우리 자식들 만나면 외식을 하시는데 처음 드셔 본 음식이 많다. 그 흔한 카페도 잘 안 가보셨으니, 엄마는 일반적인 세상과 다른, 엄마만의 세상을 오랫동안 아빠와 사셨던 것 같다. 오랜 세월 엄마의 일과는 너무나 명백하게 단순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새벽 시장에서 과일 장을 보고 집에 오신다. 아침 식사를 하시고 오전 장사를 하신 후 1~2시 정도에 오후 장을 보러 가신다. 오후 장사를 하고 저녁 식사를 차린 후 저녁 장사 후에 가게 정리를 하고 일과를 끝낸다.



이는 장사가 잘 되던 시절 이야기이고, 세월이 갈수록 대형 마트와 동네 골목의 인구 고령화로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묵묵하게 엄마는 같은 자리 그 골목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계신다. 엄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그 삶의 현장을 엄마는 사랑하시는 것 같다. 큰돈이 되지 않지만 엄마에게 건강한 일상을 주는 가게가 있어서 감사하다. 엄마의 가게를 찾는 나이 든 손님들은 엄마를 보고 오시는 단골분들이다. 결국 엄마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장사를 하면서 세월을 버텨내셨다고 생각한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부식가게를 하면서 엄마는 그 동네와 함께 나이를 먹고 동네와 함께 어른이 되어가셨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 시리즈에서 본 그런 동네 골목이 내가 자란 골목인데 감사하게도 아직도 엄마는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신다. 구멍가게를 하시면서 말이다.




엄마가 언젠가 아빠처럼 하늘나라로 가신다는 생각을 하면, 말로 다 못할 슬픔이 덮친다. 아빠를 잃은 슬픔 못지않게 아마도 더 거대할 것 같다. 먼저 슬퍼하지 말고, 지금 살아계신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겠다.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친정의 그 골목 구멍가게 우리 집은 영원히 나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줄 것이다. 엄마가 늘 그곳에 계신다. 내 마음의 고향, 통영 그곳에 가면 좁다란 골목 그 어느 모퉁이에서 나이 든 칠순의 할머니 사장님이 장사를 하고 계신다. 세상 가장 온화하고 천사 같은 미소를 띠면서 막걸리 한 병을, 소주 한 병을, 세월을.. 팔고 계신다.



엄마는 당연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세차게 부나 새벽같이 일어나, 시장을 가고, 장사를 하셔야 하는 줄 알았다. 하루 세 번 따뜻한 국과 반찬과 흰쌀밥을 지어 밥상을 차려야 되는 줄 알았다.





엄마는 엄마니까..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그게 얼마나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서 엄마를 다시 바라본다. 그 곱디곱던 얼굴에 깊은 주름이 수없이 패일 때까지 흘린 눈물과, 무릎뼈 사이로 불어간 시린 바람과 새벽 시장을 오가며 해내고야 말겠다고, 그리고 항상 그렇게 해내던 마음의 결단을 보았다. 교통사고로 다리한쪽이 성하지 않았던 엄마는 그래도 감사하다고 한다.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나도 모를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그런 엄마의 결단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엄마처럼 강인하진 못해도 엄마를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싶은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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